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쿼바디스 도미네" 베드로 순교지 위 세워진 바티칸 대성당
지난 9일이 부활절이었다. 부활절은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한 기념일이다. 기독교라는 종교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처형된 뒤, 부활한 것을 믿는 데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기독교가 존재하는 근거, 기독교라는 종교가 성립하는 주춧돌이다. 부활절의 유래와 예수 그리스도 처형, 부활 관련 유적유물을 살펴본다.
◆모세의 이집트 탈출과 유월절
요르단으로 가보자. 이스라엘과 국경을 이루는 사해 동쪽 산악지대에 네보산이 자리한다. 해발 710m이니 꽤 높다. 네보산에 오르면 먼저 구약 민수기에 야훼가 보낸 것으로 나오는 구리뱀 동상이 맞아준다. 구리뱀 조각 너머로 사해 푸른 물결과 북쪽 끝으로 오아시스 도시가 눈에 들어온다. 여리고(Jerico)다. 갈릴리 호수에서 시작하는 요단강이 사해와 만나는 지점의 옥토. 모세는 네보산에서 여리고를 가리키며 야훼가 약속한 땅(Promised Land)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네보산 정상에 모세 기념교회가 아담한 자태를 드러낸다. 동로마 시대 모자이크가 남아 있는 교회는 기독교가 공인된 직후 4세기 전반부 처음 건축된 것으로 보인다. 모세 사후 여호수아의 인도로 이스라엘 민족은 땅밟기를 통해 여리고를 접수한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의 핵심지역, 여리고를 차지할 수 있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이집트에서 탈출이다. 이스라엘 민족 요셉은 이집트에 와서 고위 관료가 됐다.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집트에 노동자로 왔다. 구약 출애굽기를 보면 이집트 파라오가 이집트 땅에 살던 이스라엘 민족을 탄압하자 야훼가 죽음의 사자를 보낸다. 이집트의 모든 큰 아들을 죽이는데, 문 기둥에 어린 숫양의 피를 발라 야훼에게 예의를 표한 이스라엘 민족은 살려준다.
이 재난을 무사히 넘긴 이스라엘 민족이 모세의 영도 아래 이집트 땅을 벗어나 가나안으로 온 것이고, 재난을 무사히 넘긴 것을 기념하는 축제가 유월절(逾越節)이다. 무사히 '지나고(逾)', '넘겼다(越)'는 뜻이다.
◆유월절 최후의 만찬과 십자가 처형, 부활
네보산에서 내려와 요단강에 마련된 국경 검문소를 지나면 이스라엘 여리고다. 여기서 1시간여 거리에 예수 그리스도가 최후를 마친 도시, 예루살렘이 자리한다. 로마 병사에 잡히기 전 예수 그리스도가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갖는다. 그날 저녁이 이스라엘 민족 명절인 유월절로 목요일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빵을 자신의 몸, 포도주를 자신의 피라고 표현하며 제자들에게 나눠준 예수 그리스도는 올리브 동산(감람산)에 올라 '올리브 기름 짜는 틀'이란 뜻의 겟세마니에서 붙잡힌다. 다음날 금요일 로마 법정에서 사형 판결을 받고, 십자가를 진 채 비아돌로로사(슬픔의 길)을 걸어 골고다 언덕에 이른다. 그리고 십자가에 못 박힌다. 하루를 지나 처형 사흘째인 일요일 새벽에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한다는 게 기독교 교리의 핵심이다.
그럼 부활절 날짜는 어떻게 정한 것인가? 이스라엘 민족 최대 명절 유월절, 즉 '페사흐'는 로마 태양력으로 3월-4월, 봄철이다. 로마의 봄을 상징하는 춘분은 3월 21일 경이다. 춘분에서 첫번째 음력 15일 그러니까 보름달이 뜬 뒤, 첫 번째 일요일을 부활절 날짜로 삼는다.
부활절 날짜 산정은 초기 교회시기부터 이견이 있었지만, 콘스탄티누스 대제 때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공인된 이 방식이 오늘날까지 이어진다. 그래서 부활절 날짜는 매년 바뀐다.
◆성분묘 교회와 콘스탄티누스 대제 모후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기 전 처형됐다는 장소로 가보자. 예루살렘 구시가지 성벽 내부는 4개 지구로 갈려 거주 주체가 달라진다. 기독교, 이슬람, 아르메니아 정교, 유대인 구역 가운데 기독교 구역에 성분묘(Holy Sepulchre)교회가 자리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처형돼 묻힌 성스러운 무덤 교회라는 의미다. 그런데 이 장소가 정말 예수 그리스도 처형장소일까? 여기라고 정한 인물은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어머니 헬레나다.
서로마 황제이던 콘스탄티누스가 325년 동로마까지 장악하며 1인 지배체제를 굳히자 헬레나는 동로마 관할이던 예루살렘을 326년-328년 사이 2년간 방문한다. 70대 고령의 헬레나가 예루살렘에 와서 몇 가지 기적을 일구는데... 먼저 예수 그리스도가 처형 당시 등에 졌다는 나무 십자가 조각을 찾아낸 뒤, 그 장소를 처형 장소로 특정한 거다.
당시 유대 지방에서 널리 쓰이던 아람어로 해골이라는 의미의 '굴갈타', 이스라엘 히브리어로 '골고다', 라틴어로 '갈보리'다. 이곳에 326년 작은 교회가 들어섰다. 614년 페르시아, 1009년 이슬람 파티마 왕조 칼리프 알 하킴에 파괴된 것을 1098년 예루살렘을 탈환한 1차 십자군이 1149년 재건해 오늘에 이른다. 당시 교회 건축에 널리 쓰인 로마네스크 양식이다. 안으로 들어가면 예수그리스도를 염했다는 바위도 남아 있다.
◆승천교회와 예수 그리스도 발자국
헬레나가 일군 또 하나의 기적,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장소를 보기 위해 예루살렘 올리브 동산(mount of olives) 꼭대기로 올라가 보자. 헬레나가 326년-328년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 장소로 특정한 곳에 383년 포이메니아라는 사람의 자금으로 교회가 건축됐다. 승천(Ascension) 교회다. 이곳은 이슬람 지구다. 1198년 이슬람 아유브 왕조 때 모스크로 개조해 오늘에 이른다.
부활절로부터 40일째인 승천기념일에 기독교도의 예배와 기념예식을 허용해 준다. 승천교회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승천할 때 남겼다는 발자국이 보존돼 있다. 승천 바위(Rock of Ascension)다. 회색 바위에 노란 빛의 오른발 자국이 남아 있는데,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 육신으로 남긴 마지막 흔적이라는 의미를 기독교계는 부여하고 있다.
◆베드로와 쿼바디스 교회
이탈리아 수도 로마 남쪽 아피아 가도로 가보자. B.C312년 착공돼 그해부터 사용된 아피아 가도는 지금도 일부 구간이 쓰인다. 아피아 가도에 쿼바디스(QUO VADIS)교회가 자리한다. 예수 그리스도 부활 뒤, 12사도 가운데 중심인물이자 초대 로마 교황이라 불리는 베드로는 제국의 수도 로마에서 선교활동을 펼친다. 그러다 64년 네로황제가 기독교도를 처형하자, 아피아 가도를 따라 남쪽으로 피난을 떠난다.
베드로는 반대편 남쪽에서 로마로 들어오는 예수 그리스도를 마주친다. 베드로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도미네 쿼바디스(DOMINE, QUO VADIS)라고 묻는다. '도미네'는 '신', '쿼바디스'는 '어디로 가느냐'는 라틴어다. 즉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라고 베드로가 여쭤본 거다.
로마로 순교하러 간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에 크게 뉘우친 베드로는 다시 로마로 들어가 바울과 함께 순교한다. 베드로가 묻힌 자리가 오늘날 바티칸 대성당이고, 베드로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자리에 세운 교회가 쿼바디스 교회다.
◆쿼바디스 교회와 성 세바스티아노 교회 예수그리스도 발자국
쿼바디스 교회 안에 베드로가 만난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국이 남아 있다. 예루살렘의 승천 교회에는 오른쪽 발자국만 있는데, 여기는 양쪽 발자국이 남아 있다. 많은 순례객들이 찾지만, 실은 복제품이다. 이곳에 있던 진품 발자국은 장소를 옮겼다. 쿼바디스 교회에서 남쪽으로 조금 더 내려가면 성 세바스티아노 교회가 나온다. 성 세바스티아노 카타콤과 같은 장소인데, 지하는 카타콤이고 지상이 교회다.
쿼바디스 교회에 있던 예수 그리스도 발자국을 이곳으로 옮겨놨다. 이 교회에는 귀한 유물이 하나 더 있다. 르네상스 이후 최고의 천재 조각가로 칭송되는 지안 로렌조 베르니니가 1680년 82살의 나이로 죽기 직전 마지막으로 조각한 작품, 예수 그리스도 조각상이 바로 이 교회에 전시돼 순례객을 만난다.
역사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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