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 ‘킬러 문항’ 죽여서 사교육 줄이기

입력 2023-06-26 20:02:06

김교영 논설위원
김교영 논설위원

정부가 사교육 문제 해결에 나섰다. 키워드는 '공정'과 '카르텔 해소'이다. '킬러 무기'는 '킬러 문항' 죽이기. 윤석열 대통령이 불을 댕겼다. 윤 대통령은 '킬러 문항'(초고난도 문항)을 지적하며 수능을 이렇게 어렵게 내면 무조건 사교육에 의존하라는 건데, 교육 당국과 사교육산업이 카르텔이냐고 질타했다. 정밀 조준, 서슬 퍼런 말이다. 6월 모의평가 난이도 조절 문제로 교육부 담당 국장이 경질됐다. 교육과정평가원장은 물러났다.

교육 현장은 혼란스럽다. 수능시험을 코앞에 둔 수험생과 학부모들은 불안하다. 대통령실은 "쉬운 수능, 어려운 수능 얘기가 아니다"며 "모든 시험의 본질은 공정한 변별력은 갖추되 공교육에서 다루지 않는 분야는 수능에서 배제하라는 의미"라고 밝혔다. 이어 "킬러 문항 배제는 3개월 전부터 예고했다. 불안을 조장하지 말라"며 사교육 카르텔을 직격했다.

대통령실은 '카르텔 해소와 공정성 강화가 윤 대통령의 소신'이란 입장을 밝혔다. 대통령의 문제의식은 옳다. 사교육 과열은 한국 사회의 고질이다. 지난해 초·중·고생의 사교육비 총액은 역대 최대인 26조 원. 고교 1·2학년 월평균 사교육비는 70만 원을 웃돈다. 사교육은 '돈의 힘'에 좌우된다. 부모 경제력이 자녀 학벌(학력)을 결정한다. 흙수저 부모가 금수저 자녀를 만들 수 없다. 이는 불공정·양극화 심화로 이어진다.

사교육 이슈는 휘발성 높다. 사교육 대책은 '단골 선거공약'이다. 사교육에 손을 대지 않는 정부가 없었다. 그 시작은 창대했으나, 끝은 미미했다. 대표 사례가 EBS 수능 연계율 강화, 영어 영역 절대평가 도입이다. 2011학년도 수능부터 EBS 교재와 직접 연계율을 70%로 높였다. 사교육 감소 효과는 없었다. 고교생 월평균 사교육비는 2010년 21만8천 원으로 전년보다 0.5% 늘었다. 2012년 22만4천 원으로 증가했다. 2014년 말, 정부는 수능 영어 영역을 2018학년도부터 절대평가로 바꾼다고 발표했다. 이 또한 실패했다.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2015년 24만4천 원(전년 대비 0.8%), 2016년 25만6천 원(4.9%), 2017년 27만2천 원(6.2%)으로 늘었다. 이후 증가세는 더 커졌다.

'정책의 역설'이란 말이 있다. 정책이 취지대로 작동 않고, 역작용이 발생하는 것이다. 사교육 정책이 딱 그짝이다. 수시 비중을 높이니, 컨설팅·논술·면접 사교육이 확대됐다. 이 쪽을 누르면, 저 쪽이 튀어나온다. 신현석 고려대 교수 등이 쓴 '한국 교육정책의 패러독스'는 '수능-EBS 연계 정책'의 문제점을 짚었다. EBS 교재가 학교 시험에도 반영되면서 'EBS 입시 경쟁'이 조성됐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사교육 문제는 군비 경쟁과 비슷하다. 남과 비교하고 경쟁하면서 무한 팽창한다. 자녀가 공부를 잘하고, 부모가 고소득이면 사교육 지출이 더 많다. 국민들은 내적 갈등을 한다. 사교육 과열이 사회 병폐라고 생각한다. 다만, '내 자식은 예외'로 둔다. 자녀가 일류 대학, 좋은 직장에 들어가야 해서다. 그게 성공한 자녀 교육이라고 맹신한다. 우리 사회가 '학벌 감옥'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에서 사교육 정책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교육 정책이 '킬러 난제'인 이유이다. 교육 개혁은 성공해야 한다. 그러려면 사회적 합의를 거친 정책이 필요하다. 정권 변화에 흔들리지 않는 정책이어야 한다. 그 방향은 대학 서열화 해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