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규 계명대 교수
성경 66권 중에서 '욥기'만큼 문학적인 텍스트는 없을 것이다. 다양한 인물의 다채로운 수사법이 그렇고 극화된(dramatized) 사건 전개가 그렇다. 내용상으로는 욥의 질문에 대한 하나님의 '동문서답'이 압권이다. 그 진의를 파악하는 데서 '욥기'의 승부처가 드러난다.
욥은 하나님이 직접 인정한 동방 최고의 의인이다. 자식들이라도 우를 범했을까 싶어 아침마다 번제를 드릴만큼 신심이 깊다. 복도 많이 받아서 칠남 삼녀의 자식에 가축이 수천 마리에 이른다. 욥에 대한 하나님의 자부심은 사탄에게 자랑할 정도로 강하다. 하지만 사탄은 '당신이 그렇게 복을 주는데 누가 안 그러겠냐'고 빈정거린다. 하나님은 착해서 복을 주었다 하고 사탄은 복을 줘서 착하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하나님과 사탄이 초유의 내기를 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하루아침에 자식과 재산을 잃지만 욥의 믿음은 흔들리지 않는다. "주신 이도 여호와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라는 감동의 명구가 나온다. 그러나 온몸에 종기가 솟고 피가 철철 나도록 사금파리로 긁어대야 하는 육체적 고통에 이르러서는 태도가 달라진다. "내 불평을 토로하고 내 마음이 괴로운 대로 말하겠다"라며 하나님을 향해 원망과 회의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욥기' 3장에서 31장까지 이어지는 욥의 원망과 회의의 핵심은 이것이다. '왜 나같이 선한 사람은 불행을 당하고 오히려 악한 사람들이 잘사는가?' 즉 '하나님은 선하고 정의로운데 세상은 왜 이리 악하고 부정한가?'라는 반문이다. 오늘날까지도 온전히 풀리지 않은 신정론의 의문이기도 하다.
침묵하던 하나님이 욥에게 나타나 직접 응대하는 38장은 초미의 기대를 모은다. 그러나 폭풍우 속에 나타난 하나님은 욥의 질문에 답을 하기는 커녕 거꾸로 질문을 퍼부어댄다. 수사 의문문이긴 하지만 70여 개에 이른다. "내가 땅을 만들 때 너는 어디 있었느냐?" 이 첫 질문에 이어서 바다와 밤낮의 원리, 기상변화, 천체의 운행, 기이한 동물들의 생태 등 지구과학 프레젠테이션이 폭풍처럼 펼쳐진다.
이 중에서 욥이 대답할 수 있는 현상은 하나도 없다. 모두 선악의 바깥에 있는 오묘하고 숭고한 장관이다. 창조와 창조계의 운행에 도덕 같은 게 개입할 틈은 없다. 절묘한 미와 거대한 숭엄함에 경외가 있을 뿐이다.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은 창조의 단계마다 "보기에 좋았다"라고 감탄한다. 보기에 좋다는 것은 아름답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진과 선의 자리가 아니다.
세상에 하나님의 선(善)이 어디 있냐고 따지던 욥이 창조의 신비와 숭고함에 압도당하여 고백한다. "지금까지 말로만 듣던 당신을 두 눈으로 뵈니 내 잡설을 버리고 회개합니다." 듣고 말하기에서 직관으로의 전환이 일어나는바, 이성에서 감성으로의 전회다. 선악에 대한 욥의 논박은 숭고미 앞에서 잠든다. 숭고는 경외와 이어져 있다.
이성과 상상을 까마득히 뛰어넘는 숭고 앞에서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은 지극히 하찮은 일이다. 인간은 지구 생명량의 만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지구는 은하의 2천억 개 별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 칸트가 말하듯이 계산 불가의 수나 상상 불가의 크기에서 일어나는 것은 숭고감이다. 선과 정의를 따지던 욥은 기묘한 아름다움과 코스모스적 숭고 앞에서 한없이 겸손해진다.
마지막 42장에 욥은 두 배의 복으로 보상받는다. 그중에 가장 강조되는 부분은 세 딸의 아름다움이다. 성경으로서는 이례적이다. '욥기'는 욥의 의(義)에서 시작해 코스모스적 숭고를 거쳐 딸들의 미(美)에서 마무리된다. 이보다 훌륭한 미학 교재가 어디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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