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국가가 방치한 우리 아이들

입력 2023-06-28 15:22:01 수정 2023-06-28 19:07:37

최창희 신문국 부국장
최창희 신문국 부국장

최근 경기 수원의 한 아파트 냉장고에서 영아 시신 2구가 발견된 데 이어 울산에서도 미숙아가 쓰레기 틈에 버려져 사회적으로 큰 충격과 불안을 야기하고 있다. 세상 밖으로 나오자마자 출생신고 없이 사회적으로 '삭제'된 영유아들이 숨지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해 3월에는 경남 창원에서 부모의 방치로 생후 2개월 된 아기가 영양결핍으로 숨지는 일이 발생했다. 2020년 12월 전남 여수에서도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2개월 영아가 냉장고에서 발견됐다. 갓 태어난 생명에 행해진 끔찍하고 참담한 일들을 전해 들으면서 이런 일이 반복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까닭을 묻지 않을 수 없다.

그간 국가가 방치한 영유아들의 존재가 차츰 드러나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8년간 출산 기록은 있으나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이른바 '유령 영아'는 2천236명에 달했다. 이 중 최소 3명이 숨지고 2명이 유기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에서 조사 중인 사건도 11건이다. 앞으로 숨지거나 유기된 채 발견될 영유아는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뒤늦게 정부가 '유령 영아'에 대한 전수조사에 나섰다. 국회도 출생통보제와 보호출산제 입법을 서두르고 있다. 여야는 28일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서 출생통보제 도입을 담은 법률 개정안을 심사·의결했다. 본회의에서 법안이 통과되면 의료기관이 출생 정보를 직접 지자체에 통보하게 된다.

또 위기 임신부가 병원에서 익명으로 출산하고 지방자치단체가 해당 영아를 보호해 줄 수 있도록 하는 '보호출산에 관한 특별법'도 심사에 들어갔다.

참으로 만시지탄(晩時之歎)이다. 의료기관이 행정기관에 직접 출생신고를 하는 출생통보제에 관한 전산 시스템은 23년 전인 2000년도에 연구자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실제 사용까지 됐었다. 국회도 10년 전에 도입하기로 약속했으나 정작 관련 법안은 모두 상임위원회 문턱도 넘지 못했다.

정부와 국회가 출생신고제와 출생통보제를 방치하는 사이 수많은 아이가 죽거나 실종된 셈이다. 무책임한 부모의 탓이 근본 원인이지만 입법·사법·행정부의 외면이 수많은 아이의 실종과 죽음을 방치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제 막 세상의 빛을 보기 시작한 아이들이 어둠과 배고픔, 공포 속에서 사라져 가는 동안 정부는 아이러니하게 저출산 대책을 쏟아내고 있었다.

'유령 영아'와 별개로 우리 아이들과 관련해 또 다른 안타까운 일도 벌어지고 있다. 정부가 초중고 학생 중 특별한 이유 없이 7일 이상 결석한 6천800명을 대상으로 학대 여부를 전수조사했더니, 59명에게서 이상 징후가 포착됐고 20건의 의심 사례가 발견됐다.

무적(無籍) 영유아 사망과 아동학대 문제는 법적·행정적 조치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렵다. 학교, 가정, 사회단체 등이 협력하여 아동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교육과 활동을 확대하고, 의심되는 아동학대 사례를 신속히 식별하고 신고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예전보다 많은 사람이 유기 및 학대에 대해 높은 사회적 인식을 갖고 있지만 이에 대한 강조는 과유불급(過猶不及)에 반(反)한다. 한 명의 학대나 유기를 방지하는 것이 열 명의 출산을 장려하는 것보다 훨씬 가치 있고 쉬운 일이기도 하다.

모두가 내 아이라는 생각이 필요한 때다. 영아 살해 혐의로 재판을 받은 이들 대부분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미혼모이거나 싱글맘이었다는 점은 또 다른 관점에서 곱씹어 볼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