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침략이 과거사 복원?
韓 역사학계 장악 강단사학, 日 제국주의 황국사관 한 분파
야마토왜가 가야 점령하고 임나일본부 설치 '정한론' 주장
일본서기 '신라정벌' 기록, 위치도 모르는 나라 찾아 공격
'조선→대한민국' '왜→일본' 국호 변경 미리 예언하기도
◆정한론(征韓論)과 임나일본부설
일제 때부터 현재까지 한국의 역사학계를 장악한 강단사학, 즉 식민사학은 일본 제국주의 황국사관(皇國史觀)의 한 분파이다. 황국사관은 오사카 근처 나라(奈良)에 있던 고대 야마토왜(大和倭)를 주체로 역사를 보는 것이다.
황국사관에 의하면 고대 야마토왜가 가야를 점령하고 임나일본부를 설치했으니 근대 일제의 한국 점령은 침략이 아니라 과거사의 복원이다. 이런 논리에서 나온 것이 한국을 점령하는 논리인 이른바 '정한론(征韓論)'이다. 정한론이 처음 등장한 시기를 보통 메이지 6년(1873)으로 삼는다.
이때는 조선이 대한제국으로 국호를 바꾸기 24년 전이었다. 일본은 조선이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꿀 것을 미리 알았다는 말인가? 그럴 리는 없다. 이때 '정한론'의 한(韓)은 '삼한(三韓)'을 뜻한다. 과거 야마토왜의 신공왕후(神功王后)가 삼한을 정벌했고, 가야땅에 임나일본부를 설치했으니 이를 복원해야 한다는 것이 정한론의 요체고, 임나일본부설의 요체다.
임나일본부설은 야마토왜가 369년 가야를 점령해 임나일본부를 설치하고 562년까지 지배했는데, 때로는 임나의 지배영역이 경상도뿐만 아니라 전라도, 충청도까지 이르렀다는 것이다. 요즘 남한 역사학자들이 주창하는 이른바 '호남가야설, 호서가야설'이 나온 배경이다.
◆삼한을 정벌하고 가라도 정벌하고
메이지시대 도쿄여자고등사범학교 교장을 역임한 국학자 나가 미치요(那珂通世:1851~1908)는 1897년 〈가라고(加羅孝)〉에서 이렇게 썼다.
"신공황후가 삼한을 정벌한 후, 다시 한 번 장수를 보내어 평정한 7개국 중의 하나인 가라국은 즉, 이 대가라로서 (《일본서기》) 응신·계체·흠명기(應神繼体欽明紀) 등에 자주 보인다."
이 기사는 두 사건에 대한 설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는 신공왕후가 삼한, 곧 신라·고구려·백제를 정벌했다는 것이다. 둘째 신공왕후가 다시 7국을 정벌했는데, 그중 하나가 가라국이라는 것이다. 첫 번째는 《일본서기》 〈신공 9년〉조에 나오고, 두 번째는 〈신공 49년조〉에 나온다는 것이다.
신공은 《일본서기》상 야마토의 14대 일왕 중애(仲哀)의 부인이다. 《일본서기》 〈신공 9년〉조는 이런 내용이다. 하루는 신(神)이 신공에게 '보물이 많은 신라를 치라'는 신탁을 내렸다. 문제는 신라가 어디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바다사람 오마려(烏摩呂:워마로)를 서해로 보내 찾아보게 했지만 찾지 못했다. 다시 바다사람 명초(名草:나쿠사)를 보냈더니 며칠 후 "서북쪽에 나라가 있는 것 같다"고 보고해서 신라정벌에 나섰다. 인류 역사상 어디있는지도 모르는 나라를 힘들게 찾아서 공격한 최초이자 최후의 사건이다.
때마침 왕후는 산달이어서 돌을 허리에 차고 정벌에 나섰다. 신공의 군사가 신라 바닷가에 이르자 신라왕은 "내가 듣기에 동쪽에 신국(神國)이 있는데, 일본(日本)이라고 이른다. 또한 성왕(聖王)이 계시는데 천황(天皇)이라고 이른다. 반드시 그 나라의 신병(神兵)일 것이다. 어찌 군사를 들어서 막겠느냐?"라면서 흰 깃발을 들어서 스스로 항복했다.
〈신공 9년〉은 서기 209년인데, 왜(倭)라는 국호가 '일본'으로 변경된 것은 백제·고구려 멸망 직후인 670년이다. 신라왕은 460여년 후에 왜의 국호가 일본으로 변할 것을 미리 안 예언자이다. 신라 항복 소식을 듣고 고구려, 백제 두 왕도 함께 항복하면서 매년 조공을 바치겠다고 맹세했는데 "이것이 이른바 삼한(三韓)"이라는 것이다. 이후 세 나라는 매년 야마토왜에 조공을 바쳐야했다.
◆백제 조공품을 빼앗아 바쳤다는 신라
720년에 편찬했다는 《일본서기》는 앞뒤가 안 맞는 역사서로 유명하다. 허구의 사건이 자식을 낳고 그 자식이 또 자식을 낳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론은 하나로 귀결된다. 야마토왜는 황제국이고 고구려·백제·신라는 제후국이고 '가야=임나'는 직접적 식민지라는 것이다.
신공 9년부터 신라·고구려·백제는 매년 야마토왜에 조공품을 바쳐왔다. 그런데 신공 44년(244)에 백제왕은 구저(久氐) 등을 탁순(卓淳)에 사신으로 보내서 '일본귀국(日本貴國)'에 조공을 바치고 싶은데 길을 몰라서 바치지 못한다면서 일본으로 가는 길을 가르쳐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2년 후인 신공 46년(246) 탁순에 사신으로 왔던 야마토왜의 사마숙녜(斯摩宿禰:시마노스쿠네)는 이 소식을 듣고 자신의 겸인(傔人:시종) 이파이(爾波移)를 백제로 보냈다.
백제의 초고왕(肖古王)은 야마토왜에서 생산하지 못하는 덩이쇠인 철정(鐵鋌) 40매를 비롯해 오색 비단 등을 이파이에게 주면서 앞으로 매년 공물을 바치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신공 47년(247) 왜에서 백제와 신라가 바친 공물을 조사하니 백제의 공물이 좋지 않았다. 조사해보니 신라에서 백제의 공물을 빼앗아 신라 공물인 것처럼 속여서 바쳤다는 것이다. 그래서 화가 난 신공왕후가 신라정벌을 명해서 신공 49년(249)의 신라정벌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신라를 공격했는데 망한 것은 가야?
《일본서기》 〈신공 49년조〉는 황국사관교(敎)의 핵심구절이다. 그해 봄에 신공은 황전별(荒田別:아라타와케) 등에게 군사를 주어 신라를 공격하게 했다는 내용이다.
"(야마토왜군이) 모두 탁순에 집결해서 신라를 공격해서 깨트리고, 이로 인해 비자발(比自㶱)·남가라(南加羅)·탁국(㖨國)·안라(安羅)·다라(多羅)·탁순(卓淳)·가라(加羅) 7국을 평정했다(《일본서기》 신공(神功) 49년)"
이것이 이른바 '임나일본부' 성립 기사라는 것인데, '임나'라는 말은 나오지도 않는다. 또한 공격당한 나라는 신라인데 망한 나라는 가야여서 여기에 '임나일본부'를 설치했다는 것이다.
◆신공 9년조는 허구지만 49년조는 사실이라고?
일제 패전 후 일본의 역사학계는 신공 9년조의 기사는 사실이 아니라고 폐기했다. 한국땅에서 쫓겨난 마당에 신공 9년에 신라·고구려·백제를 정벌했다고 주장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공 49년조의 정벌 기사는 사실이라는 것이다. 남한 역사학계도 마찬가지다. 신공 49년은 서기 249년이지만 2주갑(周甲) 120년을 더해서 369년의 사건이고 백제 근초고왕 때 일이라고 주장한다. '야마토왜'를 '백제'라고 주체만 슬그머니 바꾼 후 정벌기사는 사실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신공 9년조의 삼한 정벌 기사에서 신공 49년조의 사건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술은 안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사실'이라는 식으로 신공 49년조는 사실이라는 것이다. 신공 49년조의 폐기는 황국사관 포기와 같기 때문에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가야의 이시품왕은 어떻게 쫓겨나지 않았나?
이들은 신공 49년조의 남가라가 금관가야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금관가야는 369년에 멸망했거나 최소한 국왕은 교체되었어야 한다. 금관가야의 제5대 이시품왕의 재위기간은 346년~407년이다. 신공 49년조가 사실이라면 369년 이시품왕은 쫓겨났어야 한다. 그러나 이시품왕은 407년까지 재위에 있다가 승하했고 아들 좌지왕(재위 407~421)이 즉위했다. 369년에 가야가 왜에게 멸망당한 사건 따위는 없었다는 뜻이다.
광복 80년을 눈앞에 둔 지금까지 한국의 대학교수들이 이런 허무맹랑한 내용을 추종하는 것은 인류 사학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사건이다. 초등학생도 역사에 조금만 관심이 있으면 논파할 수 있는 이런 수준의 식민사학자들에게 가스라이팅 당해 가야사를 임나일본부사로 변조하는데 1조2천억의 국고를 쓰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목숨을 바치신 20만여 분의 순국선열들에게 어찌 부끄럽지 않겠는가?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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