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립습니다] 이명은·이요진 씨의 외할아버지 고 김효경님

입력 2023-09-21 13:09:03 수정 2023-09-22 19:49:08

"가족은 늘어서 사촌만 24명…할머니, 할아버지께서 주신 가족이란 선물 덕분에 행복해요"

이명은 씨(사진 오른쪽)가 할아버지 고 김효경 씨 생전에 함께 있을 때 촬영한 사진. 가족 제공.
이명은 씨(사진 오른쪽)가 할아버지 고 김효경 씨 생전에 함께 있을 때 촬영한 사진. 가족 제공.

안녕하세요, 할아버지, 손녀 요진이예요. 거기선 편안하시죠? 친구분들은 많이 사귀셨어요? 할머니께서 할아버지들이랑만 친하게 지내시라고 하신 거 다 들으셨죠?

저희는 모두 잘 지내요. 할아버지께서 계셨다면 정말 좋아하실 모습으로 모두 잘 지내고 있어요. 할아버지와 함께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늘에서 할아버지가 우리를 지켜주시나보다 하고 생각하기도 해요.

돌아가시기 3주 전 해주실 말씀 없냐고 물은 제게 하고 싶은 거 하고 살라고 하셨죠, 저는 그 말씀에 용기 내어 새로운 직업을 가졌고 사람들이 저보고 천직이라고 할 만큼 즐겁게 일하고 있어요. 예전에 제가 할아버지 드리려고 붕어빵 사 들고 갔던 일 기억나세요? 그 때 이제는 붕어빵보다 더 맛있는 거 많이 사드릴 수 있는데 조금만 더 계셔주시지….

경남 진주시 내동면에 있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집을 생각해 봐요. 내동면 제일 끝에 있는 집이죠. 등 뒤로 작은 뒷산이 있고 파란 지붕이 아주 예쁜 집이잖아요.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 오래전 이곳에 정착하시며 하나하나 돌담을 쌓아올려 지은 집이라셨어요. 그래서 현관 밖에있는 세면실도 푸세식 화장실도 지금도 그대로 있지요. 지금은 가장이 된 손주, 손녀가 어릴 적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가려고 마을 주민분의 봉고차를 타고 산넘어 등교를 했었던 기억이 나네요.

먼 훗날 소식이 끊겼던 손자 한 명이 초등학교부터 되짚어 걸어와 마을 맨 끝집 할아버지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지요. 훌쩍 커버린 손자와 오랜 세월에 나이드신 할머니 할아버지가 얼싸안고 한동안 울었습니다. 낡고 오래된 집이지만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신 집은 우리의 오랜 고향입니다.

할아버지 돌아가시고 할머니는 많이 약해지셨고 산도 집도 많이 휑해졌어요. 사촌들끼리 모이면 할아버지 이야기로 다 같이 울기도 하고 마음껏 그리워하는 시간을 가졌는데도 여전히 많이 보고 싶어요. 여름에 나무그늘 아래서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던 시간도 너무 그리워져요.

할아버지께서 손가락을 접어가며 수없이 세어 보셨던 우리 가족은 더 늘어서 사촌만 해도 24명이 되었어요.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주신 가족이란 선물 덕분에 힘들고 기쁜 일을 함께 할 사람들이 많아 항상 든든하고 행복해요.

할아버지, 할머니와 다시 만나는 날까지 할머니 건강을 지켜주세요. 남에게 피해 주지 않고 살아오신 할아버지 모습대로 저도 바르게 잘 살게요. 그리고 다시 태어난다면 할아버지와 손녀로 꼭 다시 만나요. 그땐 제가 조금 더 빨리 효도할게요.

부족한 솜씨지만 할아버지를 그리워하며 시를 써 봤어요. 한 자 한 자 쓸 때마다 할아버지가 제게 보여주신 사랑을 담아보려 노력했어요. 사랑해요. 그리고 보고 싶어요.

그리운 당신께

- 손녀 이명은 올림

할아버지.

당신이 늘 계시던 뒷산 평상에 바람이 붑니다.

앉은 자리가 마르기도 전에

낙엽이 굴러 내려와

땅으로 돌아가는 시간이 왔어요

함께 여름을 보냈던 이곳에는

먼지만 뽀얗게 앉아가고

지난 시간을 그리워하는

누군가를 위한 바람이 불어요

너도 먹으라며

말없이 건네시던

따뜻한 옥수수가 그리운 계절에

우수수하고

마른 낙엽이 떨어집니다.

발밑에 무성히 자라난 풀에

이젠 닿는 손길 없어

마르고 단단한 등의 빈자리가 깊어지네요

잘 지내시죠?

우리는 당신이 남긴 자리를 하나하나 따라가며

소리 없이 그리워합니다.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주신

나의 당신,

그리운 할아버지.

고 김효경 씨의 가족사진. 가족 제공.
고 김효경 씨의 가족사진. 가족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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