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청 공식 구마사제 ‘아모르트 신부’ 회고록 바탕
괴이한 악령 행동 등 고전적 화법은 여전
공포영화 첫 출연 러셀 크로우 연기 빛나
1973년 윌리엄 프리드킨 감독의 '엑소시스트'를 기억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악령을 쫓으려는 신부의 처절한 사투를 그려 밤잠을 설치게 한 작품이다. 특히 악령이 깃든 소녀(린다 블레어)의 머리가 돌아가는 장면은 경악 그 자체였다. 이후 신부와 악령의 대결, 구마의식은 엑소시즘이라는 오컬트 영화의 중요한 소재로 자리 잡았다.
러셀 크로우 주연의 '엑소시스트: 더 바티칸'(감독 줄리어스 에이버리)도 그 흐름에서 벗어나지 않는 오컬트 영화다.
남편이 죽은 후 줄리아(알렉스 에소)는 어린 아들과 사춘기 딸을 데리고 남편이 물려준 스페인의 한 수도원에 도착한다. 수도원을 리모델링해서 팔고 다시 미국으로 갈 계획이었다. 그러나 공사 중 사고가 발생하고 아들 헨리가 기이한 행동을 하기 시작한다.
바티칸 최고의 구마사제 가브리엘 아모르트(러셀 크로우) 신부는 스페인에서 심상치 않은 악령이 나타났다는 교황의 명을 받고 스페인으로 향한다.
'엑소시스트: 더 바티칸'은 교황이 임명한 구마사제의 활약을 그린 영화다. 그것도 실존 인물을 모티브로 했다. 아모르트 신부(1925~2016)는 교황청이 임명한 공식 구마사제로 36년 동안 10만 여건의 구마 의식을 행했으며 여러 책도 저술했다. 2016년 선종한 그가 남긴 회고록을 토대로 이 영화가 만들어졌다.
1973년 '엑소시스트'에서 악령과 대면한 사제의 엄중하고 고뇌를 연기한 막스 폰 시도우와 달리 이 영화의 러셀 크로우는 선글라스에 스쿠터를 타고 다니며 유머도 곧잘 하는 신세대 신부다. 농담은 악령이 싫어하는 코드라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경쾌하다. 구마의식을 하기 전 위스키를 한 모금 마시는 것도 그런 경쾌함을 잘 보여준다.
이 영화는 사제와 악령의 맞대결과 함께 여러 이야기를 곁들여 메인 서사를 떠받치고 있다. 우선 교황청의 상황이다. 아모르트 신부는 젊은 사제들이 보기에 괴짜이며 정도를 벗어난 사제로 받아들여진다. 주류 세력이 된 그들은 구마의식 자체를 부정한다. 대부분 정신질환이며 악령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과연 악령은 존재하는가. 공식적으로는 아니다. 다만 선이 존재하지 않는 곳이 있을 뿐이다. '우리가 악마를 조롱하고 그 존재를 부정할 때, 악마는 그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 아모르트 신부가 쓴 글이다.
영화는 이 수도원이 선이 존재하지 않은 악의 공간이라고 말하고 있다. 14~15세기 이 수도원을 중심으로 자행된 참혹하고 잔인한 종교재판이 그 실체이며, 이는 바티칸이 오랫동안 숨기고 싶어 했다는 서사를 덧붙인다. 음습하며, 위험이 깊게 깔려 있는 이 수도원의 지하에는 어떤 비밀이 또아리를 틀고 있을까.
'엑소시스트: 더 바티칸'은 고전적이며 전형적인 화법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악령이 깃든 소년의 행동과 섬뜩한 형체 뿐만 아니라 관절이 꺾이고 목이 돌아가고, 벽을 타고 천정을 붙어 다니는 괴이함도 여전히 등장한다.
악령이 집요하게 공격하는 것이 '너의 죄가 너를 찾아낼 것이다'라는 말이다. 진실을 은폐하고 묻어둔 너의 죄, 그 어떤 사면이나 고해로도 사할 수 없는 것은 아모르트 신부에게도 있었다. 악령을 부정해 한 여인을 죽음으로 이르게 한 과거다.
이런 서사들이 극을 다채롭게 엮어가는 메뉴들이다. 오래된 차림상이지만, 약간의 드레싱과 오일로 변주를 더한 느낌이다. 이를 잘 소화하는 것이 러셀 크로우의 연기다. 육중한 몸매의 그는 묵직한 주제를 가벼운 톤으로 처리하는 구마사제 역할이 잘 어울린다. 그가 공포영화에 출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다만 후반부로 갈수록 오락 활극으로 전도되는 것은 아쉽다. 좀비영화와 같은 CG가 난무하면서, 악령과의 대회전이 펼쳐진다.
결말이 속편의 여지를 남겨 놓고 있다. 천국에서 추방당한 200명의 타락천사, 신도 반기지 않는 땅을 다 찾을 기세다. 아니나 다를까 속편의 소식이 들려온다. 현재 초기 개발 중이며 속편에서도 여전히 러셀 크로우가 활약할 예정이라고 한다.
'장고'(1966)의 프랑코 네로가 교황으로 나온다. 젊을 때도 매력적이었지만, 82세인 지금도 여전하다. 103분. 15세 이상 관람가.
김중기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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