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5월 대구에도 저항의 함성 울려퍼졌다…“‘대구 폭도’ 꼬리표에 지옥 시작”

입력 2023-05-17 10:25:46 수정 2023-05-17 22:08:52

1980년 5월 14일, 경북대·계명대·영남대 3개 대학 주축 시위
저항에 뒤따라온 국가 폭력…일반 시민 62명 포함 244명 체포·연행

1980년 광주 5·18 민주화운동 당시 대구서도 연일
1980년 광주 5·18 민주화운동 당시 대구서도 연일 '계엄 철폐' 시위가 이어졌다. 당시 경찰이 남구 대구교대 정문 주변에서 시위에 나섰던 학생들을 연행하고 있다. 매일신문 DB
김균식 5.18 민주화운동부상자회 경상강원지부장. 매일신문DB
김균식 5.18 민주화운동부상자회 경상강원지부장. 매일신문DB

5·18 민주화운동 43주기가 돌아온 가운데, 대구경북에서도 1980년 5월 신군부와 맞서 싸운 역사가 재조명되고 있다. 당시 민주화를 요구한 대학생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 60여 명이 국가의 폭력에 희생됐다는 정황도 추가로 드러나면서, 피해자의 명예회복과 보상에 대한 요구도 나온다.

"진압대는 토끼몰이를 하듯 우릴 포위했습니다. 이윽고 최루탄이 여기저기서 터지고 곤봉이 무차별적으로 날아오더군요. 머리에 피를 철철 흘리며 비명을 지르던 한 친구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1980년 5월 14일, 대구시내 곳곳에서 '계엄 철폐', '신군부 퇴진', '언론 자유' 등 구호를 부르짖는 젊은 목소리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이날 경북대, 계명대, 영남대 학생을 주축으로 한 1만3천여 명의 시위대는 각 학교에서 시작해 시내 대구백화점을 목표로 한 가두시위를 벌였다. 3개 대학 학생들은 이곳에 집결해 대구 시민들과 함께 대국민 정치 민주화 투쟁을 전개할 계획이었다.

저항에는 폭력이 뒤따랐다. 경찰과 군인으로 추정되는 진압대는 물리력을 동원해 시위 행렬을 무너트렸다. 대부분은 목적지에 가닿지 못했다. 오후 3시쯤 대구백화점까지 진출해 농성을 벌이던 계명대 학생들이 집중포화를 맞았다. 일부는 현장에서 붙잡혀 군부대 등에 끌려갔다. 5·18 민주화운동이 일어나기 4일 전, 대구의 풍경이었다.

김균식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경상강원지부장은 당시의 치열했던 투쟁을 선명히 기억한다. 붙잡힌 이들에게 자행됐던 무자비한 폭력까지도 말이다.

"시위 현장에서 체포돼 50사단 연병장으로 끌려갔어요. 그때부터 두달 여간 무차별적인 구타와 고문으로 점철된 지옥이 이어졌습니다. 우리에겐 '대구 폭도'라는 꼬리표가 붙었었고, 인권도 인간성도 없었어요. 그 지옥을 견디고 난 뒤엔 나를 포함한 일부 시위 주동자들은 소요죄와 계엄법 위반으로 2년 이상의 옥살이를 해야 했어요. 정부의 '녹화사업'에 강제로 징집된 친구들도 있었고요."

40여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에서야, 그날의 진실이 조금씩 밝혀지고 있다. 김 지부장은 지난해 5.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 전문위원으로 활동하면서, 1980년 5월 대구 투쟁에 다수의 민간인이 공권력에 의해 피해를 입은 사실을 확인했다.

김 지부장이 입수한 국가기록원 자료에 따르면 신군부는 1980년 5월 비상계엄 확대 후 경북 계엄분소에서만 244명이 체포·연행됐는데, 이 중 민간인이 62명, 경북대 33명, 계명대 81명, 영남대 26명, 기타 학교 42명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현재까지 대구경북 5·18 유공자는 77명(31.55%)에 불과하다.

이에 김 지부장은 지난해 말 5·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에 당시 피해를 입은 민간인 등에 대한 객관적인 사실 및 피해 사례 조사를 요청했다.

김 지부장은 "대구경북의 분위기상 국가폭력에 따른 피해사실이 있어도, 불이익을 받을까 두려워 밝히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제는 이런 분들도 명예를 회복하고 합당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오는 7월부터 5·18유공자 8차 보상 신청이 시작된다. 만약 당시 피해자가 이 기사를 본다면 부디 우리 지부에 연락을 주거나 방문해주시길 바란다"고 밝혔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43주년을 앞두고 10일 대구대 경산캠퍼스에 전두환 신군부에 의해 자행된 광주 참상을 기록한 사진 50여 장이 전시돼 있다. 대구5.18민중항쟁기념행사위원회가 마련한 이 사진전에는 1980년 5월 당시 영남대, 계명대, 대구대 등 지역 대학가 시위를 취재한 매일신문 제공 사진 20여 장도 함께 전시 중이다. 우태욱 기자 woo@imaeil.com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43주년을 앞두고 10일 대구대 경산캠퍼스에 전두환 신군부에 의해 자행된 광주 참상을 기록한 사진 50여 장이 전시돼 있다. 대구5.18민중항쟁기념행사위원회가 마련한 이 사진전에는 1980년 5월 당시 영남대, 계명대, 대구대 등 지역 대학가 시위를 취재한 매일신문 제공 사진 20여 장도 함께 전시 중이다. 우태욱 기자 woo@i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