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정 서양화가 메세나 지원 19점 기증…‘사랑과 평화’(Love & Peace)’ 화폭 담아 왕성 활동
"대구는 우리나라 근대미술의 중심지이자 현대미술의 발원지이지요. 제 작품을 대구 메세나 운동을 위해 기증한 건 대구 미술의 르네상스를 염원하는 마음을 담아서 입니다. 기업 차원을 넘어 작가 스스로 참여도 중요하지 않을까요?"
대구문화예술진흥원이 주축이 되어 펼치고 있는 범시민 메세나 운동은 서울에서도 관심이 커지고 있다. 세계의 공통어인 하트로 '사랑과 평화'를 캔버스에 형상화해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온 대구 출신 서양화가 김세정 씨는 자신의 작품 19점을 내놓은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며 "대구가 현대미술의 중심으로 다시 서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대학(대구가톨릭대 미술학과·당시 효성여대) 졸업 후 한국미술협회 여성분과위원장과 서울미술협회 부이사장을 역임하는 등 줄곧 서울 화단에서 활동했다. 하지만 연륜이 쌓일수록 대구미술의 부흥을 바라는 마음이 커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선생에게 대구와 미술은 어떤 존재인가?
▶'조선의 인재 절반이 영남에서 나왔고, 영남 인재의 절반이 선산(善山)에서 나왔다'(이중환의 '택리지')라고 했다. 선산을 중심으로 대구경북에 그 만큼 뛰어난 인물이 많았다는 의미다. 특히 대구는 근대미술의 중심 이었다 또 현대미술의 발원지였다. 이쾌대, 이인성 같은 근대미술의 거장이 활동했고, 무수히 많은 뛰어난 화가들이 대구 피난 시절을 거쳐 갔다. 현대미술운동에서도 대구 출신이거나 대구와 인연이 있는 인물이 중심을 이루었다. 기업들도 팔공산 기를 받아서인지 삼성 등이 대구에서 기반을 잡지 않았나.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대구미술인들은 여러 모임이나 연구소를 만들어 함께 공부하고 경쟁하며 탄탄하게 실력을 다져갔다. 전통과 현대를 접목했고, 피난지 대구에서는 추상화와 초현실주의 경향을 펼쳐 보였다. 제가 미술을 배운 경북예고도 예고로서는 전국에서 두 번째로 개교했다. 계명대 미대를 정점식 교수가 이끌었고, 영남대 미대를 고 장석수 선생과 정은기 선생이 만들었다. 당시 효성여대 미대는 최근배 선생님에 이어 수출디자인센터 초대 이사장으로 가신 세계적 영화감독 봉준호 씨의 선친 봉상균 교수님과 정태진 교수님에 의해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기증 문화가 특별한 지역인데.
▶이건희 컬렉션은 대한민국 문화·예술의 지형도를 바꿨다고들 한다. 지난 2021년 이건희 전 삼성회장이 대구를 대표하는 근대화가 이인성의 대표작 '노란 옷을 입은 여인상'을 포함 21점을 기증했다. 대구는 누가 무어라 해도 미술도시다. 대구 메세나 운동에 기업은 물론 더욱 많은 시민들이 동참했으면 한다.
-인도에 작품을 기증했는데 무슨 이유라도 있나.
▶한국과 인도 정부요인, 경제인들 교류에 보탬이 되기를 바랐다.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가 제 삶의 모토인 데 두 나라간 상호 우호관계가 깊어지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김 씨는 교도소 같은 어두운 곳에 적극적으로 작품을 내놓고 있다. 그림만이 어두운 곳을 비출 수 있다는 믿음에서다. 작품이 꼭 있어야 할 곳으로 가야한다는 신념이다. "시각적인 효과는 오래 가기 때문에 좋은 에너지를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김 씨는 강조했다. 보는 이들이 편안함과 정화를 느끼도록 하는 데 중점을 두고 그림을 그린다, 사랑과 평화를 전하고자 하는 마음에서다. 모든 작품의 제목은 '사랑과 평화'(Love & Peace)' 하나다. 세상에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오직 그 것 이어서다. 세상에 보다 많은 사랑을 전하기 위해 기증과 선물에 적극적이다. 타 종교인, 외국에도 전해져 여러 결실을 맺고 있다고 그는 밝혔다. 현재 명동성당 기증을 위한 협의가 진행 중이라고 한다.
-대구 미술 발전을 위해 조언을 한다면.
▶대구경북의 백년대계를 위해 대구경북신공항 건설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그에 못지않게 예술진흥이 절실한 시기라고 생각한다. 대구가 고향인 봉준호 감독과 영화 '미나리', BTS를 보라. 문화가 세계를 지배한다. 대구 미술이 다시 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먼저 10명만이라도 미술인을 집중 육성하는 행정이 이루어졌으면 한다. 한국 미술의 중심으로 다시 서고, 나아가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미술관을 들려 달라.
▶미술은 제게 인생의 강을 붓을 타고 건너는 구도의 성찰이었다. 연필 들고 낙서하기 시작한 어린 시절부터 그림은 친구이자 놀이터였다. 평생을 '인간 붓'으로 살아오면서 내면으로는 구도의 길이 되었고, 표면으로는 색채로 타인을 즐겁게 해줄 시각 언어가 되어갔다. 30번이 넘는 개인전을 매개로 감히 예술이란 경지를 받아들이면서 돌아보니 예술은 사랑이며 사랑은 나눔이라는 걸 깊이 체험했다. 환경미화원 같이 주변을 깨끗하게 챙기려는 자세로 붓을 놓지 않고 있다.
-미술운동가라는 느낌이 든다.
▶아름다울 미(美)자를 해석하면 하늘에 제사를 드리기 위해 뿔 달린 양의 머리를 제대위에 올려놓은 모양을 말한다. 술(術)은 바뀐다는 의미다. 미는 그냥 두어도 아름답지만 그렇지 못한 추(醜)를 아름답게 바꾸어 주는 술이 된다는 것이다. 세상 어둡고 추한 곳을 환경미화원처럼 밝혀주고, 어두운 마음을 시각적인 위로와 연민으로 치유를 해가며 색을 통해 에너지를 전해주는 작업이 미술인의 숙제가 아닐까. 미술은 상대의 마음 속 깊이 각인되고, 우울하고 힘들어 하는 이에게 색채의 노래를 전해줘 사회 전체가 사랑과 평화의 캔버스가 되는 작업이라고 믿는다. 화가라면 숙명적으로 언제 어디서나 밝고 환한 마음을 향해 함께 치유해야하고 동시대의 당면한 어려운 모든 삶의 문제를 해결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끝까지 남겨진 인생 숙제를 해야 한다고 다짐한다. 소록도를 돕는 '참길회' 회원의 마음으로 미술운동을 해왔다. 다행히 사랑과 평화를 매개로 꾸준히 해올 수 있어서 감사드린다.
-사랑과 평화에 천착하는 데.
▶제 작품의 모티브는 작품의 형상을 넘어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 시각철학자로서의 느낌이 크다. 구체적으로는 사랑의 상징이자 심장을 뜻하는 하트(Heart)다. He는 하느님, Art는 작품이다. 그림으로 하느님께서 우리를 만드셨고, 우리는 하느님께서 주신 생명을 받아 인생을 살아가고 진리를 깨달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이 제 소명이다.
-계획을 듣고 싶다
▶이제 겨우 코로나19를 벗어나 해외 전시를 구상하고 있다. 일본과 파리에서 섭외 중인데 오히려 이제까지 갈망해온 뉴욕 전시 보다는 아직은 서울에서 활동 하는 비중이 클 것 같다.
◆김세정 선생의 작품 세계
화력 60년 동안 김세정 서양화가의 캔버스를 관통해온 키워드는 Heart(심장)다. 구체적으로는 Love(사랑)와 꽃으로 형상화돼 왔다. 작품 속 하트들은 하나하나마다 색상과 모양, 구성이 제각각이다. 이후 하트들은 점점 진화와 변주를 거듭해 십자가 시리즈 등으로 모티브가 확장된다. 생명의 역동적인 꿈틀거림에서 사랑의 본질인 순수와 고결, 무한함을 체험케 해 누군가에게는 기쁨을, 다른 누군가에게는 위안을 안긴다.
결혼 후 육아와 사회봉사 활동에 비중을 두다가 지천명(50세)을 앞두고 변종하 화백의 강력한 권유로 다시 본격적으로 붓을 잡아 한 때 멀어졌던 미술에 혼을 쏟아 부었다. 최근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달 광주 컬쳐호텔 등 3곳에서 열린 합동 전시에 참여했다. 달빛동맹 문화예술 교류의 일환이다. 달빛동맹은 '달구벌'의 달과 '빛고을'의 빛을 합쳐 만든 말이다. 대구 작가 10인과 광주 작가 10인이 펼친 합동 전시다. 앞서 4월에는 경북예고 미술과 동문전인 제15회 예미전에 출품했다. 그는 이 학교 1회로 전체 수석 입학했으며 3년 장학생을 지냈다고.
30차례 넘게 전시회를 열었다. '하트=사랑'이라는 명제는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통용되기에 컬레버레이션(협업) 제의를 종종 받는다. 창조경영 및 한국재능나눔대상·미래선도 혁신 한국인 대상·한국문화예술교육 총연합회 문화예술인 대상을 수상했다. 오랜 기간 서울에서 활동했지만 소속은 대구 미협이다. 대구시 초대작가로서 언젠가 봉사를 하고 싶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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