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라언덕] 이재명 스포일러

입력 2023-09-21 18:45:41 수정 2023-09-21 19:54:34

페이스북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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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희진 디지털국 기자
황희진 디지털국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체포동의안이 국회에서 가결되기 2시간 전 같은 당 어떤 국회의원이 페이스북에 남긴 글을 보고 눈을 의심했다.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재명 당 대표를 지켜주소서".

2013년 남유진 당시 경북 구미시장이 박정희 전 대통령 탄신 기념행사에서 "박 전 대통령은 반신반인(半神半人)으로 하늘이 내렸다란 말밖엔 할 말이 없다"고 한 게 떠올랐다. 정치가 한참 전 종교에서 떨어져 나온 21세기라지만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한국 정치는 크게 바뀐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21일 오후 4시 40분쯤 김진표 국회의장이 "가결됐다"고 선언한 후 야권 국회의원들이 스마트폰을 꺼내 SNS에 적은 글들도 눈길을 끌었다.

한 의원은 동료들을 믿었는데 배신당했다며 소속 정당을 두고 "죽어야 된다"고 했다. "국회 본회의장입니다"라고 현장에서 스마트폰을 두드렸다고 밝힌 한 의원은 "죄송하고 안타깝습니다. 저는 그래도 역사의 진보를 믿었습니다. 저는 그래도 동료 의원들을 믿었습니다. 망연자실입니다. 거듭 죄송합니다. 민주당도 죽어야 됩니다"라면서 "그래도 지구는 돕니다"라고 이탈리아 과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실제로 했는지 안 했는지 진위 여부는 알 수 없으나 아무튼 흔히 쓰는 문구도 인용했다.

혼란에 빠진 듯한 의원도 있었다. "그동안 토론해 온 과정이 있어서, 우리 당 의원님들 중 28명이 가결 표를 던졌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습니다. 이제 우리 어떻게 해야 합니까." 반란 표 기미를 눈치채지 못했다며 앞으로 어찌 해야 하느냐고 네티즌들에게 자기 심경을 순수하게 드러낸 맥락이다. 이 의원, 초선이다.

의원들이 이렇게 SNS로 뭔가를 표현하거나 국회에서 소리를 지르는 정도에 그친 걸 부끄럽게 만들려는 듯, 지지자들은 행동으로 보여 줬다. 국회 앞에서 대규모 집회를 벌이던 '개딸'(이재명 대표 강성 팬덤) 등 일부 참석자들이 표결 결과가 나오자 국회 진입을 시도한 것. 노련한 지지자들은 곧장 플랜B(차선 계획)도 제안했다. 한 유명 강성 지지자는 페이스북에 "수박 색출 척결!!"이라고 남겼다. 예상 밖으로 많이 나온 반란 표를 곧 겉과 속이 다른 '수박'에 비유되는 비명(비이재명)계의 소행으로 보고 처단에 나서자고 한 셈이다.

문득 최근 종영한 인기 드라마 '무빙'이 떠올랐다. 호화 캐스팅, 초능력이라는 신선한 소재, 완성도 높은 액션 및 CG(컴퓨터 그래픽)가 인기 요인이었는데, 핵심은 권선징악이라는 결과였다. 선이 악을 이겼다. 선과 악이 비기거나 되레 악이 살아남기도 하는 '반전 스토리'에 염증을 느낀 시청자들이 지지한 맥락이다.

여권은 이날 나온 가결 결과를 두고 권선징악이라는 뉘앙스로 환호했다. 이에 대해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도 있고, 이어질 구속 전 피의자 심문에서 '영장 기각'이라는 진짜 결과를 보여 주면 된다고 부정하는 사람도 있다.

여기서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불체포특권 포기 대선 공약→구속영장 청구 시 제 발로 출석해 심사받겠다는 선언→8월 말부터 시작한 단식→자신에 대한 체포동의안 표결 전날 SNS에 쓴 '가결은 정치검찰의 공작 수사에 날개를 달아줄 것'이라는 글에 마땅히 이어질 결과로 가결이 어울릴지, 부결이 어울릴지. 또 영장 발부가 어울릴지, 영장 기각이 어울릴지.

최근 예고편이 공개된 이순신 시리즈 영화 마지막 편 '노량'도 떠오른다. 이 영화가 국민들에게 감동을 줘 흥행에 성공할지 여부는 결말이 어떨지와는 별 상관이 없을 것이다. 우리 모두 결과를 잘 알고 있으니까.

중요한 건 '과정'의 디테일이고 그걸 뒷받침하는 '왜?'라는 질문일 것이다. 이재명 대표의 최근 행보 및 이유는 그런 맥락에 놓여 있을까? 그래서 국민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을까? 아니면 대한민국 정치판에 남긴 건 그저 같은 당 의원 및 지지자들이 민낯을 드러낸 혼란과 소동뿐인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