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 과거 보면 지고, 미래 향하면 이긴다

입력 2023-04-10 20:23:33

최경철 논설위원
최경철 논설위원

문재인·더불어민주당 정부는 철옹성이었다. 전국 단위 선거에서 연전연승, 국민의힘(당시 당명 달랐지만 지금 명칭 사용)을 묵사발로 만들었다. 2017년 대선에서 압승, 문 대통령을 청와대로 보낸 민주당은 2018년 지방선거에서 대구경북만 제외하고 전국 지자체장을 사실상 싹쓸이했다. 지금 민주당이 거대 야당으로서 과반 이상을 쥐고 있는 국회 의석 비율도 2020년 봄 총선 때 믿기 어려운 압승을 통해 만들어졌다.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정부 때의 여러 사안을 파고들어 적폐 수사에 나서면서 이를 정치적으로 활용했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 대구 출신 변창훈 서울고검 검사 등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참극까지 벌어졌다. 문재인 청와대는 정부 부처별 적폐 청산 태스크포스(TF) 및 위원회 구성을 지시하는 공문까지 내리면서 강한 적폐 청산 드라이브를 범정부적으로 걸었다.

자고 나면 어제의 성과가 매도된 뒤 헤집어졌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결단을 통해 시작돼 국가 에너지의 근간이 된 원자력발전소가 폐기 대상이 되면서 탈원전 광풍이 불었다. 이명박 정부 시절 가뭄·홍수를 막기 위해 만들어졌던 보(洑)를 해체하라는 결정도 내려졌다. 한쪽에서는 거친 파괴 정치가, 또 다른 한쪽에서는 인기 영합적 정책을 통해 상냥한 통치자임을 과시하는 후견 정치가 일상화했다. 문재인 정부 때 공무원은 12만 명이나 늘어나고, 공기업 등 공공기관 임직원도 30% 이상 급증하는가 하면 건강보험 재정에 주름살을 만든 이른바 문재인 케어가 도입됐다.

부자가 망해도 3대는 간다지만 우리 정치 세계에는 적용되지 않았다. 선거 불패 신화를 써내려 왔던 문재인·민주당 정부였지만 2021년 4월 재보궐선거에서 서울·부산시장을 모두 국민의힘에 내주면서 선거 전문가라는 간판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2022년 3월 대선에서 윤석열·국민의힘 정부로 정권교체가 이뤄졌고, 크게 흔들린 민주당은 같은 해 6월 지방선거에서도 크게 패했다.

기자가 문재인 정부 청와대를 출입할 당시 문 전 대통령을 보면 자꾸만 뒤를 돌아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어제를 쳐다보며 오늘을 허비했다. 공급을 늘리는 미래 정책을 쓰면 되는데 과거에 집을 많이 산 사람들 때문에 집값이 올랐다면서 집 보유자를 적대시, 징벌적 과세를 일상화했다. 집 있는 사람과 무주택자의 갈라치기였다. 집값은 잡히지 않았고 2021년 재보궐선거 직전 LH 직원들의 투기가 폭로되면서 국민들은 분노했다. 과거에 집착하며 무능에다 위선까지 드러낸 문재인 정부는 무너지기 시작했고 20년 집권 몽상도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문 전 대통령, 그리고 윤석열 대통령은 모두 법조인 출신으로 과거 사안을 재단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정치는 다르다. 과거도 염두에 둬야 하지만 미래를 보는 눈이 요구되는 게 정치다. 문 전 대통령은 정치인이 됐는데도 불구하고 과거에 치중하며 정권 재창출 실패의 불명예를 안았다. 1년 뒤 총선 결과를 앞두고 말이 많다. 윤 대통령을 심판하는 회고적 투표가 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과거를 맹렬히 추적하던 검사의 경험칙에 머무르지 않고 한일 관계 정상화에서 결단했듯이 윤 대통령이 미래 지향 행보를 보이면 여당은 긍정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윤 대통령이 식견 있는 미래형 지도자가 되겠다고 결심했다면 검찰 편중 인사, 당무 과다 개입, 윤핵관 두둔 등의 어리석은 행동도 절대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