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표 대경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구조주의 연극의 정수(精髓)라 할 수 있는 마이클 커비의 <혁명의 춤>(더줌아트센터, 김언 PD)을 들고 돌아온 구순 노장 김우옥 연출의 이번 공연은 초연 후 40여 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뜨거웠다. 무대의 뜨거움을 감각했다면 작품에 내재된 혁명 관련 논쟁과 구조주의를 분해하는 공연 분석은 의미가 없을 듯하다. 미국의 대표적 전위연출가로 알려진 마이클 커비는 60, 70년대 유학와서 작업에 참여한 30대 한국의 연극인을 '구조주의 연극을 가장 잘 표현하는 배우'라고 할 만큼 아꼈다. 김우옥 연출은 80년대 <내.물.빛>(1980), <혁명의 춤>(1981), <겹괴기담>(1982) 3부작 시리즈로 국내 미국 실험연극의 포문(砲門)을 열었다. 구조주의 연극의 난해함은 한국의 80년대 관객들에게는 충격적이었고 거리감이 있었다. 초연 후 23년이 흘렀고 한국연극의 실험은 30, 40대 연출가들에 의해 다양화되고 있다. 극장과 공간이 해체되고 탈 재현성을 추구하는 포스트 드라마 연극과 장르 혼종 시대를 맞아, 노장의 연출가는 "연극은 죽었다. 더 많은 실험극이 필요하다"라고 일갈(一喝)한다. 마이클 커비가 추구하던 80년대 <혁명의 춤>을 복원한 지금의 동시대에도 핵무기, 탄도미사일을 내세운 전쟁의 거리가 있고 혁명의 꿈은 진행 중이다.
◆구순 노장의 구조주의 실험극, 연극 연출가들의 표현 형식과 실험 사이
허구에 종점이 없는 상상으로 예측할 수 없는 스토리를 재현하는 넷플릭스의 클릭 한 번으로 재생되는 영상에 시청자들은 열광하고 아이돌 그룹의 칼군무로 세계가 들썩이는 시대임에도 연극은 수 천 년을 버텨온 순수종합예술의 토종 종자임을 자처한다. 연극의 요소들을 다양한 각도로 해석되고 해체되며, 공간과 텍스트는 무대에서 변주되는 파동으로 또 다른 연극 언어를 생산해내고 있다. 김현탁 연출은 고전과 현대언어의 텍스트를 해체하고 재조립해 김현탁의 언어를 입히고, 구자혜 연출은 연극의 존재와 본질에 대한 실험을 지속하고 있다. 전인철 연출은 공간과 스토리, 연극형식을 현대적 감각으로 채색하고 있고, 김수정 연출은 부조리한 세상을 향해 날것의 언어로 맞선다. 이진엽 연출은 공동체, 사회문제, 노동자, 소수자의 소재를 들고 이머시브와 장소 특정 연극 형식을 융합해 커뮤니티 연극이라는 장르를 개척하며 동네 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닌다. 세종문화회관의 싱크넥스트 23 <우주양자마음>으로 돌아온 배요섭 연출은 인간, 공간, 지구, 우주, 수학의 관계들을 양자역학의 논리로 풀어낸 공연을 통해 연극적 실험보다 공학 전공자가 일방향으로 전달하는 기초과학실험 같은 인상을 주었다. 실험의 방식이 어찌 되었든, 동시대 한국연극은 표현형식의 실험만을 지속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80년대 실험극은 구조와 형식을 전복시켜 연극의 형식을 전환하는 실험이었다. 김우옥 연출의 <혁명의 춤>에 내장된 실험적 시도는 AI 인공지능 시대에서 보면 파격적이라 할 수는 없지만, 연극의 형식주의를 거부해온 마이클 커비의 실험극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연극 연출 전공자들은 꼭 경험해 보아야 할 교과서 같은 작품이라 하겠다.
이번 공연에서 노장의 연출가는 40여 년 만에 온전히 마이클 커비의 70, 80년대의 뜨거웠던 구조주의 실험연극을 복원하기 위해 도전하는 것처럼 보였다. 도자기 장인이 조선 시대 백자를 복원하기 위해 수백 번 불과 사투를 벌이고 깨고, 부수고, 굽기를 반복하는 것처럼 말이다. <혁명의 춤>의 스토리는 파편적으로 분절되고 있다. 연극의 구조는 퍼즐 식으로 해체된다. 극적인 사건과 인물의 행동, 소리, 빛, 극적인 동작, 대화는 연속적이지 않고 비순환적 장면이 이어진다. 관객은 해체된 연극의 구조와 파편적인 스토리를 보고 듣게 되는데 장면과 장면이 비연속적으로 충돌하며 스토리는 조합된다. 연극의 문학성을 완전히 해체해 연극 구조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구조주의 연극의 특징이다. 스토리는 마술처럼 착시현상일 뿐이다. 공간에서 발화되는 이미지, 빛, 소리, 오브제, 배우의 반복적인 동작으로 공간과 사건을 장면으로 인지하게 되고 스토리는 이미지의 연결로 조합되며 다시 이미지를 재생산한다. 마치 세계기억력 대회에서 수백 가지의 사물을 놓고 스토리를 만들어 기억하는 방식처럼 말이다. 스토리에 집중하면 <혁명의 춤>은 난해해지고 이미지와 구조의 현상으로 인식하면 공연은 싱거워진다. 극에 집중할수록 연극의 구조와 원리가 해체되면서도 각자의 감각하는 방식으로 메시지는 구체화된다.
◆ 소리, 이미지, 음악, 동작과 분절된 대사로 완성되는 <혁명의 춤>
스토리는 단지 8개의 장면(손전등과 파도 소리, 샹들리에 불과 왈츠, 삼각대 등불과 총소리, 드럼통 불과 개 짖는 소리, 실내등과 단파방송의 궁전 소리, 거리등과 음악 소리, 모닥불과 비행기 소리, 손전등과 사이렌 소리)을 통해 조합된다. 객석은 마주 보게 되어 있고 그 사이 직사각형을 이루는 장방형 공간이 무대 공간이다. 몽타주처럼 비연속으로 투사되는 장면 패턴에, 등장인물들은 단지 39까지의 숫자로만 나열되어 있다. 극의 구조를 구성하는 것은 배우들의 반복적인 동작과 분절된 대사, "기다려", "여기", "들려?" "이쪽이야", "그들이 여기 있어.", "누군가 오고 있어", "준비됐어?" "여기 있어"가 전부이다. 숫자화된 인물들은 수신호를 보내는 것처럼 두 손을 번쩍 들어 마주하는 등, 반복적인 동작을 연속적으로 표현하다. 발소리, 기침, 성냥갑을 여는 소리, 두드리는 소리, 의료기 이동 소리, 전파와 라디오 소리 등이 무대의 정적을 감각시켜 관객의 오감을 자극한다. 이러한 소리는 장면별로 다르게 나타나고 반복되는데, 인물들은 정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신분과 관계가 모호하다. 마지막 승리의 춤을 위한 혁명군이거나 혁명을 꿈꾸는 민중들이다. 그들의 국가, 지역, 계급 등을 알 수 없고 무대를 마치 전쟁터처럼 바라보게 된다.
장방형의 공간 좌우로 배우들이 5, 6명의 그룹으로 나뉘어 있다. 무대에는 드럼통에 불이 켜져 있다. 나무통과 삼각대에 기름 등불이 매달려 있다. 분위기는 전쟁터의 야전(野戰)처럼 보이기도 한다. 무대를 타격하는 것은 불빛, 소리, 배우들의 행동과 이미지들이다. 첫 장면부터 배우들은 손전등 불빛으로 특정 공간을 반복적으로 비추며 "기다려", "여기야", "누군가 오고 있어" 등을 반복적인 말과 동작, 손짓과 행동을 드러내며, 마치 암호를 주고 받는 듯한 손 쳐들기, 손 벌리기, 성냥 켜기 등의 반복적인 동작들로 장면을 인식시키고, 감각을 깨우는 소리만으로도 연극의 구조를 인식하게 한다. 장면 속 대립되는 대상은 "그들일 거야", "누가 오고 있어" 등의 대사에서 알 수 있듯이 드러나지 않는 존재들이다. 반복적인 동작과 분절된 대사들이 암전으로 끊어졌다 다시 나타나는 장면으로 긴장과 충돌의 극적 분위기, 상황에 따라 그 느낌이 다른 감정들이 전달되는데, 극의 속도와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대사 사이의 가시화되지 않은 혁명의 상황들이 대사의 너머를 상상할 수 있도록 자극하기 때문이다.
2장에서는 왈츠곡이 흐르고 가면무도회의 장면으로 바뀌면서도 라디오 단파 소리가 겹쳐지며 장면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도록 혼선을 준다. 사이렌 소리는 죽은 자를 살리는 장면으로 바뀐다. 춤, 반복적인 동작, 제스처, 분절된 대사, 소리는 혁명을 완수하기 위한 인물들의 신호처럼도 느껴지는데 여기서 관객의 오감은 극대화된다. 6장 '거리등과 이국적인 음악 소리' 장면은 '혁명의 죽음'을 암시한다. 알 수 없는 한 남자가 바닥에 쓰러져 있다. 그 죽음의 흔적에 테이프로 형태를 만들고 현장에는 플래시가 터지며 카메라로 기록된다. 누군가 나타나 죽음을 애도(哀悼)하고 사라진다. 죽은 자와 애도하는 자의 관계는 모호하다. 의문의 죽음, 그 죽음을 애도하고 기록하는 인물들의 정체를 알 수 없다. 혁명군의 적인지, 혁명의 춤을 완수하는 동지인지 알 수 없다. 숨은그림찾기 처럼 8개의 파편적인 에피소드와 반복되는 대사, 움직임과 소리, 오브제들과 소품들이 하나의 이야기로 향하면서 구조주의 퍼즐이 완성될 때 쯤 혁명은 공허한 깃발의 춤판이 된다. 혁명은, 그 주체든 혁명의 대상이든, 민중의 피로 붉어지는 죽음을 피해갈 수 없다는 것일까. 이어지는 장면에서는 승자가 부재한, 고요한 혁명의 깃발만이 펄럭이고, 마지막 장면에서는 분절되고 파편적으로 들렸던 소리가 연결된다. 미완의 혁명의 춤은 소리, 동작, 이미지로 완성된다. 언어를 최대한 절제하고 스토리를 물화시켜 소리, 움직임, 빛, 조명, 동작, 오브제로 구성한 구조주의 연극에다 실험극의 엑스레이를 투사해 무대로 선명하게 복원해낸 노장 연출가의 (연극) 혁명의 춤은 여전히 살아서 펄덕거린다.
◆ '혁명의 춤'판의 불안함과 민주주의
79년 궁정동의 10, 26사태를 지나 80년대 신군부의 정치적 혼돈의 시대에 올려졌던 <혁명의 춤>은 40여 년 동안 김우옥 연출을 떠나지 않았지만, 한국사회의 민주주의는 성숙해져 있다. 그럼에도 세계는 여전히 전쟁의 두려움을 경험하고 있고 정치 대립과 분열은 지속된다. 미·중 갈등의 치열한 전투는 세계를 주도하려는 경제 패권을 다투는 혁명의 춤판으로 이어지고 있고, 욕망으로 질주하는 인류가 존재하는 한 자국의 '혁명의 춤'을 완수하기 위한 갈등과 분열은 반복되는 <혁명의 춤> 대사처럼 40여 년 뒤에도 반복될 것 같다. 불안한 것은 인간이다. 민중의 동의를 얻을 수 없는 '혁명의 춤'판은 그 불안함으로 죽음을 향해 시대의 다른 깃발로 펄럭일 것이다. 평생 지켜온 연극 무대를 향한 김우옥 연출의 열정은 마이클 커버의 3부작과 별들 시리즈, 90년대 아동청소년극으로 일본 오키나와로의 해외 진출을 유도하며 어린이 청소년극 발전을 주도하던 30, 40년 전 시간에서 바뀐 것이 없다. 구순에도 연극 무대를 향한 실험을 계속하고 있다는 것은 제대로 된 연극적 실험을 하라는 경고로도 들린다.
구순 노장의 김우옥 연출이 여전히 무대에서 현역으로 공연하고 있다는 것은 어찌 보면 한국연극의 또 다른 가능성을 마련해 주고 있는 것이다. <혁명의 춤>이 공연된 더줌아트센터는 대학로 연극, 제작극장들과 차별화를 시도하며 시선을 받고 있다. 마이클 커비의 구조주의 연극을 생산적으로 분해하고 조립할 수 있도록 숙련된 몸의 감각을 다 보여주지 못한 배우들이 아쉬웠고 "관객들이 마주 보는 무대 공간이 춤처럼 열광적인 혁명의 분위기를 끌어내는데 방해가 되었다(연극평론가 김기란)"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배우들은 연출에 따라 구조주의 연극을 완주했고, 특히 차희 배우는 젊은 배우들과 함께 섞여 템포 감각을 노련하게 유지했다. <내·물·빛>이 공식적인 무대에서 공연된다면, <겹괴기담>, <혁명의 춤>과 이어지는 마이클 커비 3부작을 연속해서 볼 수 있게 된다. 김우옥 연출의 실험극 3부작 전을 기대해봄직도 하다. 앞으로 젊은 연출가들과 공동으로 구조주의 실험극을 현재화하는 것도 의미가 있는 작업일 것이다. 많은 연극평론가들이 김우옥의 공연을 보러 왔고, 노장의 연출가는 '관객과의 대화'를 주도하며 구조주의 연극의 개념과 <혁명의 춤>의 의미를 설명하며, 이러한 연극 실험을 지속해 나가야 하는 이 시대의 소명을 강조했다.
김건표 대경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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