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터로 가는 시간이다. 그것의 이름은 '생각의 놀이터'이다. 이때는 마음 껏 뛰어 노는 것이 중요하다. 어떠한 제약도 없이 자유롭게 뛰어노는 어린이처럼 말이다. 어린이는 편견이 없다. 규칙이 없다. 그러니 박스 안에서 생각하지 않는다. 그 생각이 박스를 벗어나 우주에까지 닿기도 한다. 아이들이 상상치도 못하는 말을 할 수 있는 것도 이런 이유다. 아이디어 회의실에는 어린 아이가 된 채로 들어간다. 그 회의실은 정말 엄청난 공간이라는 것을 이내 깨닫는다.
정현종 시인은 방문객이라는 시에서 이런 말을 한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라고. 그 사람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와 함께 오는 것이라고. 한 사람의 일생이 오는 길이라고 말이다. 아이디어 회의를 할 때 이 시를 위력을 실감한다. 공격적인 인생을 산 친구는 공격적인 아이디어를 낸다. 감성적인 삶을 산 친구는 감성적인 아이디어를 낸다. 그래서 회의 시간이 참 즐겁다. 자신만의 아이덴티티가 분명하게 표현되는 시간이다. 다만, 간과해서 안되는 것이 있다. 회의실에 들어올 때는 충분한 자료 조사가 선행되어야 한다.
광고를 의뢰한 브랜드가 어떤 상황에 빠져 있는지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명확하게 파악하고 들어가야 한다. 광고주가 기록한 광고 의뢰 요청서에만 너무 의존해서는 안된다. 광고인은 눈에 보이는 자료를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인사이트를 찾아내야 한다. 즉, 어린아이와 같이 순수한 마음으로 접근하되 뱀처럼 지혜로운 머리가 필요한 곳이 아이디어 회의실이다. 그렇게 팀원들과 아이디어를 나누는 시간은 끝이 난다.
이 칼럼을 읽는 분이 가장 궁금한 부분이 왔다. 도대체 그 많은 아이디어를 어떻게 고르냐고? 많은 분들이 다수결이라는 민주주의 방식을 예상할 것이다. 실제로 광고주 앞에서 그동안 준비한 아이디어를 발표하는 날, 그런 리더를 자주 본다. 자신의 직원들을 불러모아 가장 좋은 아이디어에 손을 들어보라는 경우 말이다. 이것은 가장 비겁하고 최악의 방법이다. 리더 입장에서는 다수가 좋아하는 아이디어가 가장 좋은 아이디어라 생각하지만 광고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이 과정은 마치 소비자 조사와 비슷하다. 언젠가 마케팅 책에서 이런 결과를 본 적이 있다. '당신은 몸에 나쁘지 않은 햄이 나온다면 구입할 의사가 있으신가요? 햄의 색깔은 흰색입니다'. 이 조사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구입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 햄이 시장에 출시되었을 때 어떤 결과였을까? 망했다. 막상 마트에서 흰색 햄이 먹음직스런 일반 햄들 사이에 섞여 있으니 전혀 맛있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몸에 나쁘지 않다는 걸 알렸는데도 말이다.
이런 것을 보면 스티브 잡스가 시장 조사를 하지 않는 것도 이해가 된다. '사람들은 당신이 보여주기 전까지는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는 그의 말은 마케팅에 있어서 엄청난 명언이다. 광고 아이디어 역시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어떤 아이디어가 좋은지 사실 잘 모른다. 더욱 중요한 것은 솔직한 의사를 밝히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우리 나라 사람들은 보여주는 것에 민감하다. '내가 이 아이디어가 좋다고 손들면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내가 좋아한 아이디어가 채택되었다가 이 광고가 실패하면 내 책임이 아닐까?' 등의 생각들이다. 나도 창업 초반에는 직원들의 다수결 의견을 따르기도 했다. 심지어 광고주 직원들의 다수결에도 말이다. 그러나 결과는 좋지 않았다. 앞서 설명한 이유들 때문이었다. 다수결로 선택된 아이디어들은 그저 무난한 아무에게도 비난받지 않을만한 리스크가 없는 것들이었다. 리스크가 없으니 얻는 것조차 없다. 비난한 여지가 없으니 자연스럽게 사람들에게 잊혀지는 광고가 선택된 것이다. 그때부터 나는 철저히 다수결의 원칙을 배척했다. 내가 직접 아이디어를 골라서 발표했고 광고주에게도 그렇게 설득했다.
물론 객관성, 바이럴 가능성, 낯섬의 정도와 같은 기준을 통해서 선정한다. 나는 오로지 나의 생각이 맞다는 생각을 밀고 갔다. 그것에서 흔들리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세상에는 남의 말을 들어 성공한 사람보다 자신을 믿어 성공한 사람들이 훨씬 많다. 광고 역시 그렇다. 자신을 믿어야 한다. 그러니 리더의 역할이 광고계에서는 특히 더 중요하다. 리더가 감이 떨어지는 사람이라면 안좋은 아이디어를 선택하고 나쁜 결과를 초래하기 마련이다. 이것은 광고회사의 리더 역시 그렇지만 광고주의 리더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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