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칼럼] 정치는 실천하는 도덕이다

입력 2023-05-21 18:29:37

김해용 논설주간
김해용 논설주간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1995년 4월 중국 베이징에서 "우리나라의 정치는 4류, 관료와 행정조직은 3류, 기업은 2류" 발언을 했다. 세월이 28년 흘렀다. '정치=4류'라는 그의 진단은 지금도 유효한가? 유감스럽게도 대한민국 정치인들은 그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경제, 문화 등 대한민국 각 분야의 수준과 위상은 크게 높아졌지만 정치는 과거 수준에 '박제'돼 있다. 그것을 관통하는 시대적 유행어가 바로 '내로남불'이다.

김남국 코인 스캔들이 대한민국 정치인들의 도덕성 논란을 다시금 소환하고 있다. 김 의원이 평소 가난한 정치인 코스프레를 했으며 국회 상임위원회 기간 중 코인 거래를 수시로 했다는 점, 거짓 해명을 했다는 점에서 국민들 분노가 예사롭지 않다. 조국 사태 때보다 폭발력이 작아 보이지 않는다.

악재 발생 이후 더불어민주당의 대응과 인식은 처참한 수준이다. 김 의원의 꼬리 자르기식 탈당 이후 열린 민주당 쇄신 의원총회에서 "진보라고 꼭 도덕성을 내세울 필요가 있나. 우리 당은 너무 도덕주의가 강하다"라는 투의 발언까지 나왔다고 한다. 이재명 당 대표의 처신도 예상을 빗나가지 않는다. 돈 봉투 사건과 코인 스캔들에 당 대표가 미온적이라는 비판이 당내에서조차 나온다. 하기야 그 자신이 사법 리스크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마당에 물의를 일으킨 다른 의원에 대해 단호한 조치를 취하기에는 영(令)이 서지 않을 것이다.

김남국 코인 스캔들에 대한 민주당의 미지근한 대응은 그들이 '진영 내 온정주의'에 깊이 빠져 있음을 보여준다. 정적의 잘못에 대해서는 그렇게 매섭고 표독하게 몰아붙이더니 정작 자신들의 부도덕과 일탈에는 관대하기 그지없다. 전형적인 내로남불이다. 조국 사태 때 그렇게 혹독한 민심 이반을 경험하고도 아직 정신을 못 차린다.

'욕하면서 배운다'라는 옛말이 있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나오는 '우이효지'(尤而效之)다. 남의 그릇됨을 나무라면서도 자기 또한 비행(非行)을 저지른다는 뜻인데, 요즘 좌파의 언행이 그 격이다. 부패 권력과 싸워 민주화를 이뤄냈다는 자부심 속에 좌파 진영은 권력에 입성했다. 그들이 내세운 기치와 정치적 자산은 '도덕성'이다. 하지만 그것이 위선이자 양두구육(羊頭狗肉)임을 국민들이 알게 됐다. 원래 도덕적이었는데 권력 맛을 본 뒤 변했는지, 원래부터 그랬는지는 그 속을 들여다볼 수 없으니 알 길은 없다.

일부 좌파 인사들은 "그래도 우리는 보수 우파보다 도덕적이다"라고 항변한다. 비겁한 변명이고 국민이 원하는 답도 아니다. 정치의 목적은 '공정과 정의의 실현'이다. 이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자신에 대한 엄격함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래서 모든 정치인은 도덕적이어야 한다. 도덕성이 결여된 정치인들이 권력을 잡으면 국민이 불행해진다. 정치인의 위선에 국민들이 혐오 반응을 일으키는 것은 이를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은 국민적 질타가 '도덕 불감증' 좌파에 쏟아지는 것을 보면서 표정 관리하고 있을 일이 아니다. 정치인의 도덕성에 대한 국민 잣대는 좌우, 진보·보수를 가리지 않으며 앞으로 더 엄격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체코의 초대 대통령 바츨라프 하벨(1936~2011)은 "정치는 실천 도덕"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모든 정치 행위는 실천하는 도덕이라는 함의다. 도덕에 관해서 정치인은 자기 관용 유혹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유권자 역시 이것만큼은 양보해서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