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현장] 대구 미술이 위태롭다

입력 2023-05-09 13:52:49 수정 2023-05-09 18:31:02

이연정 문화체육부 기자

이연정 문화체육부 기자
이연정 문화체육부 기자

지난해 1월 문화부로 발령받은 뒤 만난 많은 지역 작가와 미술계 종사자들은 대구 미술의 역사는 물론 대구에서 활동하는 것에 대해 강한 자부심을 보였다.

잘 알려진 대로 이쾌대, 이인성 등 근대미술 거장들을 배출한 대구는 '한국 근대미술의 태동지'로 불린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한국전쟁 등 국난 속에서도 예술로써 시대 정신을 결집하고, 예술로써 울분과 한을 치유하고 극복해 나가는 굳건한 의지를 보여준 지역이다.

또한 1974년 열린 대구현대미술제는 한국 현대미술사의 주요 전환점으로 꼽힌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현대미술 실험의 장이 돼, 이후 현대미술의 확산과 발전에 큰 역할을 했다. 이렇듯 한국 미술사에서 대구의 중요성은 다른 지역전시기획자와 미술비평가들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자부심 가득한 미술계 분위기는 1년 만에 180도 바뀐 상황이다. 최근 만난 대부분의 미술계 관계자는 인사를 겸한 걱정을 먼저 건넨다. 대구미술관 위작 사태, 관장 임용 취소, 대구미술협회 내홍 등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어서다.

특히 대구미술관 소장품 위작 판명은 지역에 큰 충격을 안겨 줬다. 대구시는 이번 일을 계기로 대구미술관을 대상으로 운영 전반에 대한 특정 감사에 돌입하기도 했다.

사실 미술품이라면 고대, 근대, 현대를 막론하고 위작은 당연히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적지 않은 세금을 들여 작품을 구입하고 시민들에게 양질의 작품을 선보이는 역할을 하는 시립미술관이라면, 위작을 걸러내야 할 전문성은 물론 그에 대한 책임감이 있어야 했다.

긍석 김진만의 작품 '매화'에 대한 위작 판명이 알려진 이후 전국 고서화 전문가들의 SNS에서는 해당 작품에 대해 설왕설래가 오가고 있다. 혹자는 같은 호를 쓴 다른 작가의 작품인 경우 위작과는 결이 다른 얘기일 수 있다고, 혹자는 위작에 대한 충분한 근거가 알려지는 것이 고서화 연구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도 했다.

정작 대구미술관은 그에 대해 별다른 설명이 없다. 환수 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만 밝혔다. 위작을 소장했다는 것이 부끄러워서일까.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서화가인 김진만 선생의 작품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곳도, 그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아는 곳도 대구인데 '위작 판명'이라는 결과만으로 작품을 덮어 버리고 있다.

단순히 위작 판명에 그칠 일이 아니다. 지역에서 오랫동안 활동해 온 전시기획자는 지금만큼 대구를 떠나고 싶은 순간이 없었다고 털어놓았고, 어떤 이는 갖고 있던 근대미술품들을 대구미술관에 기증하려던 생각을 아예 접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제 누가 대구미술관에 작품을 기증하겠냐고도 했다.

대구미술협회는 또 어떤가. 회원 수만 2천500명에 달하는, 서울 다음 가는 협회 규모가 무색하게 끊임없는 말썽을 빚어 왔다. 지난 1월 고(故) 김정기 회장 작고 이후 보궐선거 실시 여부 등을 두고 넉 달간 회원들 간에 갑론을박이 오고 가다가 이제는 법적 공방으로까지 이어진 상태다.

자타가 공인하는 국내 미술의 중심지 대구는 왜 이렇게 됐을까. 공들여 쌓은 탑도 벽돌 한두 개가 빠지면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다. 대구 미술은 더 이상 옛 명성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문화예술도시 타이틀을 거머쥐기 위한 다른 도시의 노력은 쉼 없이 이어지고 있다.

위상을 유지하는 것은 결국 지금 사람들의 몫이라는 것을 새길 때다. 대구미술관은 이번 감사를 계기로 운영 시스템을 다시 한번 옭아매고, 대구미협도 사태를 빨리 매듭짓고 화합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 1년 뒤 대구 미술계의 분위기가 문득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