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송영길의 선민의식

입력 2023-06-28 20:00:45

정경훈 논설위원
정경훈 논설위원

'소수의, 선택받은, 중앙집중적인 그리고 전문적인 직업 혁명가 집단이 이룩한 혁명.' 1917년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의 성격에 대한 대중적 통설(通說)이다. 이는 그 혁명가 집단인 볼셰비키의 지도자 레닌의 업적을 찬양하기 위해 통속적 좌파들이 만들어낸 신화다.

이런 혁명 방법론은 레닌의 신념이기도 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노동자 계급은 그들 스스로의 노력만으로는 고작 노조(勞組) 의식만 키울 수 있을 뿐이다." 노동자 계급 내부에서는 진정하고도 혁명적인 계급 의식은 절대로 자동적으로 발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혁명 전위 조직이 대중들을 지도하고 이끌어야 혁명은 성공한다는 것이 레닌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실제 혁명은 그렇게 성취되지 않았다. '역사란 무엇인가'의 저자로 볼셰비키 혁명에 대한 가장 선도적이고 가장 정확한 연구로 정평이 나 있는 E H. 카에 따르면 혁명의 주체 세력은 대중들이었다. "혁명적 정당들은 혁명 과정에서 직접적인 역할을 수행하지 않았다. 그들은 혁명을 기대하지도 않았으며, 처음에는 혁명에 대해 다소 당혹스러워하기도 했다. (중략) 혁명의 순간을 만들어낸 것은 중앙의 지도력이 부재한 가운데 일어난 노동자 집단의 자발적 봉기였다."

실패한 1905년 혁명이나 성공한 1917년 혁명 모두 그랬다. 볼셰비키 혹은 그와 비슷한 혁명 전위 부대에 의해 촉발된 것이 아니었다. 볼세비키가 한 일은 대중 봉기의 과실을 따먹은 것뿐이었다. 독일 출신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볼셰비키는 길거리에 방치된 권력을 발견하고 습득했을 뿐이다"라고 한 이유다.('국가처럼 보기', 제임스 C. 스콧)

2021년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돈 봉투 사건으로 검찰 수사를 받는 송영길 전 대표가 최근 윤석열 대통령을 "군사독재 5공 시절에 학생운동도 안 하고 앉아서 술 먹고 고시 공부한다고"라며 비난했다. '나는 민주화운동을 했는데 너는 뭐 했나'라는 역겨운 선민의식을 그대로 보여준다. 우리의 민주화는 운동권이 아니라 국민 모두가 참여해 이뤄낸 것이다. 민주화는 '운동권'과 떨어져 있던 수많은 사람들의 의지와 노력의 결실이지 '운동권' 전위들의 '투쟁'으로 성취된 것이 아니다. 송영길은 그런 이름 없는 모든 사람들을 모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