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경 경북대 고고인류학과 교수
서울 출장을 다녀오다가 대구로 돌아오는 KTX에서 대구시를 '메디시티'로 홍보하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대구 지역은 350년 전통의 약령시를 비롯하여 5개의 의과대학과 3만 5천여 명의 의료인이 활동하고 있고, 이러한 인프라를 기반으로 대구시에서는 의료관광을 핵심 미래 산업 분야로 채택하고 있다. 그 결과 2009년 당시 2천816명 수준이었던 해외 의료관광객의 수가 코로나19 발생 직전인 2019년에는 전국 지자체 최초로 3만 명이 넘는 비약적인 발전을 거뒀다.
그러나 지난 3월 대구시에서는 '메디시티의 진정한 가치가 과연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만드는 사건이 발생했다. 4층 높이 건물에서 17세 여학생이 추락했고, 처음 발견됐을 당시 의식이 있었던 환자는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 채 2시간 뒤 사망했다. 환자에 대한 기본 처치 이후 구급차는 인근 네 개의 상급병원에 연락을 취했지만, 협진이 가능한 진료과의 부재, 환자 포화 및 병상 부족 등의 이유로 환자 이송을 거절당했다. 이에 응급 대원은 세 개의 중소 규모 병원에 연락을 취했고 한 병원으로 이송하여 환자를 인계하는 과정에서 심정지가 발생했다.
메디시티를 표방하는 대도시 한복판에서 환자가 제대로 된 치료조차 받지 못하고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보건복지부와 대구시는 공동 조사에 착수했다. 그 결과, 복지부는 중증도 분류 의무 위반, 정당한 사유 없는 수용 거부로 4개 응급의료기관에 행정처분을 내렸고, 보조금 지급 중단, 과징금 부과 등이 이뤄졌다. 지역 내부에서는 다시는 이러한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대구시 6개 종합병원 간 '119 구급대 이송 환자 수용 원칙 계획'을 수립했다. 이제 대구에 있는 6개 종합병원 응급의료기관이 전부 119 구급대가 이송하는 환자를 수용하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할 경우, 119 구급상황관리센터가 접근성, 수용 능력 등을 고려해 가장 적합한 이송 응급의료기관을 정하면 해당 병원은 환자를 무조건 수용해야 한다.
언뜻 보면 문제가 일단락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애초에 4개 병원에서 왜 환자 수용을 거부했는지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대구 지역의 응급실 내원 환자 사망률은 전국 최상위이다. 또한, 국립중앙의료원 자료에 따르면 대구 지역의 응급실 과밀화 지수는 2.17로 광주(1.67), 부산(1.67), 서울(1.38)을 상회한다. 응급실이 과밀한 이유는 상급종합병원(3차 병원)의 수는 많지만 종합병원(2차 병원)의 수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비응급환자, 중환자 모두 상급종합병원으로 몰리는 과밀화 문제로 인해 의료서비스의 질은 낮아지고 진료 역시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제2 대구의료원 건립과 같은 방안이 시민사회에서 끊임없이 제기되는 이유 역시 2차 병원을 확충함으로써 상급종합병원 과밀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이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는 도외시한 채, 책임기관을 처벌하고 보조금을 삭감하는 방식만이 되풀이된다면 응급의료 체계의 기반은 더욱 약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영국의 국가의료제도(NHS)를 연구한 인류학자 소피 데이에 따르면, 의료 현장에서 기다림은 의료진의 처분만 무력하게 기다리는 수동적 환자가 되어가는 과정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기다림은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다 보면 결국에는 모두가 최선의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경험을 쌓아 올리는 과정이기도 하다. 의료기술이 절실하게 필요한 순간에는 누구나 차별 없이 필요한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건강권의 토대가 확립되어야만 기다림은 사회적 약속이자 믿음으로 자리 잡을 수 있게 될 것이다. 기다림이라는 사회적 약속과 건강권이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메디시티라는 명명은 공허한 브랜드가 될 수밖에 없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메디시티가 되기 위해서는 필수 의료 분야를 실질적으로 확충하기 위한 현실적인 방안이 실천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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