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외국인 가사도우미

입력 2023-07-04 20:23:39

김교영 논설위원
김교영 논설위원

어린 시절, 식모(食母)가 있는 친구 집에 놀러간 기억이 있다. 서울 말 쓰는 친구 엄마 대신, 배고픈 우리에게 라면을 끓여주던 청순가련한 누나. 식모는 남의 집에서 살림을 맡았던 10·20대 여성들이었다. 이촌향도 깃발이 날리던 1960년대부터 70년대까지 활약했다. 그들은 가난한 시골에서 '입 하나 줄이려고' 도시 가정으로 들어왔다. '숙식 제공' 말고는 따로 노동계약이 없었다. 임금은 집주인 마음에 달렸다. 살가운 집은 식모를 가족으로 여겼다. 눈물 바람으로 시집보내기도 했다. 불행한 식모살이 역시 흔했다. 인권 의식이 옅은 시대였기에.

산업화는 '식모 엑소더스'를 불렀다. 그들은 돈을 벌려고 공장과 시내버스로 흘러갔다. 가사노동 외주화의 첫 모델인 식모는 그렇게 자취를 감췄다. 식모의 시대가 가니, 파출부의 시대가 왔다. 기혼 여성의 취업이 늘면서 가사도우미가 필요했던 것. 주로 저소득층 중년 여성이 시간제로 집안일을 돌봤다. 급속한 경제성장은 인건비를 올렸다. 가사노동 외주화는 싼 임금을 좇아 외국인으로 확장됐다.

정부와 서울시가 외국인 가사도우미 시범 사업을 추진 중이다. 저렴한 가사서비스를 공급해 양육 부담을 덜어 저출산을 극복하겠다는 취지이다. 현재 국내 가사·돌봄 취업 자격은 내국인과 영주권자의 배우자, 중국 동포, 결혼이민비자로 입국한 장기 체류 외국인 등으로 묶여 있다. 정부는 이를 비전문취업비자(E-9)로 입국하는 동남아 출신 등의 외국인까지 확대할 방침이다.

이 정책은 실효성 논란이 따른다. 경제적 부담이 걸림돌이다. 외국인 가사도우미에게 최저임금 적용이 검토되면서 '월 70만 원 이내의 서비스'라는 선언이 무색해졌다. 외국인 노동자 유입은 저소득층 일자리 감소와 임금 상승 억제를 초래할 수 있다. 가사 노동의 가치 절하, 여성 노동의 소외 등 문제점도 제기된다.

'2030 청년층 생애전망 인식조사' 결과는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여성들은 출산을 위해 ▷파트너의 양육 참여 ▷공평한 가사 부담 ▷파트너의 출산휴가·육아휴직을 지목했다. 가사·돌봄 부담을 남녀 평등하게 나누는 환경이 우선이란 얘기다. 돌봄은 애정과 숙련도가 필요하다. 돌봄노동을 그저 싼값으로 외주화하려는 발상은 후진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