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아침] 업스트림 먼저 생각하자

입력 2023-10-03 13:10:57 수정 2023-10-03 18:07:04

정양호 한국산업기술보호협회 회장(서울시립대 교수)

정양호 한국산업기술보호협회 회장
정양호 한국산업기술보호협회 회장

9월부터 대학교수가 되어 강의와 산학협력이라는 새로운 임무를 가지고 캠퍼스 생활을 시작했다. 젊은이들과 함께 생활한다는 설렘과 함께 새로운 출발로 인한 긴장이 교차한다. 막 첫걸음을 내딛는 순간이지만 정년이 머지않았다고 생각하니 임기직 같은 기분이다. 출근 첫 주 내내 여기서 무슨 일로 학교 발전에 기여할 수 있을까 하는 책임감에 가슴이 무거웠다. 오랜 공직 생활로 인해 생긴 울렁증 같다.

바쁜 일상에 휘둘리다 보면 우리는 그날그날 발생하는 눈앞의 문제에 반응하는 데에만 익숙해진다. 똑같은 문제가 반복되는 악순환 속에서도 문제의 근원을 파악해 선제적으로 예방하려 하기보다는 대증적 요법에만 익숙해진다는 뜻이다. 최근 우리에게 큰 고통을 주었던 이태원 참사나 오송의 궁평 지하차도 물난리 사례를 보아도 우리의 시야와 대응이 얼마나 근시안적이었느냐에 대한 아쉬움을 피할 수 없다.

세계적 경영 전문가인 댄 히스는 그의 저서 〈업스트림〉(upstream)에서 문제를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사고방식이나 시스템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수많은 조직과 사람들은 문제가 발생하고 난 후 비로소 거기에 반응하는 '다운스트림(downstream)적 접근 방식'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눈앞에 있는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 모르는 문제 불감증, '과연 내가 나서도 될까'라는 주인 의식 부족, 급한 일부터 처리한 다음에 살펴보겠다는 '터널링 증후군' 등이 이런 행동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당연히 하류(downstream)에서 문제가 발생하기 이전에 상류(upstream)에 가서 문제의 근원을 해결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상류의 오염원을 원천적으로 해결하지 않고 하류에서 아무리 청소를 해봐도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인데 왜 현실에서는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것일까? 장기적 시간이 필요한 문제를 내 임기 중에 전부 해결해야겠다는 조급증도 원인이 될 수 있고, 귀찮은 일을 내 임무라고 하지 않고 떠넘기려는 안일한 자세도 업스트림적 접근을 방해할 수 있다.

내가 맡은 산학협력과 관련된 정부 R&D 전략을 살펴보자. 지금 정부 고민은 이렇다. R&D 지원 규모는 늘어나는데, 뚜렷한 성과는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지원 분야에 대한 선택과 집중을 통해 성과를 높이고, 세계 최고의 선도 연구기관들과 협력하여 성과를 내자는 것이다. 문제의 근원을 터치하려는 업스트림적 접근 방식이다. 환영의 박수를 보낸다.

국제 협력 R&D의 구체적 실행 방안은 곧 만들어져서 내년부터 시행에 들어갈 전망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구체적 방법론에서도 업스트림적 사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왜 국제 협력이 잘 되지 않았는지 근본 원인을 살펴 대응 방안이 모색되기를 기대한다. 신진 과학자 초빙이나 포스트닥 프로그램, 연구 인턴십 같은 다양한 경로의 인력 교류 프로그램이 진행되어야 한다. 국제 공동연구 성과물인 지식재산권의 소유에 대한 원칙 정립도 중요하다. 수많은 R&D 관련 규정의 영문화 작업도 필요하다. 조금 시간이 걸릴 것 같은 부분도 많이 보인다.

댄 히스는 그의 저서에서 업스트림으로 나아가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사람과 시스템이라고 지적한다. 꼭 필요한 사람을 모집해 주도적으로 문제 해결을 추진하면서, 주변에 문제의 심각성을 널리 알리고 협조를 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동시에 문제를 일으키는 근본 구조도 재설계해 나가야 한다. 모든 것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 없는 지난한 과제이다. 비용도 고민해야 하고 부작용이 있는지도 철저히 점검해야 한다.

다시 개인적 문제로 돌아와 본다. 3년 남짓한 새로운 대학에서의 생활 동안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무엇보다 업스트림 접근을 하고 싶다. 산학 협력이 잘 이루어지지 못하는 근본 원인을 찾아서 내가 할 수 있는 것 하나라도 기여하고 싶다. 재직 중에 충분한 성과가 나지 않더라도 올바른 방향으로 흐름을 돌려놓는다면 성공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언제까지 무엇을 꼭 하겠다는 무거운 다짐을 벗어놓고 오늘 할 수 있는 본질적인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하자고 다짐한다. 마음을 비우니 벌써 대학 생활에 적응된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