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과 전망] ‘올곧음’의 선비정신과 2·28민주운동

입력 2023-05-16 15:00:00 수정 2023-05-16 20:03:31

배성훈 경북본사장
배성훈 경북본사장

예부터 학식이 높고 지조를 지키는 사람을 선비라고 하였다. 선비는 의리와 원칙을 지키고 부정과 부패에 타협하지 않으며 관직과 재물을 탐하지 않는 한편 의로운 일이라면 죽음도 불사했다. 한국 사람의 핏속에 흐르는 이 숭고한 정신을 이른바 '선비정신'으로 불러왔다.

선비는 정파나 개인의 이해보다 오로지 대의와 공익을 앞세웠다. 선비정신은 대대로 이어온 중요한 정신적 유산이며 도덕인격적 수양을 갖추고 사리사욕을 넘어 공동체를 진정으로 생각하는 빛나는 우리 고유의 정신이다. 대의를 추구하는 선비정신은 현대에도 계승되어야 할 소중한 덕목이다. 우리 조상들이 가난 속에서도 화목하고 예의 바르게 살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그 바탕에 선비정신이 있다.

퇴계는 16세기 조선의 많은 유생들이 남을 비방하여 자리를 유지하는 당시 선비들의 세태를 한탄했다. 퇴계는 '착한 사람이 많아지는 세상'(善人多)을 소망했고, 그 소망을 위해서 '사람다운 사람'을 키우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퇴계의 학문과 사상의 핵심은 그의 실천적 삶 속에 있었다. 퇴계는 권력의 부정부패에 엄격하여 청렴을 지키기 위해 늘 검박한 생활을 했다. 조선시대 엄격한 신분사회에서도 귀천을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을 존중하는 인본주의를 실천했다. 약하고 부족한 이들에 대한 공감 능력과 여성에 대한 존중은 시대를 뛰어넘는 것이었다. 또한 '자신만 옳고 남은 그르다'고 보는 태도를 극구 경계하여 학문적으로 대립되는 상대와도 능히 친구가 될 수 있었다. 이런 일들은 늘 남보다 나를 먼저 돌아보는 태도가 체화되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퇴계의 영향을 받은 안동 선비들은 대대로 신분제에 집착하지 않고 반상 차별을 심하게 하지 않았다. 안동 선비들은 향촌에 머무르면서 대의명분을 중시하는 경향이 짙다. 이러한 유림의 성향은 의병운동으로 분출되었고, 줄기차게 이어지는 안동 독립운동의 원천이 되었다. 안동에는 일제강점기 노비를 해방하고 만주로 망명한 가문이 아주 많다. 경술국치 후 '왜놈의 종으로 살지 않겠다'고 일가친척과 함께 만주로 간 사람들이 많았는데, 백하 김대락, 석주 이상룡 등의 가문이 대표적이다. 나라가 망하고 백성들이 수탈당하자 안동 선비들은 엄청난 자책감을 느꼈다. 상민과 노비들이 겪는 수난을 모른 체할 수 없었던 것이다. 독립운동에 나선 선비들은 누구나 예외 없이 선대부터 이어 오던 재산과 지위를 내던지고, 노비문서를 불태우고 망명길에 올랐다. 사람을 존중하고 사람을 중심으로 행동하며,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인정하고 누구나 자유롭고 평등하게 공부하고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세상을 꿈꾼 선지자들이 바로 안동 선비들이었다.

때마침 경북도청에서 '2·28민주운동과 선비정신'이라는 주제로 제1차 2·28 경북포럼이 열린다. 이날 발제를 맡은 윤순갑 경북대 명예교수에 따르면 명분을 강조하고 의리의 실천을 중시하는 '올곧음'의 선비정신은 경북에서 대구로 유학 간 청년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윤 교수는 "1960년 불의에 항거해 떨쳐 일어났던 2·28민주운동은 올곧음의 정신이 20세기에 발현된 것이었고 참여했던 청년들이 곧 선비였다"고 주장했다. 젊은 고교생들이 보여준 2·28민주운동은 불의와 부정부패에 항거하여 자유와 민주주의를 수호하려는 단호한 의지의 투쟁이었다. 퇴계와 후예들의 대의명분을 중시하는 정신적 DNA는 2·28민주운동을 넘어 자랑스러운 대구경북 정신에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