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라언덕] 아버지의 유산

입력 2023-07-06 18:13:14 수정 2023-07-06 19:25:35

채정민 문화체육부 차장
채정민 문화체육부 차장

삼성 라이온즈는 프로야구 명가다. 대구경북민의 자랑이기도 하다. 프로야구 초창기부터 빛나는 별들이 팬들과 함께 울고 웃었다. 그랬던 삼성 라이온즈가 흔들리고 있다. 수년째 이름값에 걸맞지 않은 성적을 내고 있긴 하지만 최하위로 떨어졌다는 건 충격적이다. 시즌이 절반가량 남았다 해도 쉽사리 위안이 되질 않는다.

'○○왕조'라 불리며 수년씩 프로야구 무대를 호령한 팀들이 있었다. 하지만 역대 가장 많이 이긴 팀은 삼성 라이온즈다. 지난 5월 사상 처음으로 팀 통산 2천800승 고지를 밟았다. 2위 두산 베어스는 아직 2천700승에 도달하지 못했다. 높은 데서 떨어진 만큼 충격도 더 크다.

모기업 삼성에도 야구단의 추락은 더 신경이 쓰일 법하다. 프로축구, 프로배구, 프로농구에서 '삼성 간판'을 단 구단들이 모두 꼴찌인 가운데 국내에서 가장 인기가 많다는 프로야구에서마저 최하위라니. 자칫 한국 스포츠 사상 처음으로 같은 해에 '4대 프로스포츠' 모두 꼴찌라는 불명예를 떠안을 수도 있다.

프로농구 삼성 썬더스와 프로배구 삼성화재는 지난 시즌 최하위였다. 프로축구 수원 삼성은 12개 구단 가운데 꼴찌를 기록 중이다. 삼성 라이온즈가 한 번도 최하위로 시즌을 마친 적이 없는 것처럼 수원 삼성도 아직 2부 리그로 강등당한 적이 없다. 하지만 이번 시즌엔 새 역사를 쓸 판이다.

사실 삼성 스포츠단의 성적이 좋지 않은 건 수년 전부터다. 묘하게도 운영 주체가 제일기획으로 바뀐 시기와 맞물린다. 2014년 축구를 시작으로 2016년 야구까지 제일기획의 우산 아래 들어갔다. 제일기획이 합리적인 운영을 강조하면서 스포츠 시장의 '큰손' 이미지도 사라졌고, 팀 내에서 슈퍼스타도 드물어졌다.

그러다 보니 투자에 인색한 게 이런 상황을 불러왔다는 비판이 나온다. 하지만 삼성 측은 투자나 운영비 규모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고 반박하곤 한다. 그 말은 (그대로 믿는다면) 곧 돈을 제대로 쓰지 못했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스카우트든, 육성 부문이든, 청사진을 제시할 기획 부문이든 프런트와 시스템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더 나아가 숙원 사업을 해결해야 한다. '경산 볼파크'라고도 불리는 전용훈련장 '삼성 라이온즈 볼파크'를 새로 만드는 작업이 그것이다. 경산 볼파크는 고(故) 이건희 회장의 선물이자 라이온즈 왕조의 기틀이 만들어진 곳. 하지만 1980년대 후반 조성된 것이라 낡고, 시설이 추가되면서 공간도 좁아졌다. 한때 청도 이전설도 흘러나왔으나 현실화되지 못했다.

다시 도약할 기반을 마련하려면 새 볼파크가 필요하다. 초대 구단주였던 아버지의 뜻을 잇겠다면 이재용 회장이 주머니를 열어야 한다. 이건희 회장은 자신의 에세이집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에서 "최후의 순간까지 최선을 다하는 정신 또한 스포츠에 중요한 덕목이다. 자신의 모든 능력을 발휘하여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선수들의 분투는 우리에게 깊은 감동을 준다"고 했다. 경산 볼파크는 이건희 회장이 남긴 유산이다.

한발 더 나아가 새 볼파크 후보지로는 달성군도 괜찮아 보인다. 최근 대구시는 달성군을 국립근대미술관 등 문화예술허브 조성 사업 후보지로 꼽았다. 하지만 미술관에 사람들의 발길이 모이게 하려면 도심에 있어 접근성이 뛰어나야 한다. 외진 곳에 있는 대구미술관이 반면교사 사례다. 대신 새 볼파크가 빈자리를 채우는 것도 생각해봄 직하다. 지역 정치권에서도 힘을 모아 볼 만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