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미의 마음과 마음] 사람 볼 줄 아는 방법

입력 2023-03-16 13:30:00 수정 2023-03-16 18:12:59

김성미 마음과마음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김성미 마음과마음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모임에 가면 제 옆자리에 앉는 것을 꺼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정신과의사 옆에 있으면 분석당한다고 이유를 대곤 합니다. 반대로 주식 분석전문가 옆에는 서로 앉으려고 탐을 냅니다. 이분들은 성장 가능성이 있는 숨은 기업을 찾아내서 잭팟을 터트리니, 다들 정보를 얻기 위해 매달립니다. 돈에 시간과 체력을 쏟아 붓느라고 마음건강을 돌보지 못하고 스트레스로 인해 신체질병까지 얻게 되는 사람들을 자주 보게 됩니다.

사람들이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에도 관심이 많아져서 정신과의사의 옆자리도 인기가 올라갔으면 좋겠습니다. 60대 남성이 잘못된 결혼으로 힘들다며 정신과 상담을 오셨습니다. 돈도 많이 벌었고 애들도 커서 독립했으니 가장으로서의 의무는 다 해왔다고 자부하는데, 이제 남은 부부 관계가 문제라고 합니다. 아내와 있는 시간이 늘어나니 사사건건 부딪히고 마음이 맞지 않아서 어디론가 정처 없이 떠나고 싶다는 것입니다.

대학 시절, 첫사랑을 만났고, 봄날 같은 들뜬 감정으로 연애편지도 쓰고, 난생 처음 느낀 사랑은 고향을 떠난 외로움도 잊게 해 주었지요. 그러나 풀 문(full moon)의 부푼 연애 감정은 시간이 흐르면서 일그러지고 작아져서 반달이 되더니 지금은 뾰족한 그믐달이 되어 날카롭게 서로를 찌릅니다. 그때는 왜 여자 보는 눈이 없었을까요. 저는 실패한 인생입니다.

사람 볼 줄 몰라서 늘 손해 본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귀가 얇아서 남의 말을 쉽게 믿어서 낭패 본 경우도 많다고 하소연합니다. 남의 제안을 거절하지 못하는 사람은 남들에게 이끌려 다니다가 에너지를 다 소진하고 결국 인간이 싫어졌다는 경우도 많습니다. 좋은 과일을 고르는 듯이, 사람 볼 줄 아는 방법이 있으면 인간관계도 쉬워지겠죠.

오늘은 사람 볼 줄 아는 법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우리는 내 마음의 필터를 통해 세상을 보게 됩니다. 내가 파란 색 썬글라스를 쓰면 세상이 파랗게 보이듯이, 나의 필터를 먼저 점검하는 것이 사람과 세상을 잘 보는 방법이 됩니다.

두 번째, 마음의 균형을 잃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어야 오류가 줄어듭니다. 전부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어느 한쪽이 너무 두드러지는 사람은, 분명히 정반대의 다른 모습이 있지 않을까 짐작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예를 들어 지나치게 굽실거리고 자신을 낮추는 사람은 그만큼의 적대감이 숨겨져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우리는 각자의 여건과 환경 때문에 자신의 본질을 잊어버리고 다른 모습으로 살아갈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너무 밝고 긍정적인 사람은 이면에 큰 아픔이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항상 힘들면 상징적으로라도 밸런스를 맞추려고 노력하기 때문입니다. 너무 이쁘면 꼬집어주고 싶고, 미운 놈 떡 하나 더 주고 싶은 심리도 균형을 맞추려고 애쓰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는 좀 복잡할 수 있습니다. 오랫동안 지켜보면 반복적인 행동 패턴이 발견됩니다. 가해자가 마치 자기가 피해자인양 적반하장의 행동인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 경우입니다. 잘못을 해놓고, 야단치기도 전에 미리 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는 아이는 벌 받기보다는 달래준다는 것을 아는 것이죠. 어려운 상황을 피해가는 방법 중 미숙한 방법에 속합니다.

피해자 코스프레 하는 사람에게 속아 넘어가기 쉽고, 집단 간에 균열을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 맥락을 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자신의 고통을 너무 과하게 표현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실제 아픔보다도 지나치게 부풀려 표현한 것이므로, 그들의 말과 행동에 휘둘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남을 때리는 사람은 맞은 적이 있는 사람이고, 자랑하는 사람은 멸시받은 적이 있습니다. 드라마 <더 글로리>를 보고 여러 생각을 하게 됩니다. 주인공 박연진은 동급생인 문동은을 잔인하게 괴롭힙니다. 이 가해자는 언젠가 어머니에게 맞았고, 지금은 남을 때립니다. 때리면서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즐거워합니다.

자기는 돈과 힘이 있는 어머니가 된 기분을 느끼고, 어머니에게 맞고 비참했던 만큼 문동은의 고통을 너무나 잘 아는 거죠. 이것을 심리학적 용어로 공격자와의 동일시(identification with aggressor)라고 합니다. 문동은은 화상 상처보다 더 아픈 것은 또래에게 무릎 꿇은 자아감의 상처가 몇 배나 더 아팠을 것입니다.

이런 분노가 원동력이 되어 긴긴 시간 복수를 하게 만든 것입니다. 완벽한 피해자는 없습니다. 피해자였던 박연진이 가해자가 되었고, 피해자였던 문동은도 또 다른 친구의 고통을 외면했습니다. 방관자도 가해자일 수 있습니다. 문동은의 절규를 외면했던 어머니 선생님 그리고 다른 학생들 모두 가해자입니다.

외적인 조건과 인품, 모든 것이 너무나 완벽해보였던 박연진의 남편, 하도영은 어떤 사람인가요. 많은 것을 숨길수록 멋있어보일 수 있습니다. 그는 남자로서 치명적인 약점을 감추고 있었기에 더욱 완벽해야 했죠.이 드라마에는 온갖 인간 본능에 충실한 군상들이 등장해서 의협심을 부글부글 끓어오르게 해주더군요. 나는 지금 왜 이런 감정에 쏠려있는 것일까요.

문동은의 상처에 울고 분노하면서, 자신의 가슴에 묻어두었던 상처를, 외면했던 아픔을 들여다 볼 수 있다면 이 드라마는 치유적인 역할까지 훌륭하게 해내는 것이지요. 결국 사람 볼 줄 알려면, 지금 내 마음을 균형 있게 바라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나는 지금 어떤 것에 쏠려있는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영국의 비평가 매슈 아놀드는 예술은 삶의 비평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삶은 비평이 필요한 현상이라는 것이지요. 더 글로리는 인간의 욕망과 탐욕, 불안과 소외 등 온갖 불행한 삶의 현장을 보여주어서 모두가 비평가로 열광했나 봅니다. 이 드라마가 끝난 후, 우리는 좀 더 사람 잘 볼 줄 아는 법을 알게 되는 것 같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