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칼럼]혹시 현충(顯忠)의 노래를 아십니까?

입력 2023-06-04 16:36:16 수정 2023-06-04 20:02:23

서울 효창공원 삼의사(三義士) 묘역에는 독립운동가 세 분이 안장돼 있다. 정면에서 봤을 때 왼쪽부터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선생의 묘이다. 모두 일본에서 순국한 이들의 유해는 1946년 김구 선생의 주도로 봉환됐다.

특히 윤 의사와 백 의사의 엇갈린 운명이 눈길을 끈다. 두 사람은 1932년 서로의 존재를 모른 채 중국 상하이 훙커우공원에서 나란히 기회를 노렸으나 윤 의사만 뜻을 이뤘다. 행사장에 먼저 도착했던 백 의사가 거사에 성공했다면 우리 교과서는 달라졌을 것이다.

올해 개봉한 영화 '유령'의 모티브이기도 했던 백 의사는 그 이듬해 '상하이 육삼정(六三亭) 의거'로 종신형을 선고받고 1934년 옥사했다. 일본 정부 요인(要人) 암살 거사 직전에 밀고로 체포됐다. 함께 도모했던 원심창, 이강훈 선생도 해방까지 옥고를 치렀다.

5일이 백 의사 순국 89주기이기도 하지만 그의 일생을 되짚어 본 것은 국가보훈처가 국가보훈부로 격상돼 공식 출범하기 때문이다. 62년 만에 국무위원이 장관인 부(部)가 된 만큼 높아진 위상 못지않게 더욱 효율적이고도 섬세한 보훈 행정을 펴야 한다.

박민식 보훈부 장관은 취임에 앞서 지난 2일 "보훈이란 국민 통합과 국가 정체성을 확립하는 마중물이자 지속 가능한 미래를 이끌어 가는 국가의 핵심 기능"이라고 밝혔다. 맞는 말이다. 보훈은 정치 성향, 세대, 젠더를 떠나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 가치다.

순국선열과 호국영령, 전몰군경을 기리고 유족들을 제대로 예우하자는 데 반대할 국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평가가 공정했느냐를 두고선 의견이 맞선다. 국가를 위해 희생한 이들이 제대로 보상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건국훈장을 둘러싼 논란이 대표적이다. 등급이 대한민국장, 대통령장, 독립장 등으로 나뉘는데 합당한 서훈이었느냐가 논쟁거리다. 유관순 열사의 경우 애초 독립장이 추서됐으나 훈격이 너무 낮다는 지적 끝에 2019년 대한민국장이 추가됐다.

삼의사에게 추서된 훈격도 각각 다르다. 윤 의사는 대한민국장, 이 의사는 대통령장, 백 의사는 독립장이다. 독립운동 성과를 저울로 재듯 정확하게 평가할 순 없는 일이겠지만 좀 더 넓은 공감대가 형성되도록 보훈부가 노력해야 한다.

사실 이 문제는 정권의 의지에 달렸다고 생각한다. 우파 정부와 좌파 정부가 정치적 필요에 따라 그때그때 유공자들을 달리 평가한 탓에 보훈 정책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구설에 휘말렸기 때문이다. 심지어 부처 책임자도 장관급과 차관급을 오락가락했다.

무엇보다 총선을 앞두고 여야가 보훈을 표(票)로 계산하지 않았으면 한다. 선심성 정책 남발 또는 지지층 결집을 노린 여론 몰이는 나라를 위해 희생한 분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국민들의 자발적인 애국심을 이끌어 낼 국가 차원의 어젠다 설정이 우선이다.

'겨레와 나라 위해 목숨을 바치니 그 정성 영원히 조국을 지키네. 조국의 산하여 용사를 잠재우소서. 충혼은 영원히 겨레 가슴에. 임들은 불멸하는 민족혼의 상징 날이 갈수록 아 그 충성 새로워라.'

경북 영양 출신인 조지훈 시인이 작사한 '현충(顯忠)의 노래'이다. 하지만 엔데믹 여파인지 올해 현충일은 징검다리 연휴로서만 의미를 갖는 분위기인 듯해 안타깝다. 약삭빠른 정치인들이 현충일에도 대체공휴일을 적용해 연휴를 보장하자는 법안을 조만간 내놓을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