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정민 기자의 '니하오, 항저우'] 이젠 우리가 효자 종목…근대 5종 선수들이 풀어낸 이야기들

입력 2023-09-25 14:38:30 수정 2023-09-29 13:58:49

남 대표 순항, 여 대표는 승마 탓에 고전해
무작위 추첨 배정된 말과의 호흡 쉽잖아
남녀 합산 금 2, 은2, 동 1 성과로 주목
남 주장 정진화 "은퇴해도 든든한 후배들 있어"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선전한 한국 근대 5종 남녀 대표팀이 25일 취재진과 만나 경기 소회를 풀어놨다. 왼쪽부터 전웅태, 이지훈, 정진화, 서창완, 김선우, 김세희, 성승민, 장하은. 채정민 기자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선전한 한국 근대 5종 남녀 대표팀이 25일 취재진과 만나 경기 소회를 풀어놨다. 왼쪽부터 전웅태, 이지훈, 정진화, 서창완, 김선우, 김세희, 성승민, 장하은. 채정민 기자

"근대 5종이 좋은 성적을 냈습니다. 앞선 대회에서도 선전했고요. 그러다 보니 예전보다 언론에 많이 노출되고 있습니다. 이 정도면 효자 종목 아니냐는 얘기도 나오네요. 앞으로도 노력할테니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항저우 아시안게임 한국 여자 근대 5종 대표팀 주장 김세희의 말이다. 근대 5종은 이번 대회에서 포문을 제대로 열었다. 개회식 이튿날 벌어진 경기에서 남자 개인전 금·은메달과 단체전 금메달, 여자 개인전 은메달과 단체전 동메달을 수확했다. 아직 비인기 종목으로 여겨지지만 김세희의 얘기처럼 조금씩 관심이 높아지는 모양새다.

25일 한국 근대 5종 남녀 대표팀은 '그랜드 뉴 센트리 호텔 바오아오 항저우'에 차려진 대한체육회 스포츠외교라운지를 찾았다. 취재진과 만나 이야기를 나눈 선수들은 바로 항저우 샤오산 공항으로 떠났다. 각자 소속팀으로 복귀, 10월 있을 전국체전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25일 취재진과 만나 항저우 아시안게임 소회를 풀어놓은 한국 근대 5종 남자 대표팀. 왼쪽부터 이지훈, 정진화, 전웅태, 서창완. 채정민 기자
25일 취재진과 만나 항저우 아시안게임 소회를 풀어놓은 한국 근대 5종 남자 대표팀. 왼쪽부터 이지훈, 정진화, 전웅태, 서창완. 채정민 기자

길지 않은 만남 속에 선수들은 솔직하고 담담하게 소회를 풀어냈다. 남자 개인전 금메달을 목에 건 전웅태는 "운동 선수에게 명함은 성적이다. 역시 다른 말 없이 운동을 열심히 하는 게 맞는 듯하다"면서도 "사실 훈련은 쉽지 않았다. 특히 (최은종) 감독님이 옆에 붙어 함께 운동하는 게 지옥이었다. 따라가기 힘들었다"며 웃었다.

근대 5종은 선수 1명이 펜싱, 수영, 승마(장애물), 레이저 런(육상+사격)을 모두 치르는 종목. 이번 대회에서 여자 대표팀은 특히 승마에서 고전했다. 개인전 은메달을 거머쥔 김선우만 성공했을 뿐 김세희, 성승민, 장하은은 모두 실격됐다.

김세희는 "많은 말을 타 본다. 다들 성격이 다르다. 준비를 한다고 했는데 말과 호흡이 잘 안 맞았다. 말에서 떨어지는 순간 그동안 힘들었던 일과 훈련 과정이 영화 필름처럼 스쳐 지나갔다"며 "그래도 '포기하긴 이르다. 끝까지 해보자' 했다. 마지막까지 뛴 게 단체전 동메달로 이어져 기쁘다"고 했다.

반면 남자 대표팀의 주장 정진화와 전웅태, 이지훈, 서창완은 모두 승마 경기를 잘 치렀다. 그래도 정진화는 무작위 추첨으로 배정받는 말과 함께하는 게 쉽지 않다고 했다. 그는 "점핑 테스트 영상을 보면서 사실 '저 말은 안 걸렸으면 좋겠다' 생각하기도 한다"며 "수많은 말을 타봤지만 말 특성을 빠르게 파악하는 게 쉽지 않다. 그래서 경험이 더욱 중요하다"고 했다.

25일 취재진과 만나 항저우 아시안게임 소회를 풀어놓은 근대 5종 여자 대표팀. 왼쪽부터 김세희, 김선우, 성승민, 장하은. 채정민 기자
25일 취재진과 만나 항저우 아시안게임 소회를 풀어놓은 근대 5종 여자 대표팀. 왼쪽부터 김세희, 김선우, 성승민, 장하은. 채정민 기자

경험이 많지 않은 남녀 대표팀 막내 서창완과 장하은에게 이번 대회는 보약이 됐다. 서창완은 "역시 경험 많은 형들에겐 이기기 힘들다는 걸 느꼈다. 좌절하지 않고 부족한 펜싱, 승마 기술을 보완하겠다"고 했다. 장하은은 "준비한 것을 다 보여주지 못해 아쉬웠다. 더 강한 선수가 돼 돌아오겠다"고 했다.

30대 중반인 베테랑 정진화는 경기 직후 대표팀에서 은퇴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도쿄 올림픽에 이어 이번에도 4위에 오르는 등 기량은 여전히 세계 정상급이어서 아쉬울 법도 하건만 결심을 굳혔다.

정진화는 "회복력이 다르다. 젊은 친구들을 따라가기가 살짝 버거워지고 있다. 훈련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동료들에게 폐를 끼치는 것 같았다"며 "박수 칠 때 떠나는 게 맞는 것 같다"고 했다.

은퇴를 얘기하는 정진화의 표정은 밝았다. 그는 "든든하고 멋진 후배들이 있어 마음이 놓인다. 나보다 더 나은 선수들이다"며 "뒤에서 묵묵히 멘토 역할을 하겠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