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라언덕] 프레임 밖도 보자

입력 2023-04-20 16:42:52 수정 2023-04-20 20:28:00

한윤조 사회부 차장
한윤조 사회부 차장

세상사는 복잡다단하다. 배경과 원인, 이해관계, 숨길 수밖에 없는 이면의 사연 등이 실타래처럼 얽혀 있다. 그래서 어떤 때는 전체의 맥락을 이해하기보다 어떤 프레임을 동원해 부수적인 문제를 잘라냈을 때 더욱 선명하게 문제점이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아군과 적군, 나쁜 놈과 착한 사람을 나눠 선을 긋고 구분 지으면 특정 사안이 더욱 도드라져 보이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언론이 흔히 사용하는 보도 방식이기도 하다.

다만 문제는 이렇게 프레임을 씌우고 봤을 때 전체를 보지 못해 놓치는 부분이 생기게 된다는 점이다. 장점이 있는 만큼 잃는 것도 많다는 당연한 이치다.

예를 들어 A가 기자에게 어떤 사안에 대해 제보했다. B의 사업에 어떤 의혹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알고 보니 이 사업은 C와도 이해득실이 걸려 있는 사안이었다.

이럴 때 보통 기자는 A의 제보에 대한 진위에 대해 해당 이해관계 당사자인 B와 대척점에 있는 C, 그리고 이와는 무관한 제삼자들(D, E, F 등)의 진술 등을 골고루 듣고 사건의 실체에 대한 총괄적인 판단을 내리게 된다. 이를 삼각 취재 기법이라고 한다.

이 가운데 의혹 당사자인 B의 진술을 들어보는 것도 빼놓아서는 안 되는 과정이다.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는 데 꼭 필요한 일일 뿐 아니라 반론권 보장이라는 차원에서다. 또 하나 기자가 놓치지 않아야 할 부분은 A가 기자에게 제보한 의도성에 대해 의심해 보는 것이다. 애초 정보의 시작점이 A이기 때문에 취재 전체가 A의 말에 과도하게 의존하게 되는 경향을 띨 수밖에 없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다.

특히 이 과정에서 과연 A가 왜 B에 대해 불리한 진술을 하며, C와는 어떤 관계에 있는지에 대해서도 확인이 필요하다. 만약 A가 B를 곤경에 빠뜨림으로써 C의 이익을 돕고자 의도한 바가 있을 경우 기자의 기사가 A의 목적을 달성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게 되는 사태도 간혹 발생하기 때문이다.

일련의 과정들이 소위 객관주의 전통에 바탕을 둔 언론이 균형 잡힌 취재를 하는 보편적 방식이다. 이렇게 하기까지는 상당히 많은 시간과 노력, 그리고 인맥이 필요하다. 기자가 물어본다고 해서 모든 취재원이 순순히 사실 그대로 털어놓진 않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 사실에 근접한 것들만을 골라내 기자는 사건의 퍼즐을 맞춰 나가야 한다.

하지만 미디어 저변이 디지털 기반의 모바일 환경으로 옮겨지면서 기자들은 더 이상 이런 기본적인 취재를 할 겨를조차 없이 시간에 쫓기게 됐다. 과거에는 그나마 '마감 시간'이라는 경계가 있었지만, 이제는 그마저도 없어져 일단 보고 들은 것을 누가 먼저 쓰느냐가 바로 게임의 룰이 됐다. 각종 '카더라' 뉴스, 혹은 들은 말을 그대로 전하는 '따옴표 저널리즘'이 뉴스 대부분을 차지하게 된 이유다.

앞서 사례에서 가장 쉬운 방식은 일단 B를 나쁜 놈으로 몰고 보는 것이다. A가 진정한 의미의 선의의 제보자인지, 나쁜 놈 프레임을 쓴 B는 진정 악덕 그 자체인지, B의 반론권, C와의 연관관계를 심도 있게 짚는 일은 뒷전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언론 신뢰도가 최하위를 기록하는 이유일 것이다.

그래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프레임의 밖까지도 총체적으로 분석해 보는 깊이 있는 시선이다. 기자들이 속보 경쟁에 매몰되지 않고 언론 본연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는 데 방점이 찍히는 것이 기본이겠지만, 독자들 역시 프레임의 이면까지 함께 들여다보려는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