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선재의 노래

입력 2023-05-04 11:47:49 수정 2023-05-06 07:24:15

공선옥 지음/창비 펴냄

클립아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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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선옥 지음/창비 펴냄
공선옥 지음/창비 펴냄

그날, 할머니가 갑자기 내 곁을 떠나기 전까지 나는 할머니는 언제까지나 내 곁에서 할머니의 모습으로 살고 나는 언제까지나 할머니 곁에서 지금의 내 모습으로 살 줄 알았다…그러나 언제까지나 계속될 것 같은 날들은 언젠가는 끝나게 된다.

시간은 유한하다. 그걸 알면서도 우리는 모른 채 지낸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은 더욱 그렇다. 이별엔 예고가 없다. 늘 갑작스럽다. 저 말처럼 언제까지나 계속될 것 같은 날은 언젠가 끝나게 된다.

책 '선재의 노래'의 주인공 열세 살 선재는 어린 나이에 이별을 겪었다. 선재는 할머니와 단둘이 산다. 종종 부모님의 빈자리를 느끼지만 할머니의 사랑으로 부족한 건 딱히 없다. "아이고 우리 강아지"라는 할머니의 무한한 애정에 어리광도 피우다, 떼도 쓰다, 또다시 까르르 웃는 날을 보낸다. 그랬던 선재에게 어느 날 갑자기, 믿을 수 없는 상황이 닥친다. 시장에 간 할머니가 갑자기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면서다. 하필 그날 할머니를 따라 시장에 가지 않았는데, 임종도 보지 못한 채 선재는 순식간에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할머니를 떠나보낸다.

이별은 몹시 아프다. 울다 울다, 또 울고 운다. 내 속에 이렇게 눈물이 많았을까. 마음에 크게 구멍이라도 난 듯 허했다가 찌르르 아파온다. 아픔과 함께 찾아오는 건 후회. 그러지 말걸, 왜 그랬지…. 무한한 자책의 시간을 보낸다. 그리움을 조금이라도 채울 수 있는 건 체취다. 그 사람이 혹은 그것이 생전에 썼던 옷, 물건엔 아직 냄새가 남아있다. 코를 박고 깊게 들이킨다. 유독 짙게 밴 냄새에 또 눈물이 흐른다.

그러다 슬며시 웃기라도 한날에는 깜짝 놀란다. 내가 이래도 되나.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며 밥도 잘 먹으라는데 밥맛이 없다지만 내 목구멍은 또 꿀떡꿀떡 밥도 삼킨다. 스스로 속도 좋다 싶어 괜히 움츠러든다.

선재도 한없이 운다. 그날 할머니에게 거짓말을 하고 장에 따라가지 않은 일이 마음을 무겁게 짓누른다. 세상에 홀로 남은 선재는 장례를 치르고 할머니의 체취가 가득한 집으로 돌아온다. 다시는 보지 못할 할머니 생각에 할머니의 옷을 찾아 냄새를 깊게 당긴다. 다시는 보지 못할 할머니. 눈물과 그리움으로 하루하루를 보내지만 그러다 잠도 자고 밥도 먹는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으면 모든 것이 멈춰야 할 텐데 눈물이 쉴 새 없이 나오는 것만 빼고 똑같이 살아가는 자신을 책망도 한다.

큰 상실감에도 남은 이들은 또 어떻게든 살아간다. 시간은 약이라서일까. 것보다 주위에 남은 소중한 이들의 관심과 애정 덕분이다. 우리는 사실 따뜻한 사람들이다. 누군가를 잃은 사람의 일상을 되찾아 주기 위해 밥은 먹었는지, 오늘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떠난 사람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 사람의 곁을 지키며 함께 애도한다. 그렇게 상실을 겪은 사람은 아주 조금씩 일상으로 돌아온다. 울음보다 웃는 날이 더 많아지고 떠난 보낸 이의 몫까지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과 함께 앞으로 걸어갈 힘을 얻는다.

선재에게도 좋은 이웃들이 곁에 남았다. 어린 나이에 겪은 갑작스러운 이별에 두려움이 앞서지만 마을 주민들은 살뜰히 선재를 보듬어 준다. 손길이 거칠고 투박하기도 그 나름대로 위로가 된다. 선재는 할머니의 유언에 따라 유골함을 안고 길을 나서는데 그 여정에서도 저마다의 사연이 있는 어른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도움을 받으며 할머니를 잃은 슬픔을 오롯이 품고 성장해 간다.

공선옥 작가는 선재처럼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고 이 글을 썼다. 그리고 선재를 통해 아주 많은 위로를 받았다. 선재가 글 밖으로 나와 작가의 등을 쓸어줬다는데 공 작가는 이를 '슬픔이 슬픔을 어루만져 줬다'고 표현했다.

수많은 죽음과 이별을 마주하는 시대. 무엇보다 긴요한 것은 진실한 애도의 경험이다. 학교나 사회에서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는 진정한 애도의 방식을 배울 수 있는 소설이다. 사실 거창한 애도의 방식은 없지만 열세 살 선재의 슬픔에 기대어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나고 다시 봄을 마주할 힘을 얻게 된다. 176쪽, 1만4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