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부자가 된 한국

입력 2023-06-19 20:47:22

석민 디지털논설실장
석민 디지털논설실장

일반적으로 서민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일'을 해야 한다. 반면에 부자는 부동산·주식·채권·예금과 같은 자본으로부터 임대료·배당금·이자 등의 불로소득을 엄청 획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부자도 일을 할 수 있지만 생계를 위해서라기보다 '자아실현'이라는 보다 고차원적인 것이 이유가 된다. 국가도 개인과 비슷하다. 개발도상국은 상품을 만들어 수출하거나 관광객을 유치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무언가를 팔아야만 경제가 유지되고 활성화된다. 한때 '수출만이 살길이다'라는 구호가 우리나라 방방곡곡에 나붙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무역수지 적자는 경제의 비상 신호였다.

반면에 대표적 부자 나라 중 하나인 일본은 다르다. 지난해 일본은 에너지 가격 급등, 엔화 약세, 수출 감소 등의 영향으로 사상 최대인 1천600억 달러(약 204조 원) 무역수지 적자를 냈다. 그러나 경상수지는 686억 달러(약 88조 원) 흑자였다. 해외로부터 이자, 배당, 임금 등의 명목으로 벌어들인 돈인 본원소득수지가 2천639억 달러에 달한 덕분이다. 전형적인 부자의 패턴이다.

우리나라도 지난해 반도체 등 주력 품목의 수출 부진으로 상품 무역에서 20년 만에 가장 적은 흑자를 기록했다. 고질적인 서비스 부문 적자도 그대로였다. 하지만 사상 최대인 238억 달러를 해외 투자로 벌어들인 덕분에 전체 경상수지는 약 300억 달러 흑자를 보였다. 올해 1~4월 무역수지는 약 93억 달러 적자, 여행 등 서비스수지 역시 84억 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예전 같았으면 경제 비상 사태가 선언됐을 법하지만, 배당과 이자로 벌어들인 투자 소득이 137억 달러 흑자를 기록하는 바람에 전체 경상수지는 54억 달러 적자 수준에 머물렀다. 어느덧 한국 경제도 부자 나라의 패턴을 닮아 간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순(純) 대외 금융자산은 지난해 말 기준 7천466억 달러(약 1천조 원) 규모로 세계 9위이다. 놀랍게도 빈 살만 왕세자의 엄청난 '오일 머니'를 자랑하는 사우디(10위)보다 한 단계 앞선다. 해외 투자 급증은 잘사는 선진국의 숙명이긴 하지만, 자칫 국내 제조업 공동화와 일자리 상실로 이어져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을 답습할 수 있다. 부자 나라가 되기도 쉽지 않지만 '행복한 부자 나라' 자리를 지키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