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신경 좀 꺼줄래

입력 2023-08-24 11:35:01 수정 2023-08-26 07:10:33

케빈 윌슨 지음 · 홍한별 옮김/ 문학동네 펴냄

소설
소설 '신경 좀 꺼줄래'는 주인공 릴리언과 부모에게 제대로 된 돌봄과 애정을 받지 못한 쌍둥이가 만들어나가는 일종의 대안가족 이야기를 담았다. 사진은 아이를 돌보고 있는 보호자. 게티이미지뱅크
케빈 윌슨 지음 · 홍한별 옮김/ 문학동네 펴냄
케빈 윌슨 지음 · 홍한별 옮김/ 문학동네 펴냄

여기 감정이 격해지면 몸에서 불이 나는 아이들이 있다. 아이의 몸에서는 희고 푸르고 붉은 불꽃이 뿜어져 나온다. 번개가 치듯 화르르 타오르는 불에 아이들이 입은 옷도, 주위의 모든 것도 새까맣게 타지만 정작 아이들은 멀쩡하다.

이런 비현실적이고 초자연적인 소재를 현실적인 배경에 완벽하게 조화시킨 이야기, 케빈 윌슨 작가의 '신경 좀 꺼줄래'다. 출간되자마자 뉴욕 타임즈 베스트셀러에 오른 것은 물론 미국 NBC 방송사의 '투데이 쇼' 북클럽에 선정돼 큰 사랑을 받았다. 이뿐만 아니라 다수의 매체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됐다.

이 책이 이토록 사랑받은 이유는 단 하나. 가족, 사랑, 책임 등에 대한 이야기를 신랄한 유머와 따뜻한 온기, 경쾌한 재치를 적절하고도 유쾌하게 섞어 풀어나갔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불타는 아이들' 열 살 상둥이 베시와 롤런드, 그리고 친구의 부탁으로 이 아이들을 돌보게 된 릴리언.

28살의 릴리언은 고등학교 졸업 후 계속 아르바이트만 전전하며 산다. 릴리언에게 미래에 대한 고민은 없다. 그는 그저 현재를 참을 만하게 만드는 데만 신경쓰며 하루하루를 흘려보내던 차 고등학교 동창 메디슨에게 편지를 받는다. 메디슨은 릴리언이 맡아주었으면 하는 일자리가 있다며 그를 부른다.

메디슨이 릴리언을 찾은 것은 그의 남편 재스퍼와 전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 때문이었다. 베시와 롤런드는 감정이 요동치면 피부에서 불꽃이 타오르는 특이한 성질을 가지고 있는데 얼마 전 그들의 엄마가 세상을 떠나면서 아이들은 반쯤 방치된 채 지내고 있다. 심지어 그들의 아빠 재스퍼가 국무장관 후보로 내정되면서, 무사히 국무장관이 될 때까지는 이 기이한 아이들이 일을 망쳐선 안됐다.

그렇게 릴리언에게 조용하고도 또 무사히 이 두 아이를 돌봐야 한다는 임무가 생겼다. 하지만 그는 아이를 돌본 경험이 있기는커녕 평생 아이가 있는 삶을 살 거라고 생각도 해본 적이 없다. 시작은 어려울 수밖에…아이들과 릴리언은 서로를 그리 믿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함께 또 꾸준히 평범한 일상을 보낸다. 아침에는 함께 요가를 하고 점심에는 농구를 하거나 수영장에서 놀거나 수학 공부를 한다. 밤에는 책을 읽어주면서 함께 지내는 나날은 쌓여가고 세 사람은 점차 깊은 친밀감을 느끼고 서로를 의지하게 된다.

'나를 빤히 보는 아이들을 보며, 내가 이 아이들에게 나 자신을 보게 되리란 생각을 했다. 이 아이들은 나였다. 사랑받지 못하고 망가진 아이들. 나는 이 아이들이 원하는 걸 갖게 해줄 생각이었다. 애들은 나를 할퀴고 발로 찰 테지만 나는 이 아이들을 건드리는 사람은 누구라도 할퀴고 발로 찰 생각이었다'

작가 케빈 윌슨은 그간 별난 등장인물들이 비관습적이고 색다른 가족 시스템 안에서 관계를 맺고 하나가 되는 사랑스러운 소설을 쓰는 데 특별한 재능을 발휘해왔다. 특히 작가는 우리가 태어난 가족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가족을 중심에 두고 이야기를 펼쳐 나가는데 '신경 좀 꺼줄래'도 그렇다. 아웃사이더로 살아온 릴리언과 부모에게 제대로 된 돌봄과 애정을 받지 못한 쌍둥이가 맺은 일종의 대안가족 같은 관계가 소설을 끌고나가는 핵심 이야기다.

현재를 그저 견디기만 하던 세사람이 서로를 끌어안기까지, 그 과정은 뜨겁고 불타오르고 파괴적이지만 동시에 아름답고 다정하다.

릴리언은 스스로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오히려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여기지만 이 아이들만은 품어 안고 싶다고, 아이들을 세상으로부터 지키고 싶다고 생각한다. 비록 아이들 몸에서 제멋대로 불도 나지만 더 나은 삶을 누릴 자격이 있다고 본다. 이런 릴리언의 다짐처럼 작가는 더없이 다정한 이야기를 독자에게 선사한다. 312쪽, 1만6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