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숙의 옛그림 예찬] 주눅 들지 않고 정성껏 그린 민화 ‘상산사호’

입력 2023-09-01 14:10:17 수정 2023-09-04 08:21:04

미술사 연구자

작가 미상,
작가 미상, '상산사호(商山四皓)', 종이에 채색, 79.3×26.6㎝, 선문대학교박물관 소장

민화 고사인물화다. 오른쪽 위에 반듯하게 '상산사호'라고 써놓았다. 상산사호는 중국 한나라 때 고조 유방이 모시려 했음에도 이를 거절하고 세속을 떠나 상산으로 들어간 백발의 현자다. 이 4명의 노인은 바둑을 두는 사호위기(四皓圍碁) 장면으로 그려진다.

바둑은 낚시하기인 조어(釣魚), 달을 벗 삼는 완월(玩月), 폭포를 바라보는 관폭(觀瀑), 거문고를 연주하는 탄금(彈琴), 차 마시기인 음다(飮茶), 우정을 나누는 한담(閒談), 산책하기인 책장(策杖), 발 씻기인 탁족(濯足) 등을 그린 그림과 마찬가지로 '은(隱)'을 고상하게 여기는 관념이 투사된 그림이다.

은거, 은일이라는 처세관은 과거에 급제해 관직에서 입신양명하는 일이 최고의 자기실현이었던 전통시대에 지배계층의 일원이 출처(出處)로써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드러내는 일이었다. 상산사호도, 죽림칠현도 등은 그런 소극적 또는 낭만적 저항의 주인공을 그린다.

상산사호의 4명, 죽림칠현의 7명은 이름이 역사에 기록된 유명인으로 이들의 행적에서 민화 '상산사호'의 창작자, 소비자인 서민이 본받을 만한 교훈은 없다. '은'은 지배층 내부의 메커니즘이었다. 보통사람이 산으로 들어가면 화전민이 될 뿐이다. 서민들에게 중국 고사도(故事圖)는 교양이거니 하면서 이야기로 받아들여졌다.

1844년(헌종 10) 한산거사가 지은 '한양가(漢陽歌)'에 한양사람들이 그림을 샀던 광통교 그림가게가 나온다. 상산사호도 외에 중국 고사도는 강태공이 낚시하며 때를 기다리는 모습, 유비가 제갈공명을 찾아가 삼고초려하는 모습, 도연명이 귀거래해 소나무를 어루만지는 모습, 이태백의 술 취한 모습 등이 있다고 했다.

고사도를 비롯해 민화로 분류되는 그림에는 산수, 화조, 신선, 동물, 풍속 등 기존의 감상화 장르가 다 있다. 교육적인 책거리와 문자도가 다양하게 전개된 점이 특징이고, 소설을 주제로 하는 이야기그림은 민화에만 있는 것 같다.

이야기그림은 18세기 중반 이후 서울에서 한글소설을 빌려주는 세책집이 성업이었다는 사실과 연관된다. 무명의 소설가들이 번역, 번안, 창작한 이야기를 서민들은 열광적으로 읽었고, '구운몽', '삼국지연의', '춘향전' 등 소설의 주요 장면을 그린 이야기그림 민화가 여러 폭 병풍화로 그려졌다.

민화는 회화의 문법에서 벗어난 못 그린 그림이지만 묘사력 부족에서 오는 미숙함에 주눅 들지 않고 최선을 다해 정성껏 그린 그림이다. 민화의 매력은 20세기에 '발견'됐다. 민화는 표현 양식에 있어서는 기존의 회화와 한눈에 구분되지만 주제나 소재에 있어서는 차별성을 찾기 힘들다. 민화에 고유의 메시지가 장착됐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미술사 연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