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현장] '응급실 뺑뺑이 10대 사망' 책임은 모두에게 있다

입력 2023-04-11 16:04:11 수정 2023-04-11 18:56:31

박성현 사회부 기자

박성현 사회부 기자
박성현 사회부 기자

'메디시티' 대구의 도심 한가운데서 10대 외상 환자가 숨졌다. 사인은 '응급실 뺑뺑이'다. 처음 구급차를 탈 때까지만 하더라도 의식이 있었던 환자는 병원 4곳을 전전하다 결국 목숨을 잃었다. 구급차가 2시간 동안 시내 곳곳을 떠돌며 병원을 찾았지만 그를 받아주는 곳은 없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한 언론 보도 이후 뒤늦게 이번 사건에 대한 책임 공방도 뜨거워지고 있다. 사망한 환자를 가장 먼저 구급차에 태운 '소방'부터 환자가 스쳐간 병원들까지 서로 책임은 상대방에게 있다며 삿대질이 한창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책임 소재에서 자유로운 이는 아무도 없다. A양이 처음으로 간 종합병원은 MRI, CT 등을 찍는 과정 없이 다른 병원으로 가볼 것을 권유했다. A양과 추락 경위에 대해 얘기를 나눈 병원 측은 그에게 정신과와 외상 치료가 병행돼야 한다고 판단했고 그곳에는 정신과 전문의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A양이 두 번째로 간 경북대병원은 응급의료센터와 중증외상센터가 모두 마련된 곳이지만 이번에도 아무 도움이 되지 못했다. 먼저 도착한 경북대병원 응급의료센터가 중증외상센터로 가보라고 권유했지만 병상이 없었다.

경북대병원에서 진료를 기다리던 구급대원은 당시 병상을 확보하기 위해 계명대 동산병원, 영남대병원, 대구가톨릭대병원 등에 수소문을 했지만 A양을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고민 끝에 구급대원은 진료가 가능한 2차 종합병원으로 향했지만 그곳에서도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 건 마찬가지였다.

끝내 A양은 네 번째로 향한 종합병원 문턱에서 사망했다. 추락으로 내부 장기들이 손상돼 시급한 검사와 치료가 필요했지만 외상이 크지 않고 의식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병원의 외면을 받았다.

A양이 전전했던 병원들은 당시 구급대의 첫 브리핑을 문제 삼고 있다. "당시 구급대원으로부터 '환자가 2~3m 높이에서 떨어졌고 의식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만 하더라도 위급한 중증환자로 판단하지 못했다"며 "4층 높이에서 떨어졌다고 했다면 환자에 대한 조치가 달라졌을 것"이라고 했다.

구급대의 얘기는 전혀 다르다. 사고 당시 구급대는 환자 상태에 대해 "2, 3층 높이에서 떨어진 것으로 보이고 우측 발목과 왼쪽 머리에 부종이 보인다"고 했다고 전했다. 현재 이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은 "4층 높이의 추락은 추후 조사 과정에서 확인이 됐다. 사고 당시에는 2층 창문이 열려 있는 점을 감안해 그렇게 판단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높이'가 '미터'(m)로 바뀐 것은 환자 상태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어떤 식으로든 왜곡됐을 가능성이 크다.

이 사건 이후 '메디시티' 대구는 구급대원이 환자 상태를 면밀히 파악하지 못하거나, 병원에 전문의가 없거나, 병상이 없어 구급차에서 목숨을 잃게 되는 곳이 됐다. A양의 안타까운 죽음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더라면 비슷한 상황이 또 벌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와 관련해 경찰과 보건복지부, 대구시 등이 공동 조사를 진행 중이다. 국회는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이 사건을 취재하던 중 한 병원 측 관계자는 "이미 다 지나간 일이었는데 갑자기 기사가 나와 조사를 받게 돼 곤란하다"고 말했다. 이 사건을 병원 측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려주는 대목이다. 책임을 떠넘기고, 이 순간을 모면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A양과 같은 안타까운 죽음은 앞으로 절대 없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