[채정민 기자의 '니하오, 항저우'] 항저우에서 추석 맞은 메달리스트들

입력 2023-09-29 15:36:23 수정 2023-09-29 19:45:33

추석 맞이 기자회견서 e스포츠 김관우, 펜싱 구본길 웃음 선사
펜싱 김정환, "부상 치료는 작전, 실제는 수싸움에 대해 논의"
최윤 단장, 합동 차례서 제주 노릇…선수단에 기프티콘 선물

29일 추석을 맞아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메달을 목에 건 펜싱 남자 사브르, 여자 플뢰레 선수들이 항저우 한 호텔에 차려진 스포츠외교라운지에 모여 합동 차례를 지내고 있다. 채정민 기자
29일 추석을 맞아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메달을 목에 건 펜싱 남자 사브르, 여자 플뢰레 선수들이 항저우 한 호텔에 차려진 스포츠외교라운지에 모여 합동 차례를 지내고 있다. 채정민 기자

29일 추석 아침이 밝았다. 아시안게임이 열리고 있는 중국 항저우에선 추석임에도 선수들이 메달을 향한 도전을 멈추지 않고 있다. 그래도 한국인이라면 명절 추석을 아무렇지 않게 넘길 순 없는 법. 현지의 '그랜드 뉴 센트리 호텔 바오아오 항저우'에 차려진 대한체육회 스포츠외교라운지엔 조촐한 추석 차례상이 차려졌다. 마침 추석 직전 메달을 건져올린 선수들의 기자회견도 함께 진행됐다. 그 풍경을 들여다봤다.

29일 추석을 맞아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메달을 목에 건 e스포츠, 펜싱 선수들이 항저우 한 호텔에 차려진 스포츠외교라운지에 모여 기자회견을 한 뒤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채정민 기자
29일 추석을 맞아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메달을 목에 건 e스포츠, 펜싱 선수들이 항저우 한 호텔에 차려진 스포츠외교라운지에 모여 기자회견을 한 뒤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채정민 기자

#장면1 : 추석 맞아 메달 선사한 선수들

28일 오전 스포츠외교라운지에 마련된 기자회견장으로 메달의 주역들이 하나둘 들어섰다. 펜싱 남자 사브르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4명(김정환, 구본길, 김준호, 오상욱)과 여자 플뢰레 단체전 은메달을 따낸 4명(채송오, 홍세나, 홍효진, 홍서인)이 들어섰다.

함께 들어오는 이들 중 둘의 이미지는 다소 이질적이다. 아무리 봐도 운동 선수 느낌이 확 풍기진 않는다. 그냥 평범한 청년들처럼 보인다. e스포츠의 금메달리스트 김관우(스트리트파이터5), 동메달리스트 곽준혁(FC온라인)이었다.

28일 중국 항저우 e스포츠센터에서 열린 항저우 아시안게임 스트리트 파이터5 결승전에서 금메달을 거머쥔 김관우. 연합뉴스
28일 중국 항저우 e스포츠센터에서 열린 항저우 아시안게임 스트리트 파이터5 결승전에서 금메달을 거머쥔 김관우. 연합뉴스

#장면2 : 김관우, 어릴 적 놀이가 금메달로

마흔 넷. 김관우는 한국 e스포츠 최고령 국가대표다. e스포츠에서 한국 선수단의 첫 금메달을 따냈다. 게임 비용이 50원일 무렵 김관우는 오락실을 즐겨 드나들었다. 그 시절 오락실은 유해 업소로 여겨지던 분위기. 오락실에 갔다고 어머니에게 혼나던 김관우가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그 시절 소년들의 인기 오락이자 격투 게임의 고전 '스트리트파이터'에서. 격세지감이다.

김관우의 얘기에 기자회견장에 웃음이 번졌다. 그는 "오락실에서 격투 게임을 잘하면 항상 근처 형들에게 끌려가 혼났다. 그런 경험이 없다면 실력을 의심해야 한다"며 "옆구리를 맞아도 기술 콤보를 넣으려고 손에서 레버를 놓지 않았던 의지와 승부욕으로 지금까지 왔다. 그게 금메달로 이어진 것 같다"고 웃었다.

29일 추석을 맞아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메달을 목에 건 e스포츠, 펜싱 선수들이 항저우 한 호텔에 차려진 스포츠외교라운지에 모여 기자회견을 한 뒤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채정민 기자
29일 추석을 맞아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메달을 목에 건 e스포츠, 펜싱 선수들이 항저우 한 호텔에 차려진 스포츠외교라운지에 모여 기자회견을 한 뒤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채정민 기자

#장면 3 : 구본길, 칼 솜씨 못지 않은 말 솜씨

이미 여러 번 인터뷰에 응한 구본길에겐 다소 생뚱맞을 수도 있는 질문이 던져졌다. '옆에 김관우 선수가 있는데 격투 게임을 해봤느냐, 김 선수를 보면 어떤 느낌이냐'는 물음. 달변가답게 구본길의 답변도 참신하다. 그 덕분에 현장은 웃음바다가 됐다.

구본길은 "솔직히 격투 게임, 특히 철권을 굉장히 잘한다. 지금까지 철권을 계속했더라면 제가 김관우 선수를 이기고 이 자리에 있지 않았겠나 생각한다"고 답해 웃음을 안겼다. 이어 "게임 선수들에겐 굉장한 집중력이 요구된다. 김관우 선수도 대단한 것 같다. 우승을 축하드린다"고 덧붙였고, 김관우는 웃으며 "감사하다"고 화답했다.

29일 추석을 맞아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메달을 목에 건 e스포츠, 펜싱 선수들이 항저우 한 호텔에 차려진 스포츠외교라운지에 모여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가운데 펜싱 김정환에게 질문을 건네고 있는 기자 모습. 채정민 기자
29일 추석을 맞아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메달을 목에 건 e스포츠, 펜싱 선수들이 항저우 한 호텔에 차려진 스포츠외교라운지에 모여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가운데 펜싱 김정환에게 질문을 건네고 있는 기자 모습. 채정민 기자

#장면 4 : 김정환, '어펜저스'의 전략가이자 맏형

중국과의 남자 펜싱 사브르 결승전은 예상대로 세계 최강인 한국 '어펜저스'(펜싱+어벤저스)의 승리로 끝났다. 하지만 현장 상황 자체는 그리 녹록지 않았다. 경기 중반 한때 김준호가 무릎 통증을 호소하는 등 위기도 있었다. '맏형' 김정환이 스프레이를 들고 나와 김준호의 무릎에 뿌려줘야 했다. 그 고비를 넘어 대회 3연패 위업을 이뤄냈다.

매일신문 취재진은 당시 김정환이 스프레이를 들고 나와 무슨 말을 나눴는지 물었다. 그냥 치료를 위해 나온 건 아닌 듯 보여서였다. 역시 김정환의 답도 그랬다. 그는 "관중 소음 탓에 말이 잘 전해지지 않았다. 하지만 대기하는 선수가 펜스를 넘어 다가갈 순 없었다"며 "의료진에게 스프레이를 달라고 해 뿌리는 척 하면서 시간을 벌었다. 또 상대와 수싸움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준호와 상의했다. 작전 타임이었던 셈이다. 연습 때 미리 준비한 전략"이라고 전했다.

29일 추석을 맞아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메달을 목에 건 펜싱 남자 사브르, 여자 플뢰레 선수들이 항저우 한 호텔에 차려진 스포츠외교라운지에 모여 합동 차례를 지내고 있다. 채정민 기자
29일 추석을 맞아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메달을 목에 건 펜싱 남자 사브르, 여자 플뢰레 선수들이 항저우 한 호텔에 차려진 스포츠외교라운지에 모여 합동 차례를 지내고 있다. 채정민 기자

#장면 5 : 차례상, 선수단의 건강과 좋은 성적 기원

간략한 기자회견이 끝나고 선수단의 합동 차례 행사가 이어졌다. 제주는 최윤 대한럭비협회장이자 이번 한국 선수단장인(OK금융그룹 회장)이 맡았다. 직전 기자회견에 참석한 남녀 펜싱 대표팀 선수들이 뒤에 섰다. 최 단장이 술잔을 올리고 다들 절을 한 뒤 차례 음식을 나눠 먹었다.

최 단장은 각 경기장을 찾아다니며 선수들을 '화끈하게' 뒷바라지하는 데 최선을 다해 눈길을 끄는 인물. 이날 선수와 임원 1천140명 전원에게 3만원 상당의 모바일 기프티콘(메시지형 선물 교환권)을 선물하기도 했다. 최 단장은 "추석 연휴에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하지 못해 아쉬운 마음이 클 선수단을 위해 작은 선물을 준비한 것"이라며 "풍요로운 한가위가 되길 빈다"고 했다.

추석인 29일 중국 항저우 시내의 한 호텔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한국 선수단 추석 합동 차례 행사에서 최윤 선수단장이 지방을 태우고 있다. 연합뉴스
추석인 29일 중국 항저우 시내의 한 호텔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한국 선수단 추석 합동 차례 행사에서 최윤 선수단장이 지방을 태우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