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라언덕] 누구나 아이였고, 누구나 노인이 된다

입력 2023-05-11 10:46:22 수정 2023-05-11 18:45:44

이찬재씨의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그림. 이씨는 한 카페에서 출입을 거부당하고 돌아서 나온 사연을 전했다.
이찬재씨의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그림. 이씨는 한 카페에서 출입을 거부당하고 돌아서 나온 사연을 전했다.
김봄이 디지털뉴스국 차장
김봄이 디지털뉴스국 차장

"카페 직원이 '여기 들어오시면 안 돼요'라기에 아무 말도 않고 돌아서 나왔다."

틱톡 250만 명, 인스타그램 39만 명의 팔로워를 보유한 80대 부부 이찬재·안경자 씨. 최근 동창생 4명이 함께 카페를 들어가려다 '노시니어존'에 맞닥뜨려 뒤돌아섰다는 사연을 전했다. 그는 "우리 넷은 금방 알아들었다. 되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노-노인존이 있다. 서울에"라며 카페를 등지고 나오는 노인 4명의 쓸쓸해 보이는 모습을 그림으로도 남겼다.

해당 글이 올라오고 며칠 뒤인 지난 8일, 어버이날이기도 했던 이날 또다시 '노시니어존' 논란이 터졌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한 카페 출입문 사진이 올라왔는데 '노시니어존'(60세 이상 어르신 출입제한)이라는 문구가 써져 있었다. 글 작성자는 "참고로 이곳은 딱히 앉을 곳도 마땅찮은 한 칸짜리 커피숍. 한적한 주택가"라며 "무슨 사정일지는 몰라도 부모님이 지나가다 보실까 봐 무섭다"고 했다.해당 사연이 알려지자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논쟁이 벌어졌다. 대체로 '업주가 지나치다'는 비판의 목소리였다. "엄연한 차별이다" "본인들을 안 늙을 것 같냐" "어느 가게인지 화가 난다" "사회가 점점 이기적으로 돌아간다" "어른들께 내가 다 죄송하다" 등의 반응이 쏟아졌다.

반면 해당 나이대 손님들로 인한 '영업 방해' 때문에 자영업자들도 어쩔 수 없이 노시니어존을 선택한 것이란 옹호 발언도 나왔다. 실제로 '노시니어존'을 써 붙인 카페의 단골이라 밝힌 이는 "여사장님한테 동네 할아버지들이 '마담이 예뻐서 온다' 등 성희롱 발언을 했고, 사장님 혼자 감당하기 어려워 노시니어존이라 쓴 것"이라고 해명하기도 했다. 이에 "사장님의 선택이 충분히 이해된다" "진상은 걸려야 한다" 등의 반응도 나오고 있다.

나이로, 특히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이용을 금지하는 일은 이전에도 있었다. 2019년에도 '49세 이상 정중히 거절합니다'라고 써붙인 식당이, 지난해에는 '40대 이상 커플 손님은 받지 않는다'는 캠핑장도 있었다. 자영업자 커뮤니티에서도 '진상' 손님으로 인한 어려움을 토로하며 '노시니어존'을 고민하고 있다거나 추천하는 글들이 심심찮게 보인다.

한 카페에서 입구에
한 카페에서 입구에 '노시니어존'이라고 써놓은 모습

노시니어존 전에는 '노키즈존'이 있었다. 아이의 입장을 금지하는 노키즈존이 우후죽순 늘어나자 2017년 국가인권위원회는 차별행위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하고, 노키즈존의 철회를 권고했다. 모든 아동이 사업주나 다른 이용자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고, 무례한 행동이 아동에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취지였다. 하지만 여전히 노키즈존은 쉽게 찾아볼 수 있고, 인권위의 권고도 법적 효력은 없어 불법은 아니다.

'노○○존'이 자영업자 입장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수 있다. 하지만 나이를 기준으로 한 이용 제한은 합리적이지 않고, 차별임에 분명하다. 업주 입장에서 해당 나이의 손님으로 인해 영업 방해를 받았다 하더라도 같은 연령대를 '잠재적 진상' 취급하는 건 곤란하다. 나이가 아닌 행위에 대해 기준을 마련하고 대응하는 것이 옳다.

전국에서 노키즈존 비율이 가장 높은 제주도가 도 차원에서 '노키즈존 금지'를 논의하고 있다고 한다. 이 같은 논의가 다른 지역으로, 또 '노시니어존 금지'까지 번질지 주목된다. 누구나 아이였고, 누구나 노인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