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금토드라마 ‘악귀’, 한국형 오컬트의 연 또 하나의 문
김은희 작가가 쓰는 오컬트는 어떨까. SBS 금토드라마 '악귀'는 그 궁금증을 기대감을 바꿔 놓은 드라마다. 김은희 작가 특유의 범죄스릴러적 미스테리에 귀신이 등장하는 오컬트 장르가 더해졌다. 김은희 작가가 연 이 새로운 문은 한국형 오컬트의 새 장을 만들어낼까.
◆"문을 열었네?" 밈이 나올 법한 '악귀'
누군가 문을 두드리며 간절히 열어 달라 외치고, 마지못해 문을 열자 저 편에서 악귀가 스산한 목소리로 말한다. "문을 열었네?" 그리고 그 악귀는 문을 연 자의 손을 강제로 움직여 스스로 목매달아 죽게 만든다. SBS 금토드라마 '악귀'가 그리고 있는 세계다. 악귀는 문으로 들어오는데, 그 문은 악귀가 여는 게 아니다. 그 안에 있는 사람이 문을 열어주고 그래서 저 밖의 세상과 안이 연결되면 사건이 벌어진다. '악귀'는 현실과 초현실이 결합하는 세계관을 갖고 있기 때문에 '문'은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 그건 실제 문이기도 하면서, 사람의 마음이나 감정 속으로 들어오는 문이기도 하다. 귀신에 빙의된다는 건 바로 그 문이 열린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초현실적인 존재인 귀신을 현실감 있게 그려내기 위해서는 그 판타지 세계로의 초대와 수락이 전제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나홍진 감독의 영화 '곡성'에서 그 세계로 들어가는 문은 "미끼를 물었다"는 한 마디로 집약된다. "그 놈은 그냥 미끼를 던져분 것이고, 자네 딸내미는 고것을 확 물어분 것이여"라는 대사가 그것이다. 이 대사를 통해 관객들은 드디어 이 세계관의 미끼를 물고 끌려 다닐 수밖에 없게 됐던 것처럼, '악귀'는 "문을 열었네?"라는 악귀의 대사 한 마디를 통해 저 세계 속으로 시청자들을 끌어 들인다. '미끼를 물었다'라는 말이 '곡성'이 방영될 때 밈처럼 떠돌았던 것처럼, '악귀'의 '문을 열었네'도 충분히 인구에 회자될 소지가 있는 대사다.
문 이외에도 '악귀'는 현실과 초현실이 연결되는 여러 고리들이 등장한다. 산영(김태리)에게 악귀가 깃들게 된 계기가 되는 아버지 강모(진선규)의 유품인 붉은 댕기는 그 연원이 1958년 장진리에서 벌어졌던 무당 최만월(오연아)이 어린 소녀를 살해한 사건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최만월은 아이를 죽여 원귀인 태자귀를 만들려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 때 죽은 아이의 손에 들려 있던 게 바로 붉은 댕기였다. 즉 이 댕기를 통해 악귀가 씐 사람들이 계속 죽어나가는 것. 귀신을 보는 능력을 가진 염해상(오정세)의 어머니 역시 그의 어린 시절 눈앞에서 목을 매 죽었는데 바로 그 붉은 댕기를 갖고 있었다.
산영의 몸에 깃든 악귀는 여러 징표들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 해상의 눈에 보이는 머리를 풀어헤친 그림자의 형상이 그렇고, 산영이 이삿짐센터 아르바이트에서 애착인형을 꺼내 달라 칭얼대는 아이 때문에 힘들어하다가 일이 끝난 후 한 벤치에 앉아 그 인형을 커터 칼로 연실 그어대는 광경이 그렇다. 본래 오른손잡이였던 산영이 왼손으로 커터 칼을 놀리는 그 장면은 악귀가 왼손잡이가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하게 만든다. 또 거울을 통해 귀신을 보거나, 그림자가 없는 자신을 보는 장면도 산영에게 악귀가 들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범죄 스릴러와 오컬트의 결합
'악귀'의 이러한 현실과 초현실을 연결하는 세계관은 이 작품이 갖고 있는 범죄와 오컬트가 연결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사실 범죄와 오컬트가 겹쳐지는 지점에는 '죽음'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두 장르는 섞여질 가능성이 충분하다. 즉 현실에서 누군가 살해되는 건 범죄라고 지칭되지만, 오컬트 관점에서 이를 재해석하면 '귀신이 씐' 행위로도 볼 수 있다. 흔히 너무 끔찍한 사건을 마주할 때 "이게 사람이 할 짓인가?"라고 이야기하는 그 지점을 오컬트로 풀어내면 귀신이 한 짓이라는 새로운 세계관이 열릴 수 있는 것이다.
2018년 방영된 OCN '손 the guest'가 바로 그 세계관을 열었다. 가끔 신문 사회면에 등장해 세간을 깜짝 놀라게 만드는 그런 사건들이 이 드라마 속에는 등장했다. 이를 테면 아이가 아파트에서 벽돌을 던져 지나가던 행인이 맞아 숨지는 사건 같은 것이 그것이다. 이를 아이가 한 짓이라 믿기 힘든 우리들은 "귀신이라도 씐 거 아니냐"고 말하기도 하는데, 그걸 이 작품은 박일도라는 어두운 마음을 가진 이들에게 빙의하는 귀신의 존재로 풀어냈다.
하지만 이런 범죄와 오컬트의 접목은 '손 the guest' 이전에 이미 '전설의 고향' 같은 레전드 드라마에서도 등장한 바 있다. 부임한 고을 원님들이 족족 죽어나가는 사건이 벌어지는데, 알고 보니 억울한 죽음을 당한 원귀가 이를 풀어 달라 나타났던 것이었다는 이른바 그 많은 '원귀 서사'가 그것이다. 초현실적인 존재인 귀신이 왜 하필 살인사건 같은 걸 공정히 수사하고 처리해야 할 의무를 가진 고을 원님에게 나타나겠는가. 현실이 풀어주지 못하는 원한이나 분노 같은 것들이 귀신 같은 어떤 구체적인 형상을 가진 초현실적인 존재를 부른다는 것.
실제로 '악귀'에도 이러한 원귀 서사가 등장한다. 부모의 끔찍한 학대를 당하는 동생 현지를 돕기 위해 자살해 원귀가 된 오빠 현우의 이야기가 그것이다. 결국 귀신이라는 존재의 탄생은 그 이면에 놓여 있는 '범죄'를 전제한다. 때론 귀신보다 더 한 인간의 끔찍한 범죄가 귀신을 탄생시키고, 그 귀신의 원한은 또 다른 이의 문을 연다. 그가 가진 어두운 부분을 건드림으로써.

◆'청춘 서사'까지 곁들여져
흥미로운 건 김은희 작가가 '악귀'라는 오컬트와 범죄 스릴러가 겹쳐진 장르를 통해 '청춘 서사' 또한 그릴 것이라 예고했다는 점이다. '악귀'의 기획의도를 보면 그래서 첫 번째 키워드가 '청춘'이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감. 나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진 자들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 남들보다 뒤처지면 어쩌나 싶은 조바심. 더 위로 올라가고자 하는 나약한 마음을 유혹하는 나쁜 어른들'이 청춘들을 힘겹게 만드는 현실이지만 김은희 작가는 '누구보다 더 열심히 살아가는 산영을 통해 여전히 청춘은 아름답다는 걸 보여주려 한다'고 기획의도에 밝혔다.
이것은 어떻게 가능해지는 걸까. 범죄 스릴러와 오컬트가 만나는 지점에는 앞서도 밝힌 것처럼 그 대상이 되는 인물이 가진 세상에 대한 감정(분노나 원한 같은)이 등장하게 된다. 즉 이러한 장르가 끄집어내는 건 실상은 부조리한 세상의 민낯이고, 거기에 희생되는 이들의 상처들이다. 그런데 그 대상이 바로 산영이라는 청춘이다. 공시생으로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살아가는 이 흙수저 청춘은 어쩐지 하나뿐인 엄마 윤경문(박지영)조차 부양해야 하는 처지로 보인다. 가난해 의지할 수 있는 건 딸 하나뿐이어서 그 딸이 위험에 처했다는 보이스피싱에 덜컥 돈을 송금하는 인물이다.
결국 악귀가 씐 산영은 그 보이스피싱범이 증거불충분으로 나오자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저주를 하게 되고 악귀는 그 욕망을 들어준다. 건물 위에서 돈을 흩뿌린 후 자살한 보이스피싱범의 소식을 듣고 산영은 충격에 빠진다. 악귀가 씐 자신이 가진 세상에 대한 불만이 어떤 저주의 형태로 누군가를 해할 수도 있다는 사실 앞에 과연 산영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굳이 산영 역할에 '스물다섯 스물하나'로 그 누구보다 청춘을 하나의 아이콘처럼 소화해냈던 김태리를 캐스팅한 건 그런 의미다. 부조리한 현실이 분노만으로 해결될 수 없다는 걸 이 건강한 청춘은 과연 다른 선택을 통해 보여줄 수 있을까. 오컬트와 범죄 스릴러가 청춘서사로까지 이어지는 그 과정을 '악귀'는 어떤 방식으로 펼쳐 보여줄까.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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