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라언덕] 미워도 다시 한번

입력 2023-04-27 16:54:40 수정 2023-04-27 18:25:12

유광준 서울취재본부 차장

유광준 서울취재본부 차장
유광준 서울취재본부 차장

내년 4월 10일 실시될 제22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에서 선거제도 개편 논의가 한창이다.

지난 10일부터 13일까지는 현역 국회의원 전원이 본회의장에서 선거제도 개편 방향을 주제로 난상 토론을 벌이는 전원위원회가 열렸다. 무려 20년 만에 열린 전원위원회가 다룬 안건이 선거제도 변경이었으니 사안의 시급성은 더 말할 필요가 없겠다.

멍석이 깔리자 여야 의원 100명이 발언대에 올라 우국충정을 토했다. 한국 정치의 미래에 대한 소신을 피력하며 그 나름의 해법을 제안했다.

국회의장실은 ▷대표성·비례성·다양성 제고 ▷지역주의 완화 ▷지역 소멸 대응 등의 의견이 많았다고 정리했다.

나아가 김진표 국회의장은 "전원위원회에서 쏟아진 다양한 의견을 바탕으로 선거제도 개선 결의안(수정안)을 만들고자 하니 여야 교섭단체 대표들은 논의를 압축할 소위원회 또는 워킹 그룹 작업 등 다양한 협의 채널을 구성해 여야 합의안을 만들어 달라"고 주문했다.

여야 의원 133명이 모인 '초당적 정치 개혁 의원 모임' 역시 전원위원회 소위원회 구성을 위해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를 설득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후속 논의는 더디기만 하다.

예견된 귀결이다. 지금까지는 현행 선거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제도 변경을 위한 당위를 얘기했지만 앞으로 남은 과제는 구체적인 '어떻게'이기 때문이다.

선거제도는 게임의 법칙이다. 선거 결과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각 정당은 물론 국회의원 개개인에겐 사활이 걸린 문제다. 누가 누구에게 일방적으로 손해를 감수하라고 요구할 수 있을까. 쉽지 않은 숙제다. 그래서 협상도 힘들다.

이에 "국민적 요구가 빗발치는데 정치권은 도대체 뭘 하고 있느냐?"는 여의도를 향한 단골 질책도 쏟아진다.

심지어 일각에선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겨 놓은 격이라 선거법 개정 논의가 진척이 없다"며 "선거법에 한해서는 당사자인 국회의원이 아닌 별도의 논의 기구에서 결정하자"는 극약처방까지 언급한다.

예를 들면 한국야구위원회(KBO)는 특정 시즌 투수의 능력이 타자들보다 뛰어나 리그 전체적으로 득점 저하 현상이 나타나면 재미있는 야구를 원하는 관중들의 요구에 따라 다음 시즌에는 투수 마운드의 높이를 낮추거나 야구방망이에 대한 규제(무게 등)를 풀어주는 방식으로 타자들에게 유리하게 규칙을 바꾼다. 이때 현역 야구선수들은 바뀐 제도에 적응할 뿐 제도 변경과 관련한 결정권은 없다.

하지만 '신성한 국민의 주권을 대리 또는 대표할 선량을 어떻게 뽑을지를 결정하는 막중한 역할을 국민으로부터 선출되지 않은 그 누가 맡을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는 답이 어렵다.

보통 전문가와 명망가를 대안으로 언급하지만 구체적으로 "그럼 누구냐?"라고 질문을 이어가면 "그건 여야가 협의를 해서 결정하면…"이라고 다시 논의는 원점으로 돌아온다.

최근 만난 한 중진 국회의원은 "선거법 개정을 두고 당사자인 국회의원은 손을 떼라고 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어불성설"이라며 "별도 논의 기구 구성원의 정치적 중립성과 전문성에 대해서는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칠 것이냐! 국민의 선택을 받은 현역 국회의원이 주권 위임 방식을 결정하는 것이 순리"라고 말했다.

'속 썩이는 자식이지만 그래도 부모라면 믿고 개과천선하길 기다려 주는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의미다.

주권자에겐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고 다음 선거에서 심판을 할 수 있는 투표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