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영 작가 사망 두달] 창작자 옥죄는 저작권 분쟁…대구 예술계 침해 피해 심각

입력 2023-05-08 12:21:33 수정 2023-05-08 19:02:46

웹툰, 플랫폼과 불공정 계약…연극, 연출 2차 논쟁 비일비재
플랫폼 연재 중요한 만화…기쁜 마음에 덜컥 계약
"왜 내 연출과 비슷?" 2차 저작권 분쟁 많은 연극계
작품 존중감 저작권 보호 시작…기관 통합 상담 창구 일원화를

경북 경산시의 한 웹툰작가 작업실에서 지역에서 활동 중인
경북 경산시의 한 웹툰작가 작업실에서 지역에서 활동 중인 '꼬냑' 작가가 태블릿을 이용해 만화를 그리고 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극작가 A씨는 최근 저작권 관련 소송 준비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A씨는 3년 전 경북의 한 민간 제작사 의뢰를 받아 2020년 말까지 B지자체 유튜브에 업로드할 뮤지컬을 제작했는데, 올해 해당 뮤지컬 영상이 또 다른 C지자체 유튜브 채널에서 업로드된 사실을 알게 됐다.

해당 제작사에 연락을 해 영상은 내렸지만, A씨의 동의를 받지 않고 해당 제작사가 C지자체와 영상을 두고 금전 거래를 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A씨는 문제제기에 나섰다. 하지만 정작 해당 제작사는 연락 두절이 됐고 C지차제는 해당 제작사에 정당한 대가를 주고 계약을 했기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A씨는 "간혹 일부 제작사는 작품 저작권이 제작사 본인들 소유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저작권 침해에 따른 작가의 손해를 입증하기 쉽지 않아 골치가 아픈 실정"이라고 했다.

검정고무신을 만든 고(故) 이우영 작가가 저작권 분쟁으로 세상을 떠난 지 2개월이 지난 가운데 대구경북에서 저작권과 관련해 창작자들의 피해가 만연해 있다는 것이 현장 목소리다. 이를 뒷받침하듯 영남권 예술가들의 저작권 보호 수준이 전국 최저(매일신문 5월 3일자 2면)인 것으로 조사됐다.

◆불공정 계약에 계약 전·후 중노동도

고(故) 이우영 작가가 몸담았던 만화‧웹툰계 지역 작가들은 거대 플랫폼에 만화가 올라가야지만 살아남을 수 있는 구조 때문에 불공정 계약에 내몰릴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입을 모았다.

네이버, 다음 등 거대 플랫폼에 오르는 것조차 쉽지 않아 대다수의 작가는 중소형 플랫폼이나 매개 업체에서라도 연락이 오면 '우선 연재할 수 있다'는 마음에 무턱대고 계약서를 작성하는 실정이다. 그러나 회사마다 계약서는 천차만별. 계약서마다 조건이나 내용 등이 뒤죽박죽인 데다 개인 작업에만 몰두하던 작가들이 계약서의 옳고 그름을 판별하기가 쉽지 않다. 계약 전에도 대가 없는 '중노동'에 시달리는 경우도 잦다.

지역의 한 만화 작가는 "계약 전 회사 측에서 샘플원고를 먼저 보고 싶다고 제안을 하는 경우가 있다. 작가는 시간을 투자해 원고를 보내지만 결국 최종 계약이 불발되기도 한다"며 "원고 작업에 대한 샘플비도 받지 못하고 제출한 작품 소유권도 빼앗기기도 해 포트폴리오로 활용도 못한다"고 했다.

경북 경산시의 한 웹툰작가 작업실에서 지역에서 활동 중인
경북 경산시의 한 웹툰작가 작업실에서 지역에서 활동 중인 '분홍곰' 작가가 태블릿을 이용해 만화를 그리고 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연극·미술도 비슷…표절 휘말리면 끝장

대구 연극계도 상황은 비슷하다. 예전보다 작가 동의 없이 해당 작품을 극으로 만드는 경우는 없어졌지만, 아직까지 저작권에 대해 이해가 부족해 소송으로 번지기도 한다.

최근에는 연출 등 2차 저작권을 둔 논쟁이 비일비재하다. 연출가의 작품 해석에 따라 무대 장치나 조명, 소품 활용에서 아이디어가 겹치는 경우가 있으면서 연출가끼리 소송을 거는 경우다. 하지만 해석에 따라 아이디어가 비슷할 수밖에 없어 마땅한 해결책이 없다.

지역 미술계도 저작권 논란 바람이 한차례 불었다. 2014년 대구미술관이 유망한 신진 작가를 발굴, 지원하는 프로젝트에 D작가가 선정돼 작품을 전시했다. 하지만 표절 주장이 제기되면서 D작가는 법적 공방을 이어오다 7년 만에 '표절이 아니다'라는 법원 판결이 나면서 사건은 일단락됐다.

익명을 요구한 지역 미술계 한 작가는 "토끼 귀가 큰 것을 캐릭터로 했다고 토끼 귀를 크게 그린 캐릭터가 전부 표절이 될 수 없다는 것은 모두 알고 있지만 그런 보편성을 저작권이라고 우기는 경우가 있다. 또 적게 알려진 창작품을 자신의 것으로 둔갑시키는 경우도 있어 많은 작가가 저작권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경북 경산시의 한 웹툰작가 작업실에서 지역에서 활동 중인
경북 경산시의 한 웹툰작가 작업실에서 지역에서 활동 중인 '분홍곰' 작가가 태블릿을 이용해 만화를 그리고 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저작권·계약서 상담 창구 절실

저작권 논쟁이 생겼을 때 창작자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기관은 한국콘텐츠진흥원과 한국만화영상진흥원 등이 있다. 그러나 업무가 기관별로 흩어져 있는 데다 작가가 일일이 찾아 접수를 해야 하는 구조라 창작자들이 느끼는 벽은 높다.

대구에서는 대구문화예술진흥원이 운영하는 대구예술인지원센터가 저작권 관련 상담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진행된 상담은 32건에 그쳤고 이중 저작권 관련 상담은 10건에 불과했다. 대구예술인지원센터 관계자는 "올해 상반기 대구저작권서비스지원센터 운영을 맡아 예술인 상담 창구를 일원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지역 창작자나 전문가들은 접근이 용이한 저작권 교육 확충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저작권이나 계약 관련 법적 용어를 마주하거나 논쟁에 휘말렸을 때 어디에 도움을 요청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많고, 막상 변호사를 구해도 예술 지식이 많은 전문 변호사를 만나는 것도 '하늘의 별 따기'라는 것이다.

저작권 전문가인 윤대원 법무법인 아주대륙 연구위원은 "지원기관끼리 예술가 보호 지원에 있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며 "문화예술에 대한 깊은 이해없이 일반 계약서를 보듯 저작권 분야를 다뤄선 안 된다. 작품이나 창작물에 대한 존중감에서 저작권 보호는 시작된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