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 위에 조선하…"천년 전엔 발해조선의 일부 였다"
938년 요나라 태종 때 부수도 '연경'…지금 중국 수도 '북경'의 옛날 명칭
'북경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면 조선하'…中 최초 관찬 병서 '무경총요'에 기록
◆중국의 수도 북경
북경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도이다. 북경의 면적은 1만 6천410㎢이고 상주인구는 약 2,200만 명에 달한다. 한국의 수도 서울은 면적이 약 606㎢에 인구는 약 1,000만 명이 거주한다. 북경은 서울보다 면적은 27배나 크고 인구는 배가 많다. 명실 공히 동아시아의 대표적인 도시라고 말할 수 있다.
북경은 4,000여 년의 역사를 간직한 고도이다. 시대에 따라서 명칭도 다양하게 불렸다. 북경의 유래를 살펴보면 최초의 명칭은 유도幽都이다. '서경' 요전堯典에 "삭방에 거주하도록 하니 유도라 한다.(宅朔方 曰幽都)"라고 하였다. 삭방은 북방을 가리키는데 요임금 시대에 북방을 유도라고 했던 것이다. 순임금은 천하를 12주로 나누고 지금의 북경 쪽엔 유주幽州를 설치했다.
'이아爾雅'의 석지釋地에는 "연나라를 유주라 한다(燕曰幽州)"라고 하였다. 서기전1045년 서주의 무왕이 은나라를 멸망시킨 다음 소공을 연나라에 봉했는데 그 지역이 지금의 북경 부근이었으므로 "연나라를 유주라 한다."라고 한 것이다.
전국시대엔 7웅 중의 하나인 연나라가 북경의 연산燕山 부근에 있었다. 한나라 시대에는 유주 또는 연국燕國이라 하였다. 진晉나라 때는 선비족모용씨가 나라를 세우고 이름을 연燕이라 하였는데 지금의 북경이 그 범주에 포함되었다. 수나라 시대에는 탁군이 되었고 당나라 시대에는 하북도에 속했다. 거란족이 세운 요나라 때는 석진부析津府라 불리기도 하였다.
938년 요나라 태종 때 이 지역을 처음에는 남경이라고 했다가 나중에 연경燕京으로 개정하여 요나라의 부수도로 삼았다. 그 당시 요나라 수도는 상경에 있었다.
하버드대학에는 1928년 건립된 세계적인 연경도서관燕京圖書館이 있다. 연경이란 명칭은 지금도 사용되고 있는데 북경에 대해 연경이란 명칭을 최초로 사용한 것은 요나라 때이다.
1153년 금나라의 4대 황제인 완안량完顔亮이 지금의 북경시 서남쪽 광안문 밖에 도읍을 세우고 상경에서 천도했는데 이름을 중도中都라고 하였다.
원나라 때 금나라의 별궁인 지금 북경의 북해공원을 중심으로 새로 도성을 건축하여 1272년 원 세조 쿠빌라이 칸이 대도大都라고 호칭하였다. 지금의 북경이 정식으로 중국의 수도가 된 것은 원나라 때부터이다.
1368년 주원장이 명나라를 건국하여 수도를 남경에 정했고 원나라의 수도 대도는 북평北平이라고 명칭을 바꾸었다.
1403년 연왕燕王 주체朱棣가 반란을 일으켜 황위를 빼앗은 다음 북평이란 명칭을 북경으로 개정하고 1420년 수도를 남경에서 북경으로 천도하였다. 북경이란 명칭은 600년 전 명 태종 주체에 의해서 최초로 명명되어 청나라 때까지 계속 사용되었다.
한족의 요람은 장안 낙양이고 이들 한족의 입장에서 보면 북경은 북쪽 지역이 된다. 그래서 한족의 수도가 되면서 북경이란 명칭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중화민국 시기에는 남경으로 수도를 정하고 북경은 북평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1937년에는 북평이 일본에 의해 점령당했고 명칭도 북평에서 다시 북경으로 개정하였다.
1945년 8월 일본군이 투항하자 한족이 다시 북경을 접수하여 북평으로 이름을 고쳤다. 1949년 1월 중국인민해방군이 북평시에 진입하여 1949년 9월 27일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제1차 회의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의 국도, 기년, 국가, 국기에 대한 결의가 통과되었고 이때 북평을 북경으로 바꾸었다. 1949년 10월 1일 북경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의 건국을 선포하였다.
북해공원은 북경 시내의 중심지대로서 중공중앙위원회와 중국 국무원의 사무실이 있는 중남해와 이웃해 있다. 중남해는 중국 정치경제의 심장부로서 한국의 청와대와 같은 곳이다. 본래 몽골족 원나라 황제가 북경에 수도를 정하고 집무를 보던 황궁 터가 북해공원인데 지금 공산당 정부가 그곳에 들어서 있는 것이다.
◆'무경총요'에 "조선하가 북경 북쪽에 있다"는 기록이 나온다
'무경총요武經總要'는 북송北宋 때 군사제도와 군사이론을 기록한 중국 최초의 관찬 병서官撰兵書이다. 전집前集 20권 중에 실린 변방邊防 5권은 산천지리와 관련된 내용을 상세히 기술하여, 당시 송나라가 처한 지리적 역사적 상황을 살피는 데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지금은 북경이 중국의 수도로서 정치 경제의 중심이 되어 있지만, 북송 때는 중국이 통일되지 못하고 분열되어 북방에는 거란족이 세운 요나라, 남방에는 한족이 세운 송나라가 대치하고 있었다.
당시 송나라의 수도는 현재의 하남성 개봉시開封市에 있었고 북경은 요遼나라의 영토에 소속되어 처음에는 남경이라고 했다가 다시 연경燕京으로 고쳤다. 그러므로 이 책에서는 연경이 송나라의 변방 부문에 편입되어 있다.
그런데 우리가 '무경총요'에서 주목하는 부분은 연경 즉 지금의 북경에서 요나라의 수도 중경中京에 가는 노정을 설명하는 내용 가운데 조선하朝鮮河라는 명칭이 다음과 같이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동북쪽으로 중경에 당도한다. 북문을 나가서 옛 장성을 지나 망경望京까지가 40리이고 또 온여하溫餘河 대하파大廈陂를 지나서 50리를 가면 순주順州에 도달한다. 동북쪽으로 백여하白璵河를 지나 70리를 가면 단주檀州에 도달하는데 여기서부터는 점차 산길로 접어든다. 50리를 가면 금구정金溝淀에 도착하는데 산길로 접어들어 길이 구불구불하고 마을 어귀에 세워두는 흙으로 된 표지판은 나타나지 않는다. 조선하朝鮮河를 지나서 90리를 가면 북쪽으로 고하구古河口에 도착한다.···(東北至中京 出北門 過古長城 至望京 四十里 又過温餘河 大厦陂 五十里 至順州 東北過白璵河 七十里 至檀州 自此漸入山 五十里 至金溝淀 入山屈曲 無復里堠 過朝鮮河 九十里 北至古河口···)"
북경에서 당시 요나라의 서울 중경까지 가면서 경유하게 되는 지명 가운데 조선하가 등장하는데, 조선하를 지나서 고하구古河口에 도착하게 된다고 하였다. 고하구는 '요사遼史' 지리지 중경도中京道 조항과 '왕기공행정록王沂公行程錄'에는 "구십리 지고북구九十里 至古北口"로 나와 있다.
지금도 중국 지도상에 북경시 북쪽 조하潮河 부근에 고북구古北口라는 지명이 남아 있다. 이 자료에 보이는 고하구古河口의 고하古河는 유서 깊은 고대 조선하朝鮮河를 가리키는 것으로서 고북구의 오기가 아니라 고북구의 원래 이름 또는 다른 이름이라고 하겠다.
북송 당시 요遼나라의 수도는 오늘날의 내몽고자치구 영성현寧城縣에 있었는데 명칭은 중경中京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연경에서 중경에 가려면 북문을 나가서 옛 장성을 지나고 망경望京(지금의 북경시 조양구朝陽區 망경), 온여하溫餘河․순주順州(지금의 북경시 순의구順義區), 단주檀州(지금의 북경시 밀운현密雲縣), 고북구를 거쳐서 북쪽으로 가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고북구에 당도하기 전에 먼저 조선하를 건너서 간다고 '무경총요'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천 년 전에 조선하가 왜 북경 북쪽에 있었는가
'무경총요'는 지금으로부터 천여 년 전인 1044년에 편찬된 책이다. 이 책의 편간 연대는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한 것보다 350년을 앞선다. 따라서 시기적으로 볼 때 여기서 말하는 '조선하'는 600여 년 전 압록강 이남에 건국되었던 한양조선과는 전혀 무관한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두 가지 의문에 봉착하게 된다. 첫째는 '조선하'의 조선은 어떤 조선을 가리키는 것인가 하는 것이고, 둘째는 '조선하'가 북송시기에 어째서 오늘의 북경시 북쪽 지역에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조선은 후기의 한양 조선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라 고대의 고조선에서 유래한 것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그리고 조선하가 압록강 이남의 평양이나 서울 일대가 아닌 북경 부근에 있었다는 것은 고대의 조선은 한반도가 주 무대가 아니라 대륙 깊숙이 발해유역에 자리하고 있었으며 오늘의 북경이 발해조선의 일부였던 사실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그런 점에서 필자가 '사고전서'에서 찾아내 최초로 세상에 선보인 이 자료는 우리의 고조선사를 반도를 넘어 새롭게 재정립하는 데 초석이 될, 우리 역사에 한 획을 긋는 매우 귀중한 자료라고 본다.
역사학박사·민족문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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