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 쉼터로 지정된 경로당만 700곳↑
그늘 찾아 헤매는 노인들 "경로당 보다 마음 편해"
폐쇄적인 분위기에 제 기능 못해, 문 잠긴 곳도 다수
매년 대구시가 폭염 종합대책의 하나로 1천개 넘게 지정하고 냉방비를 지원하는 '무더위 쉼터'가 폭염 취약계층인 노인들로부터 외면받고 있다. 일부 무더위 쉼터는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다는 취지와 달리 회원제로 운영되거나 아파트 주민들만 출입이 가능하도록 배타적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대구 무더위 쉼터 중 60%는 경로당
1일 대구시에 따르면 대구에 있는 무더위 쉼터는 모두 1천220곳이다. 냉방 시설을 갖춘 경로당‧주민센터‧은행 등을 주로 지정하는데, 이 중 경로당 등 노인시설이 736곳(60.3%)으로 가장 많았다. 금융기관 222곳(18.2%), 주민센터 150곳(12.3%) 등이 그 뒤를 이었다.
무더위 쉼터는 더위를 피하고자 하는 지역민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이다. 매달 12만5천원의 냉방비를 대구시로부터 지원받는다. 그러나 일부 노인 등 폭염 취약계층에게는 '그림의 떡'이나 다름없다.
취재진이 31일, 1일 이틀간 경로당 등 노인시설 16곳을 방문한 결과 대부분이 회원제로 운영돼 일반 시민들이 편하게 접근하기 어려웠다. 아파트 입주민용 경로당이 무더위 쉼터로 지정된 경우도 다수였다.
달서구 감삼제1경로당에서 총무를 맡고 있는 장정자(82) 씨는 "회원 말고 다른 주민이 오는 경우는 아직 없었다"며 "경로당 자체가 회원들이 모여 노는 공간이기 때문에 갑자기 외부인이 찾아오면 서로 불편할 것 같다"고 말했다.
회원들조차 경로당이 무더위 쉼터로 지정됐다는 사실을 모르는 경우도 많았다. 북구 태전동의 한 경로당에서 만난 노인은 "무더위 쉼터라 방문했다"는 취재진의 말에 "여기는 동네 노인들이 모이는 건데 잘못 알고 있다. 가입비와 회비를 내야만 들어올 수 있는 곳"이라고 대답하기도 했다.
취재진이 방문한 노인시설 중 5곳은 무더위 쉼터 푯말을 버젓이 달고도 문이 굳게 잠겨있었다. 내부를 확인해 봤지만 텅텅 비어있어 무더위 쉼터의 의미를 무색하게 했다. 한 구청 관계자는 "일부 경로당은 이용하는 인원이 적어 임시 폐쇄했다. 경로당 운영을 위임받은 관리자들이 이용자가 적으면 자체적으로 판단해 문을 닫는다"며 "구청에서는 항상 열어두라고 권고하고 있기는 하나 강제성은 없다"고 해명했다.
◆평일에도 반월당역 벤치는 포화 상태
경로당에 쉽사리 접근하지 못하는 노인들이 향하는 곳은 뜨거운 햇볕을 피할 수 있는 다리 밑이나 지하철역 안이다. 31일 오후 1시에 찾은 반월당역 만남의 광장 중앙분수대는 50여 명이 넘는 노인들로 북적였다. 주변 벤치는 이미 가득 찬 상황이었고, 앉을 자리를 찾지 못한 이들은 바닥에도 걸터앉았다.
이들은 대부분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무더위 쉼터의 존재를 몰랐고, 경로당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고 있었다. 매일 낮부터 오후 5시까지 만남의 광장에서 시간을 보낸다는 90대 장모 씨는 "무더위 쉼터란 데가 있는 줄도 몰랐다"면서 "경로당은 동네 아는 사람만 모이는 것 같아 불편한데 지하철역은 편히 앉아 있을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광장 분수대 앞에서 더위를 식히던 김홍자(73) 씨 역시 "수성구민인데 관내 경로당보다는 지하철이 편하다"며 "반월당역은 지나다니는 사람도 많고 사는 지역 따지지 않고 편히 올 수 있어 서너 시간씩 있다가 간다"고 말했다.
같은 날 오후 북구 공항교에서 피서를 하던 손경상(67) 씨는 "일주일 내내 공항교 밑을 찾는다"며 "좁은 경로당에서 에어컨 바람을 맞는 것보다 여기 나와 자리를 깔고 앉아 바둑도 두고 수박도 나눠 먹는 게 훨씬 좋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무더위 쉼터가 노인들의 폭염 대책으로 효과가 있는 것은 맞지만, 인식과 접근성 개선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폭염 기간에는 회원으로 등록되지 않은 노인 분들도 편히 더위를 식힐 수 있도록 지자체 차원에서 인식 개선을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민주당 "李 유죄 판단 대법관 10명 탄핵하자"…국힘 "이성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