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표 대경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2017년은 김정 연출(39)의 등장을 알리는 해였다. 한태숙 연출 조연출을 거쳐 연극 <손님들>(작, 고연옥>으로 그해 국내 연극상을 휩쓴 서른셋의 젊은 연출가는 패기만큼 연극도 당당해 보였다. 존속살인을 모티브로 한 작품에서 소년 집을 방문하는 손님들은 비현실적이면서도 몽환적인 그로테스크함으로 무장해 극장 공간을 섬뜩함으로 밀폐시켜 연출을 각인시키는 작품이 되었다. 이후, <처(妻)의 감각>(2018)과 <인간이든 신이든> (2021)으로 고연옥, 김광보 연출의 콜라보는 김정 연출로 이어지는 듯했으나 '손님들'만큼 파괴력은 없었고 작품은 시선을 끌지 못했다. 상임 연출로 한태숙 연출과 동행한 경기도 극단에서 <시련>(2021),<태양>(2021, 2023) 등 굵은 작품을 선보였으나 메아리는 들리지 않았다. 한 작품으로 단숨에 연극계 기대주로 올라선 등장만큼 이후 작품들은 힘든 방어전을 치르는 것처럼 보였다. 초반부터 화제를 모은 <이 불안한 집>(작, 지니 해리스 번역, 성수정, 제작,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은 작가와 연출로 연극계 콤비를 이어온 고연옥, 김광보 구도에서 그 바톤을 막바지 임기를 앞둔 국립극단 김광보 예술감독에 이어받으며 김정 연출은 승부수를 띄웠다. 5시간을 견딜 수 있는 현대적인 희랍비극의 집으로 완공된다면 국립극단이란 점과 희곡, 극장 조건 등 삼박자를 갖추고 있어 해 볼 만한 작품이었을 것이다. 공교롭게도 특정 작가의 신작들이 두 연출가한테 성공 작품이 된 점에서 계보를 이루고 있고 김광보 예술감독의 각별한 애정도 느껴졌다. 결론은 김정 연출의 <이 불안한 집>은 인터미션을 포함해 300분 5시간 완주(完走)가 괜찮았다는 점이다.
연극연출가로 마지막 기회가 될 수 있는 작품을 들고 마라톤을 뛰기 위해 경기도극단 상임 연출도 그만두고 이번 작품에 승부수를 거는듯해 보였다. 몇 가지를 제외하고는 김정의 뚝심과 연출 선이 기대 이상이었고 삼십 대 후반에 시도할 수 있는 연출적인 총량을 쏟아부었다. 좋은 연극적인 재료를 선별해 쓴다면 <손님들> 이후 김정의 불안한 연극구조의 집들은 완숙될 수 있는 기대감을 주기에 충분해 보였다. 아쉬웠던 것은 할 말이 너무 많아 보였다는 점이다. 불안한 집을 고치는데 필요한 건축 공구는 2~3개면 되는데 20여 개가 넘는 도구를 동원해 뜯어고치는 느낌이 들었다. 무게로 표현하자면 50킬로 정도의 1부를 80킬로로 채우는 듯했다. 관객들은 그 무게에 견디지 못하면 불안한 집을 돌다 이탈하거나 탈진할 수 있다. 그런데 비틀비틀하면서도 비극의 과중한 80킬로를 들어 올린다. 이 대서사를 김정 연출은 손님들 이후 5년 정도의 체력 단련을 끝내고 마라토너가 되어 무대에서 완주해 내는 듯해 보였다. 그만큼 연출 자신과 싸움처럼 보이기도 했다. 1부를 견디면, 2부는 복잡한 구도가 걷어지고 3부는 고대부터 현재까지 대물림되는 저주와 복수, 살인과 죽음의 환청에 시달리는 엘렉트라를 정신분석(의학)적으로 해부하는 시간이다. 1부의 스토리라인을 견디는지가 관건인데 많은 정보와 등장인물들의 관계, 동성애, 신탁으로 인한 죽음과 저주, 트로이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아가멤논의 서사까지 섞이면서 자칫 시선을 돌리면 복잡해질 수 있다. 핵심은 세 가지다. 트로이전쟁의 승리를 위해 첫째 딸 이피지니아(홍지인 분)를 죽인 뒤부터 저주의 복수가 시작된다. 두 번째는 전쟁의 승리자 아가멤논을 왕비 클리템네스트라(여승의 분)와 정부 아이기스투스(윤성원 분)의 계략으로 처참(도끼)한 살인을 한 뒤 성기를 잘라 묻어버린다. TV 뉴스에 등장하는 광기의 묻지만, 살인처럼 시체유기까지 한 셈이다. 그것도 왕을 말이다. 이때부터 복수의 저주는 시작된다.
◆1부'아가멤논의 귀환'은 형식의 체중이 과하고, 2부'나뭇가지가 부러지다' 부터는 비극의 퍼즐을 맞추고 3부'엘렉트라와 그녀의 그림자'가 현재 시점으로 완성되는 <이 불안한 집>
'이 불안한 집'은 복수와 죽음의 저주를 받은 아가멤논(문성복 분) 비극의 가족사다. 1, 2부를 아이스킬로스 오레스테이아 3부작(아가멤논, 제주를 바치는 여인들, 자비로운 여신들)을 재해석해 묶었다. 트로이전쟁, 신탁과 이피지니아의 죽음과 저주, 왕비 클리타임네스트라와 정부(情夫) 아이기스토스의 잔혹한 살인과 죽음(아가멤논), 불륜. 오레스테스와 엘렉트라의 복수, 왕비와 아이기스투스의 죽음 등으로 아이스킬로스 희랍비극의 특징과 플롯은 대체로 유지하면서도 오레스테스의 복수는 대물림되어 엘렉트라로 바뀌는 정도로 대서사의 골격은 같다. 3부는 환청과 정신질환에 시달리며 거리를 누비며 칼을 휘두르고 희생자를 내는 광란의 묻지마 살인 현장의 현재이다. 죽음, 저주, 복수와 살인 키워드를 그대로 가져와 저주의 복수(살인)의 환청에 시달리는 엘렉트라(신윤지 분)가 정신질환 치료를 받는 시점으로 달라진다. 트로이전쟁 승리를 위해 첫째 딸을 신탁으로 죽인 아가멤논은 딸의 저주로부터 불안한 집은 꼬이기 시작한다. 딸의 저주, 아가멤논은 죽어서도 복수를 향하고 누군가는 죽어야 끝이 나는 핏물의 칼은 엘렉트라와 오레스테스로 대물림되는 고대국가(미케네)의 비극은 현대의 불안한 집에서도 이어지는 현상들처럼 보인다. 저주는 딸에서 아가멤논으로 남매 오레스테스(남재영 분)와 엘렉트라까지 복수가 시작되면서 저주의 복수는 대물림한다.누군가는 죽어야 끝이 나는 복수 혈투가 시작되면서 아가멤논 가문의 집은 불안해진다. 광기의 연쇄적인 묻지마 죽음의 파티가 늘어나는 한국 사회도 불안한 집인 것 처럼.
작가 해리스는 이 불안한 집의 비극사를 아버지 아가멤논으로부터 죽임을 당한 뒤, 가문의 불안한 집을 맴돌며 대를 이은 연쇄적인 죽음과 비극의 저주를 내리는 이피지니아의 혼령을 불러 마치 씻김 굿판을 열듯 화해와 용서로 원한을 씻어내고 질긴 비극의 인연을 끊어내고자 한다. 3부는 죽음, 살인, 복수와 저주를 한 방에 해결한다. 1, 2부의 핵심 정리 현대적 해결 판(부)이다. 마치 에쿠우스에서 말에 눈을 찌른 앨런의 심리와 정신분석을 하는 장면을 연상하게 할 만큼 오드리 의사(김문희 분)는 언니와 아버지의 복수와 저주의 환청에 시달리며 언어와 신체가 분열되는 증세를 보이는 엘렉트라를 정신의학으로 분석한다. 오드리 (김문희 분)의 대사다. "우린 정신과 신체의 연관성을 분석하려고 여기 있는 거야. 쫓기고 있다고 믿는 너의 신체적 증후들을 분석하려고" 엘렉트라는 한순간에 아버지와 엄마 그리고 언니를 잃었고 아가멤논의 왕 자리에 앉은 엄마의 정부 (아이기스투스)의 폭력과 은밀한 사생활, 두 사람을 죽이고자 하는 욕망에 시달리면서도 칼날은 아이기스투스의 복수로 죽음(살인 현장)을 눈앞에서 목격했으니 오죽하랴. 그래서 3부 설정은 정신질환에 시달리는 엘렉트라 이야기가 주축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유령이 되어버린 이피지니아의 절규가 들린다" 난 소녀였어. 인형이랑 놀고 싶었어요. 모래 위를 뛰어다니고 싶었어요. 복수의 혼령이었던 적 없어요. 난 아무것도 안했어 맞아, 난 살해당했어요. (중략) 내 소원은 끝내는 거예요. 멈춰야 해요. 난 어린 소녀일 뿐이에요. 나머지는 여러분께 달렸어요" 엘렉트라와 이피지니아의 동일화된 혼령들마저 저주의 복수를 동생들의 육체를 빌려 칼날의 저주를 퍼붓고 마지막은 원한을 씻어내고 창문으로 혼령 소리가 멀어진다.
◆ 5시간으로 완공시킨 비극의'이 불안한 집'은 살아 볼 만한 집
김정 연출은 3부로 구성된 5시간의 마라톤에서 1부에 총력을 쏟아내는 듯해 보였다. 스토리 라인을 형성하는 플롯과 사건들을 이 불안한 집에 고대 아이스킬로스부터 해리스 작가까지 쏟아낸 이삿짐들을 그대로 무대로 쏟아붓고는 서사의 개연성과 2, 3부로 달리기 위해 고대 비극의 이삿짐을 풀 구도를 잡고 밑밥 재료부터 채워 넣는다. 마치 이사한 집 리모델링을 하듯 말이다. 남경식 무대 디자이너가 설계한 무대 공간은 고대국가(문명)를 지탱한 주춧돌을 불안한 집 상단에 올린다. 신전의 장소처럼 보이기도 하고 성(城) 내부는 (ㅁ) 모양 앞면이 개방된 구조로 좌우는 미끄럼틀과 같이 평지와 맞닿아 있다. 경사로 된 이동로가 된다. 중간 내부, 2층 위는 성곽(城廓)의 내외부를 테라스 분위기를 현대적으로 살린 느낌이다. 배우들의 의상도 고대의 특징을 살리면서도 모던한 분위기다. 코러스와 파수꾼들의 역할도 마치 이 불안한 집에 함께 살아가는 (집사들) 인물처럼 처리했는데 1부부터 고대의 극 중 인물들은 현대로 환생한 것처럼 고대와 현대가 공존하는 느낌이다. 표현의 방식(대사, 움직임)은 현대적이고 김정 연출 연극 <손님들>에서 볼 수 있는 양식적인 캐릭터들과 장면들이 섞여진다. 희랍비극 코로스의 특징과 기능을 살려내는 것도 인상적이었는데, 현대적으로 낱말과 숫자 게임을 하듯 유쾌하게 극에 개입하고 중요장면과 인물의 내면 등 전개되는 장면을 압축하기도 하면서 해설 역할을 한다. 인물의 특징은 연극적인 형식의 극대화로 분위기를 살렸고 1부를 표현하는 장애 허들이 많아 보였다.
프롤로그부터 저주와 복수의 대물림을 알리듯 엘렉트라와 이피지니아를 동일화된 내면으로 처리해 노란색 원피스를 입고 가방을 메고 있는 소녀의 이미지로 처리된다. 여전히 이 불안한 집을 배회하는 이피지니아의 혼령은 트로이전쟁부터 현재까지 저주의 복수로 집을 맴돌고 있다. 혼령이 되어도 버릴 수 없는 가방에 엄마가 잠이 잘 올 수 있도록 만들어 준 찜질약, 아가멤논의 사진, 칫솔과 머리띠, 인형과 장난감이 들어있다. 어린 시절 기억을 지워낼 수 없는 이피지니아의 저주는 트로이전쟁 전장의 승리를 위해 딸을 신의 제물로 바쳐야 승리할 수 있다는 신의 절대적인 믿음으로 딸의 처참한 죽음으로부터 아가멤논 가문 비극의 가족사는 돌이킬 수 없는 복수로 대물림된다. 딸의 죽음, 트로이전쟁 승리, 10년 후 돌아온 아가멤논과 비참한 죽음, 승리를 전하는 전령들과 코로스들 그리고 클리템네스트라와 아이기스투스의 불륜 정도이다. 1부 아가멤논의 귀환에서는 코로스들이 놀이적인 해설과 작가 헤리스의 현대적인 대사들, 극 중 장면의 몰입감을 차단하는 브레히트적인 장면설정과 코로스들의 개입, 테크노 음악, 고전적인 분위기에다 연출이 장면으로 구현해 내는 양식화된 연기와 장면들 사이로 흐르는 현대적인 대사와 장면들이 이피지니아 혼령의 배회와 뒤섞이면서 1부 총량 무게는 늘어나 보였다.
1부는 김정 연출이 연극적 양식으로 묶어내고 우화적으로 풀어내는 특징과 장점을 섞는다. 고대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작가의 언어가 현대적인 장면으로 표현된다. 혼령과 코로스들의 장면 개입들이 혼합되어 플롯의 외경들이 강조되면서 집중력이 흔들리면 1부를 완주하기 힘들었으나 그 고비를 넘긴다. 혈전 된 장면과 스토리들이 용해되고 걷히면서 연출의 장점들이 탄력을 받기 시작하면서 1부 마지막 허들의 고비를 넘는다. 2부부터는 연출로 체득된 대극장 공간의 배치와 배열을 감각적으로 장면의 미장센을 만든다. 2부는 큰딸의 저주와 오레스테스, 엘렉트라의 복수로 채워진다. 무대는 피의 복수와 저주를 예견하듯 대형커튼은 간헐적인 핏물로 채워지고 주춧돌의 색이 저주와 복수를 따라 변화하는 분위기도 흥미롭다. 첫 장면은 저주받은 클리템네스트라가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파리 떼가 온몸을 갉아 먹는 환청에 시달린다. 죽어서도 눈을 감을 수 없는 아가멤논 저주의 복수는 왕비의 몸으로 죽음의 전류를 보내며 저주의 피가 흐르게 된다. 통증으로 왕비는 푸주한(박종태)한테 칼로 등의 살갗을 벗겨달라고 한다. 이 장면을 좀 더 연출적인 힘을 주고 그로테스크한 저주로 달렸으면 어땠을까. 마치 온몸으로 저주가 전이된 것처럼 말이다.
2부는 저주를 받은 클리템네스트라가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장면부터 광기의 폭군 아이기스투스와의 식탁에서의 대화 장면, 무덤의 저주, 엘렉트라와 오레스테스의 만남, 오레스테스가 죽었다는 음모와 아이기스투스의 폭력, 비밀의 탄로, 오레스테스의 모성애를 보이는 장면을 지나 마지막 장면은 왕비와 아이가스투스를 향한 오레스테스의 복수가 이어진다. 왕비의 악몽은 현실로 나타나고 저주의 칼날로 핏물이 되어 버린 뒤 죽음의 최후를 맞으며 인형의 저주는 섬뜩했다. 아가멤논의 불안한 집을 지켜온 주축(돌)은 핏물의 자국처럼 섬광석처럼 변화되어 아가멤논의 혼령처럼 느껴진다. 대물림되어온 복수와 저주를 관통하는 2부 전체 장면들이 명료하고 선명했다. 다만 장면의 미장센들이 재활용되는 분위기였다. 몇 장면의 배치와 구도, 설정을 제외하면 말이다. 간호사가 엘렉트라 데리고 나가면서 3부 엘렉트라와 이피지니아의 혼령이 여전히 배회하는 현재 시점으로 전환된다. 무대는 고대와 현재의 인물들이 섞이고 엘렉트라를 정신분석적으로 다루는 시간으로 변화된다. 1, 2부에서 고전을 보고 3부에서는 드라마 미니시리즈를 보는 것처럼 장면은 디졸브 된다. 3부에서 관통되는 지점은 오드리, 엘렉트라와 동일화되는 죽음과 폭력에 대한 트라우마다. 정신과 의사 오드리는 언니 이피지니아의 죽음, 아버지 아가멤논 살해, 엄마 클리템네스트라의 살인 현장을 목격하고 신체적 증후군 증세(불안, 공포, 저주, 죽음과 살인, 폭력적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엘렉트라는 지옥이 자신을 덮치고 쫓기고 있다고 생각한다.)를 정신의학적으로 분석하는 과정이다.
◆ 엘렉트라와 정신과 의사 오드리의 동일시된 폭력의 잔상과 분열의 트라우마
3부 무대는 엘렉트라의 분열된 정신세계를 상징하듯 개방되어 있거나 폐쇄적으로 닫혀있는 문의 구조로 형상화된다. 문(門)은 엘렉트라의 과거(고대)부터 현재까지 전이되고 있는 죽음과 공포의 트라우마 환영들이 현재에서도 반복되어 일어나고 있다는 환청에 시달린다. 이것은 여전히 세계의 불안한 집들에서 벌어지고 있는 실제 사건의 이야기처럼 엘렉트라는 현재 시간의 피해자처럼 등장한다. 엘렉트라처럼 기구한 운명을 겪고 있는 실제 사건들도 많다는 점에서 작가의 설정과 해석 방식이 신선하다. 대를 이은 살인과 복수, 저주의 환영에 시달리고 있는 엘렉트라한테 오드리는" 우리가 지옥에 있다고 생각하는 그런 것들 사실 모두 우리가 만들어 낸 존재일 뿐이야. 감정의 재구성일 뿐인 거지. 너의 경우에는 죄책감이고. (중략) 신들은 없어. 괴물도 없어, 저주도 없고 현대 의학 전체가 그걸 증명해" 엘렉트라 분열의 무의식을 실제화하기 위해 오레스테스와 대화 장면이 그려지고 엘렉트라는 "(중략) 난 혼자야. 저 위에 신이든 뭐든 있다면, 제발 나 좀 도와 달라구. (중략) 신이 있다면, 제발 끝내줘요. 신이시여. 거기 있어요?" 절규한다. 10장부터는 마치 오드리가 수면 최면을 거는 것처럼 엘렉트라는 과거 시간부터 1, 2부에서 드러난 가족사의 비극을 들려준다. 엘렉트라의 최면(가족사)은 오드리에게 전이되고 극은 반전이 일어난다. 오드리도 엘렉트라 콤플렉스처럼 비극적인 가족사가 밝혀지고 두 사람은 저주를 벗어나기 위해 목에 밧줄을 걸고 자살을 시도한다. 들려오는"지옥이야 엘렉스라, 끝이 없어. 그게 지옥이야. 뛰어내린다고 끝나지 않아. ‟클리템네스트라의 소리가 들려오며 무대는 유령들의 세계처럼 보인다. 무대는 마치 사후세계의 환영들이 쏟아지는 것처럼 엘렉트라, 오드리를 향한 저주와 복수의 가족사가 오마주 되면서 사바세계를 맴돌고 있는 엘렉트라, 오드리 가문의 인물들이 엉켜지고 과거와 현재의 시간이 환영처럼 쏟아진다.
일 곱살 부 터 아버지 이 안(곽은태 분)으로부터 가부장적인 폭력과 아버지 죽음에 시달려야 했던 오드리와 가족의 대를 이은 저주와 폭력, 복수의 트라우마에 시달려야 했던 두 사람은 동일한 내면의 상처(죽음과 살인, 가정폭력)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물로 동일시된다. 마이클은 사후세계와 대화를 시도하는 심령사처럼 유령이 되어 엘렉트라의 환영으로 존재하는 아가멤논, 클리템네스트라, 오레스테스, 이피지니아의 저주의 복수들을 씻김 굿판(정신치료)처럼 치유하고 환영의 아가멤논은 비로소 복수의 고통을 끊고자 한다. 이 불안한 집은 1, 2부 살인, 폭력. 저주와 복수의 아가멤논, 오레스테스의 비극적인 남성 서사에서 3부는 엘렉트라,이피지니아, 오드리의 여성 폭력의 서사로 이어지며 그 질긴 폭력의 시간으로 괴롭힌 환영의 트라우마는 화해와 용서로 치유된다. 마지막 장면은 환자 한 명(엘렉트라)이 죽고, 환영의 실체는 유령으로 엘렉트라는 먼지(죽음)가 된 것으로 설정된다. 오드리는 간호사가 발견한 것으로 처리되면서 간호사를 향해 " 난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걸 지켜봤거든, 그런데 도와드리질 않았어. 늘 그 기억을 안고 살아야겠지. 난 살아갈 수 있어. 그걸 안고 살아갈 수 있어. 이것 봐. 창문이, 창문이 열려있네" 오드리가 살았던 '불안한 집'은 여전히 전소되지 않은 채 문이 열려있다. 폭력으로 찢어진 내면의 트라우마는 클리템네스트라 몸에 새겨진 파리 떼 저주처럼 기억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고통이며 그 기억은 영원히 닫혀질 수 없는 문이며 내면의 현재이다.
◆ 형식 구조의 과함과 덜어냄 사이의 재료들 '기대 이상으로 <손님들>이 살만한 집'
이번 작품은 3부로 이어질수록 배우들 연기도 완숙해지며 5시간의 마라톤을 뛸 수 있도록 했다. 코로스들은 김정 연출다움으로 뛰고, 달리며 무대의 외각을 채웠고, 이피지니아 홍지인은 이미지만으로도 존재감이 커 보였다. 여승희, 문성복, 신윤지, 남재영의 연기도 1,2부별 인물의 내·외면의 감각과 감정, 캐릭터를 차별화해 주어진 인물을 깊게 표현했다. 특히 2부에서는 아이기스투스(윤성원)의 살인으로 왕권찬탈을 한 불안하고 폭력적인 연기, 그럼에도 클리템네스트라를 모성애적인 사랑으로 채우려는 불안과 결핍에 시달리는 연기가 인상적이었다. 3부로 넘어가면서 이 극을 안정감 있게 구도를 만들고 총정리를 현대적으로 한 것은 김문희와 곽은태 배우다. 그만큼 호흡으로 연기의 무게를 표현하며 노련해 보였다. 이번 공연은 아이스킬로스 희랍비극의 무게와 지니 헤리스의 현대적인 해석, 김정의 연출적인 양식으로 5시간 동안 완공시킨 '이 불안한 집'으로 연출의 연극적인 총량에서 지속가능성을 재발견했다.
과함을 덜어내고 김정 연출의 양식화된 연극성을 숙성시킨다면 <손님들> 이후 감각적으로 새로워진 무대로 완숙될 수 있다는 기대감을 채우기에는 충분해 보였다. 작품에 대한 평가 논란도 많은 작품이지만 연출의 장점이 발열(發熱)된 공연이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앞서 많은 말을 했지만 5시간 동안 완공시킨 '이 불안한 집'의 완숙된 구조와 형식의 성과는 아쉬웠다. 좁혀 말하면, '이 불안한 집'은 김정 연출, 지니 해리스, 아이스킬로스가 보이는 공연이었다는 점에서 형식 구조의 과함을 채우는 재료들을 덜어내고 연출의 무대 양식이 완숙(完熟)되어 선명해지길 기대한다. 무대표현의 건축은 필요한 공구만 써도 견고해질 수 있다 외형의 화려한 기술보다 연극건축의 도구를 줄이면서도 불안하지 않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집을 설계하고 지을 수 있다. 반드시 희곡의 설계 도면을 완성할 수 있는 도구만을 선별할 수 있다면, 그것은 김정 연출만의 독창적인 연극형식이 된다. 그럼에도 이번 <이 불안한 집>은 살만한, 살아볼 만한 집이다. 베리어프리 공연으로 세 분(김홍남, 최황순, 윤하원)의 수화 통역사들도 5시간 동안 극중인물의 감정과 대사를 수화(手話)로 전달했다. 아이스킬로스의 희랍비극의 맛과 지니 해리스의 현대적인 해석을 느끼고 싶다면 5시간을 완주하는 의미는 크다. 24일까지 명동예술극장.
대경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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