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아메리칸 파이’와 윤석열식 외교

입력 2023-05-03 20:30:00

이호준 서울취재본부장

이호준 서울취재본부장
이호준 서울취재본부장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 성과를 두고 말이 많다. 150조 원짜리 노래 한 곡 부르고 빈 쇼핑백만 들고 왔다는 '빈손 외교' 비난이 야당에서 나온다. 미국, 중국에서 각기 다른 계산서가 날아올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앞서 3월엔 일본 가서 '굴욕 외교'를 하고 왔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대통령실과 여당은 업그레이드된 제2 한미상호방위조약이라고 평가하는 '워싱턴 선언'을 위시해 자유민주주의 가치 동맹, 첨단기술과학 등 경제·산업 협력 확대, 한미동맹 강화까지 최대의 성과를 거뒀다고 평가하며 고무된 분위기다. 윤 대통령도 방미 이후 자신감이 눈에 띄게 충천한 모습이다.

방미 성과를 분야별로 뜯어 가면서 미국과 하나하나 비교 분석하지 않는 이상 손익계산을 따지기란 쉽지 않다. 야권의 비난이 맞는지, 여권의 자평이 맞는지, 또 무게 추가 어느 쪽으로 기우는지는 분야별 분석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저울에 달아 봐야 한다. 외교 성과를 단순히 숫자로 양자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리이기도 하다.

그렇다 보니 이 얘기 저 얘기 다 맞는 것처럼 들리기도 하고, '아니면 말고'가 되기도 한다. 사실 득만 보고 왔을 리 만무하고, 그렇다고 다 내주고 손해만 봤을 리도 없다. 얻은 것도 적잖고 이를 위해 내준 것도 있을 것이라는 정도는 짐작 가능하다. 누구 말이 맞는지 칼로 무 자르듯이 결론 내릴 수 없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해서 방미 후 고무된 분위기를 끌어내리거나 부정할 필요는 없다. 현장에서 지켜본 윤 대통령의 외교는 선이 굵었고 주저함이 없었다. 앞선 순방에서 노출됐던 어설픔, 산만함, 불안감 등 약점도 보완됐다. 미국에서도 높은 점수를 주는데 우리끼리 굳이 아니라고 하는 게 오히려 어색하다.

미국 상·하원 합동 연설 때도 뭉클함, 시원함을 선사했다. 40분 넘게 이어진 영어 연설에도 원고에 의지하지 않고 막힘 없이 자신 있게 펼쳐냈다. 보는 이를 불안하게 하지 않았고 의원들의 집중된 시선에도 위축되지 않았다. 연설대 바로 위에서 현장을 지켜본 바 미 의원들이 의무적인 박수나 환호를 보내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국빈 만찬 때 갑작스러운 '아메리칸 파이' 노래 요청도 마다하지 않았다. 귀국 후 당시를 회고하면서 "당황스러웠다"고 했지만, '피아노 반주'만 부탁한 채 열창했다. 옆에 있던 뮤지컬 가수의 놀라는 모습도 목격됐다. 쭈뼛하며 자칫 낭패를 볼 수 있는 상황에서 오히려 바이든 대통령을 두 주먹 쥐고 환호하게 만들었다.

머뭇거리거나 어색한 상황도 연출하지 않았다. 가사나 체면, 구설 걱정에 손사래 치며 뒤로 빼지도 않았다. 슬쩍 떠보듯 무대로 불러내 슬그머니 건네는 바이든의 마이크를 받아 들었고, 1분도 안 돼 미국 대통령을 무장해제시켰다. 그 순간, 안보·경제 성과는 아닐지 몰라도 인간적으로 바이든을 매료시켰음은 분명하다.

외교는 사람이 하는 것이다. 주판을 튕기면 바로 계산돼 나오는 건 아니다. 훗날 손해 본 외교를 한 것으로 결론이 날 수도 있다. 반대로 선 굵은 외교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보상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당장의 평가는 조심스럽다. 최소한 이번 방미에서 '윤석열식 외교'가 상대의 마음을 얻는 덴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7일 방한한다. 3월 윤 대통령의 방일에 대한 답방이다. 당시 방일 땐 어떤 복안을 갖고 '물러섬'의 외교를 했는진 몰라도 '굴욕 외교'라는 비난을 받을 만했다. 기시다 총리도 당연히 알 것이다. 그가 이번에 뭘 들고 와서 어떤 외교를 펴고 갈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