前 부인 폭행해 하반신 마비…17일간 이어진 '공포의 여행'

입력 2023-05-15 17:39:57 수정 2023-05-15 22:11:51

[사건속으로] 휴대전화 뺏고, 돈까지 뜯어낸 30대男 징역 5년
피해자 조기 치료 못 받아 현재까지 고통, 법정서도 터무니 없는 변명만

클립아트코리아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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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남편이었던 남자가 날 차에 태워 정처 없이 움직인다. 벌써 보름이 넘었다. 그에게 심하게 두들겨 맞고 3일만에 깨어난 후부터 발과 손에 힘이 안 들어간다. 이제는 하반신을 움직일 수 없다. 집에 보내달라고할 때마다 폭행을 당했다. 다른 사람에게라도 도움을 구하고 싶지만 용기가 나질 않는다…

전 부인을 마구 때려 하반신을 마비시킨 채 17일 간 차와 모텔에 감금, 전국을 떠돌아다닌 30대가 징역 5년을 선고 받았다.

대구지법 제11형사부(이종길 부장판사)는 강도, 상해, 감금 등 혐의로 기소된 A(39) 씨에게 징역 5년을 선고하고 40시간의 스토킹 치료프로그램 이수를 명령했다고 15일 밝혔다.

A씨는 2021년 6월 B(37) 씨와 결혼해 가정을 꾸렸으나 지난해 3월 협의 이혼했다. A씨는 B씨에게 이혼에 이르기까지 정신적, 금전적 손해를 보상하라며 여러차례 돈을 요구해왔다. 지난해 1월에는 돈을 안 주고 말을 안 듣는단 이유로 주먹으로 얼굴을 때리는 등 폭행해 B씨의 아래턱에 골절상을 입히기도 했다.

결국 A씨의 폭행은 선을 크게 넘어섰다. A씨는 지난해 9월 16일 경기도 군포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B씨의 거의 온몸을 마구잡이로 발로 차고 때렸다. 자신과의 만남을 거절한다는 이유였다.

B씨가 정신을 차린 건 3일 뒤였다. B씨는 손발에 마비증상을 보이고 있었지만, A씨는 그런 B씨를 차에 강제로 태워 화성, 나주, 김천, 서울, 강릉, 정선, 충주, 천안 등 전국 각지를 정처 없이 떠돌아다녔다.

B씨는 하반신을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상태가 악화됐으나 A씨는 병원을 향하긴커녕 B씨의 휴대전화마저 빼앗아버렸다. 폭행과 감금으로 B씨를 길들인 A씨는 B씨로부터 3천만원을 갈취하기도 했다.

B씨는 납치 약 17일만인 지난해 10월 5일에야 대구 동구의 한 모텔에서 용기를 내 경찰에 신고했다. 출동한 경찰이 B씨를 업고 객실을 빠져나갔다.

A씨는 B씨가 자신의 마수를 벗어난 지난해 10월 6일부터 같은달 8일까지 150회에 걸쳐 피해자에게 전화를 걸고 문자메시지를 보내 공포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강도, 상해, 감금, 스토킹 등, 재물손괴, 주거침입 등 5가지 혐의로 기소된 A씨는 "B씨를 데리고 여행을 떠났던 것 뿐이고, 대구 달성공원을 비롯해 영화관, 쇼핑몰 등 사람이 많은 장소를 다녔음에도 B씨가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며 감금 혐의를 부인했다.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갈짓자로 불규칙한 동선이 일반적 여행이라 볼 수 없고, 하반신 마비상태에서 병원 진료조차 받지 않은 채 여행을 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는 것이다. 피해자가 도망가거나 도움을 요청하지 않은 것은 신체적 상해는 물론 이미 심리적인 위축상태, 혹은 자포자기 상태에 있었기 때문으로 해석했다.

법원은 "피해자의 상해 정도가 매우 중한데도 감금, 방치해 현재까지 하반신 마비와 공포, 불안감 등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게 했음에도 터무니 없는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다"며 A씨의 모든 공소사실을 유죄로 판단하고 징역 5년에 더해 40시간의 스토킹 치료프로그램 이수를 명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