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공정규 동국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학박사)
평소 학생들의 수업에 열과 성을 다하는 명망 있는 교수가 급성충수염(맹장염)으로 수술을 받기 위해 입원을 했다. 교수는 조교를 통해 자기 강의를 수강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상황을 설명했고, 퇴원 후에 빠진 부분을 보강했다. 그런데 학기가 끝나고 그 교수는 학생들의 강의 평가서를 읽다가 당황스러운 글을 보게 된다.
"입원하려면 미리 알리든지, 계획 없이 수업을 취소하다니 무책임합니다." 교수는 학생이 쓴 그 글을 보고 매우 큰 배신감과 분노를 느낀다. 물론 대다수의 학생은 "교수님 건강하세요" 등 응원과 감사의 글을 남겼다. 그런데도 교수는 단 한 명의 학생이 남긴 부정적인 글에 상처를 받았고, 그 글이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돌았다.
이처럼 우리는 응원하는 사람이 몇 배나 많아도 단 한 사람의 비난에 크게 상처받고 쉽게 헤어나지 못하는 경험을 한다. 이것은 2023년 2월 25일 자 칼럼 '기울어진 뇌(腦) 운동장'에서 말한 '부정성 편향'(negativity bias) 때문이다.
그럼 이를 염두에 두고, 교수의 사례를 다시 살펴보자. "무책임합니다"라고 말한 학생의 말은 조교를 통해서 그 교수의 상황을 알렸다고 했으나, 그 학생이 조교의 말을 듣지 못했거나 내용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그렇지만 학생의 표현 수위도 좀 과한 부분이 있다. 또한, 제대로 알았거나 내용을 이해했음에도 이런 과한 표현을 썼다면, 그것은 타인에 대한 공감 부족과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해 남을 비난하는 학생의 문제이지 교수의 문제는 아니다. 따라서 그 학생의 태도를 안타까워해야 할 문제이지, 교수 자신이 배신감과 분노로 자책할 문제는 더더욱 아니다. 그러니 그 학생 때문에 오랫동안 분노의 감정을 갖기보다 응원해 준 많은 학생들에게 감사의 답글을 쓰는 것이 현명한 대응이다.
그렇다면, '부정성의 힘'(The Power of BAD)은 '긍정성의 힘'(The Power of Good)보다 얼마나 더 강력할까.
뇌과학 연구에 따르면 변연계(limbic system)에서 일어난 부정적 감정을 전전두엽 피질(prefronal cortex)에 전달하는 정서의 네트워크가 전전두엽 피질에서 변연계로 보내는 부정적 감정을 억제하는 이성의 네트워크보다 3배 더 많다고 한다.
'부정성의 힘'을 연구한 로이 바우마이스트는 '부정적인 것 하나를 극복하려면 네 가지 긍정적인 것이 필요하다'는 긍정성 대 부정성 비율 4대 1을 주창한 바 있다.
인간관계는 가까울수록 더 신경 쓰고 아껴야 한다. 가까울수록 상대의 단점을 건드리지 말고 자존심을 할퀴지 말고 비난하지 말아야 한다.
늘 좋았던 관계가 상대의 날카로운 말 한마디나 행동에 의해 상처가 되어 돌이킬 수 없는 관계가 된 경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렇게까지 갈 일은 아니었는데, 우리 뇌에 있는 부정성 편향 때문에 과대평가하고 과대반응한 결과는 아닐까.
마찬가지로 내가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준 경험은 없는지 살펴보는 것도 중요하다. 내가 의도했든 아니든, 내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듯 나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내 주위 사람들에게 상처주는 말이나 행동을 한 번 했다면, 이를 만회하기 위해서 최소 네 번은 잘 해줘야 한다.
대인관계에서 가장 좋은 것은 좋은 말, 좋은 행동을 해주는 것보다 상대방이 싫어하거나 상처 주는 말, 또는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다. 단 한 번의 부정적인 말과 행동이 상대에게는 치명적으로 다가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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