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랑] 든든한 남편·다정한 아빠에게 닥친 췌장암 4기…마른 눈물만 흘러 내려

입력 2023-04-04 06:30:00 수정 2023-04-04 06:40:48

일찍 돌아간 아버지 이어 똑같은 병마…항암 7번 받았지만 상태 악화
위로 전이, 언제까지 치료해야 할 지 불투명…딸에게 차마 알리지도 못해
영상통화 걸어온 딸에 자장가 불러주고 싶지만 목소리마저 안 나와

지난 달 31일 찾은 지역 한 대학병원 병동. 췌장암 4기 진단을 받고 이곳에 입원해 치료를 받고 있는 황재신(41) 씨를 아내 오희경(41) 씨가 간호하고 있었다. 재신 씨와 희경 씨는 둘 다 15살에 각자 아버지를 병으로 잃었다는 상처를 공유하고 있다. 윤정훈 기자
지난 달 31일 찾은 지역 한 대학병원 병동. 췌장암 4기 진단을 받고 이곳에 입원해 치료를 받고 있는 황재신(41) 씨를 아내 오희경(41) 씨가 간호하고 있었다. 재신 씨와 희경 씨는 둘 다 15살에 각자 아버지를 병으로 잃었다는 상처를 공유하고 있다. 윤정훈 기자

부부는 서로 닮는다. 애초에 닮았기에 부부가 되는 건지도 모른다. 황재신(41) 씨와 오희경(41) 씨는 닮은 점이 많았다. 둘 다 대구에서 태어나 자랐다. 같은 교회에 다녔다. 그리고 중학교 2학년 때 아버지를 잃었다. 희경 씨의 아버지가 4월에 당뇨합병증으로, 몇 달 뒤 재신 씨 아버지가 췌장암으로 각각 세상을 떠났다. 당시 같은 교회 중고등부 소속이었던 둘은 서로의 비극을 전해 들어 알고 있었지만, 굳이 위로의 말을 전하지 않았다. 아픔을 딛고 잘 지내는 서로를 보는 것만으로 충분히 위로가 됐다. 지금 생각해보면, 서로의 존재가 위안이었던 그때부터 부부의 연은 시작된 건지도 모른다.

"엄마, 아빠 많이 아픈 거야?"

병원으로 떠나던 날 이제 막 초등학교 2학년이 된 딸 채린(가명·7)이 희경 씨에게 물었다.

"그냥 조금 아픈 거야."

그렇게 얼버무리고 현관을 나서려는 순간, 희경 씨는 걸음을 멈칫했다. 지금의 자신이 28년 전 엄마의 모습과 너무 닮았단 생각이 들어서였다. 시어머니도 비슷한 생각을 하는지 아무 말이 없었다. 가족은 서로 닮는 걸까. 이젠 아니었으면 좋겠다.

◆ 아버지 여의고 초등교사 홀어머니가 어렵게 키워… 이후 공장 사고까지

재신 씨는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초등학교 교사였던 어머니 손에서 자랐다. 적은 교사 월급에서 최대한 줄이고 아끼며 재신 씨와 여동생을 대학까지 보내느라 어머니가 고생이 많으셨다. 넉넉하지 못한 형편에 재신 씨는 대학생이 된 후 고깃집부터 건어물 배달 등 각종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힘겹게 학업을 이어나갔다.

그날도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시내 번화가를 지나고 있었다. 또래로 보이는 한 여자가 아는 척을 하며 말을 걸어왔다. 희경 씨였다. 평범한 교회 친구 사이였던 둘은, 고등학생이 된 이후 희경 씨가 다른 교회를 가게 되며 자연스레 멀어졌다. 그로부터 10년 만의 재회였다. 희경 씨는 고등학교 졸업 후 미용실에 취직했다고 한다. 자신을 찾는 단골들도 제법 있다며 웃는 희경 씨의 모습에, 재신 씨는 힘을 얻었다. 재신 씨의 근황을 들은 희경 씨 역시 마찬가지였다. 10년 전에도 그랬듯, 열심히 사는 서로의 모습은 여전히 위로가 됐다.

운명처럼 재회한 두 사람은 2010년 결혼식을 올렸다. 두 집안 다 형편이 좋지 않았기에 신혼집은 따로 마련하지 못하고 재신 씨 집에 그대로 살림을 차렸다. 한창 행복해야 할 신혼 2년 차, 두 번째 풍파가 재신 씨를 덮쳐왔다. 대학 졸업 후 알루미늄 포일 제조 업체에서 일했던 재신 씨는 포일 기계를 다루다 800kg에 달하는 육중한 포일에 왼쪽 다리가 끼이는 사고를 당했다. 이 일로 대학병원에서 다리 골절 및 피부이식 수술을 받고, 그 후에도 한동안 입원해 치료를 계속 받아야 했다.

공장 일을 더 이상 할 수 없었던 재신 씨가 선택한 두 번째 일은 바로 '사회복지사'였다. 예전부터 남을 돕는 것에 관심이 많았던 재신 씨가 사회복지학과를 복수전공했기에 가능한 길이었다. 재신 씨는 대구에 있는 한 중증장애인 생활시설에서 장애인 입소자들의 재활을 돕는 일을 시작했다. 일은 고됐다. 주간, 야간 근무를 번갈아 했기에 밤낮이 자주 바뀌었고, 입소자들 목욕시키는 일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입소자들이 서로의 대변을 던지며 노는 걸 말려야 할 때도 있었다.

힘들었지만 재신 씨는 입소자 중 누군가 재활 훈련을 통해 자립에 성공하기라도 하면 제 일처럼 기뻐하곤 했다. 그만큼 이 일을 사랑했다. 타인을 돕는 일도 중독이 되는 걸까. 재신 씨는 업무 시간 외에도 마을 자율방범대, 의용소방대 활동을 하며 남을 도왔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틈틈이 공부해 요양보호사, 간호조무사, 음악심리치료사 등 각종 자격증을 섭렵했다. 사회복지사 자격증처럼, 일단 따 놓으면 언젠가 누군갈 돕는 데 쓰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회복지사로 평생 남 돕고 딸에게도 지극정성… 덜컥 '췌장암 4기' 진단

밖에서는 잘하지만 정작 가족들에겐 소홀한 사람들도 있다. 물론, 재신 씨와는 거리가 먼 얘기였다. 가족들, 특히 하나뿐인 딸 채린이에게 재신 씨는 세상에서 제일가는 다정한 아빠였다. 야간 근무를 하고 온 날이라도 채린이가 원한다면 어디든 갔다. 특히 채린이가 놀이공원 가는 걸 너무 좋아했기에 연간회원권을 끊어 틈만 나면 둘이라도 놀이공원에 다녀오곤 했다. 그냥 쉬라고 해도 막무가내인 남편을 보며 희경 씨는 은근히 미소 지었다. 딸에게 좋은 아버지가 되어주고, 그런 남편과 딸의 모습을 바라보는 일…. 아버지 없이 자란 두 사람에겐 완전한 행복이자, 유년에 대한 치유였다.

그리고 지난해 11월 세 번째 풍파가 찾아왔다. 부쩍 소화가 안 되고 등 쪽이 아파 동네 내과를 찾은 재신 씨. 더 큰 병원에 가보라 길래 대학병원을 방문해 CT를 찍었다. 췌장암 4기 진단을 받았다. 28년 전 아버지를 데려갔던 그 병마였다. 서울 한 병원으로 이송돼 항암치료를 7번이나 받았지만 몸 상태가 악화돼 치료를 중단했다. 암세포가 위장까지 침범했다고 한다. 항암치료를 받으려면 우선 위로 전이된 암세포를 제거해야 해서 현재 지역 대학병원에 입원해 관련 수술을 받고 있다.

지난달 18일 입원해 내시경 수술을 4번이나 받았지만 상태는 호전되지 않고 있다. 위 침범이 앞으로 몇 번이나 발생할지, 항암치료는 얼마나 진행해야 할지, 항암치료를 진행할 수 있을지, 치료 계획 자체가 불투명하다. 병간호를 위해 희경 씨가 미용실을 그만둬 아무런 소득이 없는 상황인데 치료비도, 투병 기간도 그 어느 것 하나 가늠할 수 없다. 채린이에겐 차마 알리지 못했다. 화가가 꿈이라는 딸에게 미술학원을 관둬야 한다고 설명할 때도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저녁 9시, 여느 때처럼 채린이가 영상통화를 걸어왔다. 사랑하는 아내가 보여준 스마트폰 화면 너머엔 어린 딸과, 연로한 어머니가 있었다. 어린 딸이 자장가를 불러달라며 칭얼거린다. 얼마든지 불러주고 싶지만, 탈수 증상으로 혀가 갈라져 목소리가 안 나온다. 이젠 자장가조차 불러줄 수 없구나. 든든한 아들이자 남편, 그리고 아버지가 되고 싶었던 재신 씨는 마른 눈물을 흘렸다. 제대로 울지도 못하는 남편의 팔을 붙잡고, 대신 눈물을 흘려주는 희경 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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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만 줬던 첫 번째 남편 때문에 극단적 선택 시도하려던 순간 현재 남편에게 구해져 행복하게 살려고 했으나 갑자기 겹친 병마로 겨우 찾은 행복 부서질 위기인 곽미정 씨에게 2,603만원 전달

상처만 줬던 첫 번째 남편 때문에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려던 순간 현재 남편에게 구해져 행복하게 살려고 했으나 뇌졸중, 시력 저하 등 부부에게 겹친 병마로 겨우 찾은 행복마저 부서질 위기인 곽미정(매일신문 3월 21일 자 10면) 씨에게 2천603만6천원을 전달했습니다. 성금을 보내 주신 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 성금에는 ▷구미현대병원 25만원 ▷(주)삼이시스템 10만원 ▷달서구약사회 10만원 ▷문심학 20만원 ▷한은희 10만원 ▷라선희 3만3천원 ▷권규돈 3만원 ▷이병규 2만5천원 ▷신종욱 2만원 ▷조혜란 2만원 ▷최정원 1만5천원 ▷최지원 1만5천원 ▷김종식 1만원 ▷박미화 1만원 ▷박찬희 1만원 ▷이서영 1만원 ▷이현민 1만원 ▷정혜원 1만원 ▷이순덕 5천원 ▷이진기 5천원 ▷조철제 5천원 ▷이장윤 2천원 ▷'곽미정차태열님주세요' 3만원이 더해졌습니다. 성금을 보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아내가 수년간 베트남으로 돈 빼돌려 이혼한 뒤 홀로 딸 2명 열심히 키우다 당뇨로 치아 다 빠지는 등 건강 악화돼 의사 되고 싶은 딸 지원 못해 서러운 최억수 씨에게 2,740만원 전달

수년간 베트남으로 돈을 빼돌린 아내와해 이혼한 뒤 건강 악화로 건설 현장 일용직조차 어려워 의사를 목표로 열심히 공부하는 딸에게 미안한 최억수(매일신문 3월 28일 자 10면) 씨에게 59개 단체, 208명의 독자가 2천740만원을 전달했습니다. 성금을 보내 주신 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피에이치씨큰나무복지재단 200만원 ▷건화문화장학재단 150만원▷(주)대구은행 100만원 ▷㈜세원정공물산 100만원 ▷(주)태원전기 50만원 ▷(주)한라개발 50만원 ▷다우약품 50만원 ▷세무법인송정 50만원 ▷신라공업 50만원 ▷㈜태린(배민경) 40만원 ▷최상규이비인후과 40만원 ▷보생조한의원 30만원 ▷쇼움갤러리(김수현) 30만원 ▷㈜신행건설(정영화) 30만원 ▷지노인터내셔날 30만원 ▷한미병원(신홍관) 30만원 ▷(주)동아티오엘 25만원 ▷(주)대가이엔지 20만원 ▷경북장식철물 20만원 ▷금강엘이디제작소(신철범) 20만원 ▷대백선교문화재단 20만원 ▷대창공업사 20만원 ▷대흥분쇄기(한미숙) 20만원 ▷법무사김태원 20만원 ▷(주)구마이엔씨(임창길) 10만원 ▷(주)우주배관종합상사(김태룡) 10만원 ▷경주천마운전전문학원 10만원 ▷굿에이치알(김인호) 10만원 ▷김영준치과의원 10만원 ▷대구동양자동차운전전문학원(최우진) 10만원 ▷세움종합건설(조득환) 10만원 ▷신성산업(김용환) 10만원 ▷창성정공(허만우) 10만원 ▷피플라이프(박태호) 10만원 ▷(주)태광아이엔씨(박태진) 5만원 ▷건천제일약국 5만원 ▷다빈치커피대명마루점 5만원 ▷명EFC(권기섭) 5만원 ▷베드로안경원 5만원 ▷보성카써비스(김영수) 5만원 ▷봉산교회(김명묵) 5만원 ▷비스어학원 5만원 ▷세무사박장덕사무소 5만원 ▷수가성식당(최병기) 5만원 ▷우리들한의원(박원경) 5만원 ▷이전호세무사 5만원 ▷전피부과의원(전의식) 5만원 ▷중앙안과의원(김일경) 5만원 ▷참한우소갈비집(신동애) 5만원 ▷채성기약국(채성기) 5만원 ▷칠곡한빛치과의원(김형섭) 5만원 ▷흥국시멘트 5만원 ▷(주)동신통신(김기원) 3만원 ▷국선도풍각수련원 3만원 ▷매일신문구미형곡지국(방일철) 3만원 ▷서성상회(박형근) 2만원 ▷장군찜닭(김태영) 2만원 ▷사단법인대한민국힐링문화진흥원 1만원 ▷하나회(김미라) 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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