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겨울 지음/세미콜론 펴냄
누구에게나 소울푸드(영혼을 뜻하는 Soul과 음식을 뜻하는 Food의 합친 말. 영혼을 흔들 만큼 인상적인 음식을 가리키는 용어)가 있다. 희한하게도 성별로 나눠보자면 소울푸드는 대개 두 가지로 좁혀진다. 물론 모두가 그런 건 아니겠지만 여성에게 소울푸드는 떡볶이, 남성에겐 돈가스다.
신기한 일이다. 그렇게 하자고 사회적 합의를 본 것도 아닌데 여성인 기자 역시 소울푸드로 떡볶이를 늘 꼽았다. 무엇이 시작이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나의 떡볶이 사랑의 시초는 머나 먼 초등학생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90년대생이라면 아마 다수가 공감할 터. 당시 학교 앞 문방구에서 파는 컵 떡볶이는 대세였다. 300~500원만 들이면 작은 종이컵에 문방구 아주머니의 인심이 가득 담긴 떡볶이를 받을 수 있다.
기자가 다닌 초등학교 앞에는 무려 나란히 붙은 세 곳의 문방구가 있었는데, 우리가 불렀던 말에 의하면 '셋째 점방'에서 파는 떡볶이는 단연 최고였다.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미친 감칠맛이었는데 아무리 엄마에게 그 맛을 설명해 줘도 엄마가 만든 떡볶이는 셋째 점방 아주머니의 떡볶이를 따라가지 못했다. 후에 들은 이야기로는 그곳의 떡볶이 비결은 조미료. 하루는 기자 동생이 아주머니가 조미료를 때려 붓는 모습을 보고 기겁을 했더랬다.
한 번 발 들인 떡볶이 사랑은 20대까지 이어졌다. 누구나 한 명쯤 떡볶이 메이트가 있지 않은가. 20대 중후반쯤에는 가장 친한 친구와 함께 전국의 유명 떡볶이를 모두 먹어보자는 '떡볶이 투어' 계획도 세웠다. 무려 옷도 떡볶이 색으로 맞춰 입고 말이다. 떡볶이 투어는 1회에서 그치긴 했지만 창원, 마산으로 떠난 떡볶이 투어에서 우리는 삼시세끼 떡볶이만 먹고 인증샷을 남겼고 "쟤네 뭐야? 유튜버야?"하는 주변인들의 수군거림까지 들었다.
기자의 떡볶이 사랑은 지난해에 끝났다. 취직 후 늘어난 체중에 다이어트를 감행하면서 떡볶이는 1년에 한두 번을 제외하면 거의 입에 대지 않았다. 요즘은 간혹 먹기도 하지만, 다들 알다시피 어마어마한 떡볶이의 칼로리 때문에 떡볶이 사랑은 이제 예전만치 못하다.
그래서일까. 이 책이 처음에 눈에 띄었을 때, 마치 옛사랑을 만난 느낌이었다. 유튜브 채널 〈겨울서점〉 운영자이자 라디오 DJ 김겨울의 떡볶이 예찬론. <언제나 다음 떡볶이가 기다리고 있지>다. 역시 떡볶이는 아마 대한민국 모든 여성의 소울푸드가 아닐까 하는 기자의 예측이 맞아떨어지는 듯하다.
라면, 햄버거, 치킨은 싫고 토마토, 비건 치즈, 두유로 구성된 흡사 스위스 장수마을 할머니 건강식단을 고수한다는 김 작가가 절대 놓칠 수 없는 K-푸드가 있다는데…. 그게 바로 떡볶이다. 그는 냉동고 가장 위쪽 한 칸을 할애해 온갖 떡볶이를 차곡차곡 쌓아둘 정도로 굉장한 떡볶이 애호가다.
책에는 떡볶이에 관해서라면 누구나 공감할 이야기가 수두룩하다. 집에서 만들어 먹던 떡볶이와 동네 분식점 국물 떡볶이, 문방구에서 팔던 컵 떡볶이, 배달 떡볶이, 술과 함께 안주로 혹은 술 마신 다음 날 해장용으로 먹는 매운 떡볶이까지…. 책의 추천사를 쓴 방송인 김소영 씨가 말했듯이 떡볶이를 좋아하는 사람이 이 책을 읽고 나면 '나의 떡볶이 사랑'은 김겨울을 따라가지 못할 정도임을 알게 된다.
단순 떡볶이가 맛있다는 이유일까. 떡볶이는 김 작가에게 '스스로를 위로한 유일한 학식이자 인생의 동반자'이기도 했다. 시험을 망친 날, 친구와 싸운 날, 일이 고단한 날, 사람이 미운 날…, 김 작가는 떡볶이가 주는 매콤하고 달콤한 위로에 기대어왔다. 아무 생각하지 않고 맛있는 떡볶이를 씹어 삼키고 나면 다시 다음날 일을 할 수 있는 힘이 차올랐다고 그는 말한다. 떡볶이에 얽힌 소박하고 단출한 기억에서부터 화려하고 근사한 기억까지 보고 있노라면 과거 내가 사랑했던 떡볶이에 얽힌 기억과 추억들도 새록새록 떠오른다.
떡볶이 사랑이 얼마나 디테일한지 책을 다 보고 나면 구미가 안 당길 수 없다. 이미 지난주 주말 떡볶이를 먹었는데…, 참을까 말까. 이 책을 읽는 독자라면 아마 기자처럼 휴대전화 속 배달 애플리케이션을 한참 쳐다보고 있을 테다. 189쪽, 1만2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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