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
지난 6월 8일 참으로 오랜만에 울릉도 뱃길에 올랐다. 1948년 6월 8일 미 공군 폭격기가 독도에서 조업 중인 우리 어민 14명의 목숨을 앗아간 6·8 독도 위령제에 참가하기 위함이다. 코로나 통제가 완전히 해제된 탓인지 울릉도를 찾는 여행객은 상당히 많았다. 그날 우리 일행과 울릉 크루즈에 동승한 승객은 900여 명이나 되었다. 과거 뱃멀미가 심했던 소형 선박과는 달리 우리의 대형 울릉 크루즈는 조용히 바닷길을 밤새워 달렸다. 과거 배가 요동칠 때마다 집단적으로 뱃멀미를 하던 시절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이 배는 달포 전 일본 여행길에 타 보았던 부산-오사카 팬 스타 크루즈에도 뒤지지 않았다. 자정에 포항 영일만신항을 출발한 배는 오전 6시 30분쯤 저동항 촛대바위 앞에 우리 일행을 안착시켰다.
독도에서 당일 오전 11시 예정이던 6·8 위령제는 갑작스러운 풍랑으로 저동항 방파제에서 개최되었다. 조업 중 억울하게 희생된 어민 위령제는 5년 전부터 푸른독도가꾸기회에서 주최하고 있다. 올해도 대구지방변호사회, 비룡라이온스 등 시민 단체에서 80여 명이 참석하였다. 6·8 위령제를 아직 알지 못하는 독자들을 위해 이 사건의 개요를 잠시 소개한다.
미 군정하 1948년 6월 8일 독도에서는 멀리 경북과 강원도에서 온 어부 59명이 18척의 배를 이용하여 평화롭게 조업을 하고 있었다. 정오쯤 미 공군 B29 폭격기는 독도 상공에서 무차별 훈련 사격을 해 어민 14명의 목숨을 앗아가 버렸다.(홍성근, 2020, 독도 폭격 사건) 당시 혼비백산한 어부들은 태극기를 흔들며 애원했지만 포격은 멈추지 않았다. 정부가 수립되었지만 6·25전쟁이 일어나자 이 사건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렸다.
그 후 일본 당국은 미일 행정협정(SCAPIN 1778호)을 내세워 한국 어민 피격 사건을 자기들의 독도 영유권 주장의 근거로 삼았다. 매우 통탄할 일이다. 다행히 우리 외무부는 미 당국에 항의해 사과까지 받고 배상금까지 수령하였다. 해방 후 독도가 일본의 영토였다면 우리 정부는 미국 측에 항의조차 하지 않았을 사안이다. 일본이 미일 행정협정을 근거로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것은 파렴치한 행위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일본은 수시로 독도를 국제 분쟁 지역화해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독도는 역사적 고증뿐만 아니라 국제해양법상으로도 우리의 영토임이 분명하다. 우리는 결코 일본의 교활한 외교 책략에 휘말려서는 안 된다. 우리는 독도 위령제 등을 통해 독도가 우리 삶의 터전이었음을 재확인할 필요가 있다.
6·8 사건은 우선 피격 사건의 진상부터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 이번 '독도 6·8 사건과 광복 후 독도의 이용 관리'라는 학술세미나가 행사에 병행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앞으로 이 사건에 관한 조사와 학술 토론회는 지속되어야 한다. 미국은 당시 독도를 왜 포격 훈련의 대상으로 삼았는가. 미 공군이 독도의 섬과 어선을 구분하지 못해 포격했다는 주장은 수용하기 어렵다. 1950년 6월 8일 제막된 위령비는 왜 '조난어민위령비'로만 명명되어 있는가. 조난과 피격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사건 발생 74년이 지난 현시점에서도 정부는 미국의 공식적 사과도 받지 못하고 있다. 당시 독도에서 희생된 어부 김해도 씨의 장남 김상복 씨는 억울함을 화해를 위한 '과거사 위원회'에 진정했지만 소관 업무 밖이라는 싸늘한 답변만 들었다.
행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배 안에서 만감이 교차하였다. 정부와 지자체는 왜 이 행사에 이토록 소극적일까. 행사장에는 공무원 한 명 보이지 않았다. 한미일 3각 동맹이 강화되는 시점에서 사건의 기억과 조사가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미국은 우리의 맹방이며 안보의 소중한 파트너임을 부정할 수 없다. 그렇다고 우리가 미국의 부당한 행위까지 옹호할 필요는 없다. 한미 간의 튼튼한 안보 결속을 위해서라도 잘못된 과거사는 바로잡아야 한다. 그렇다고 한반도 식민화의 야합품인 미일 태프트-가쓰라 밀약까지 재론하자는 것은 아니다. 해방 후 미군의 노근리 양민 학살, 여중생 장갑차 압사 사건처럼 6·8 독도 사건의 진실이 규명돼야 한다는 뜻이다. 그것이 국가의 기본 책무이며 당당한 대미 외교의 토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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