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초일이

입력 2023-03-16 10:47:45 수정 2023-03-18 06:47:02

임미현 지음/이야기 꽃 펴냄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임미현 지음/이야기 꽃 펴냄
임미현 지음/이야기 꽃 펴냄

질문) 엄마를 도와드렸을 때 엄마가 어떻게 하셨는지 적어 보세요

답) 난 네가 들어가서 노는게 도와주는 거야!

질문) 칭찬하는 말을 들었던 경험을 떠올려 들었단 말을 쓰세요

답) 개보다 낫네

몇 년 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초등학생들의 웃긴 답안지'라는 글이 공유되며 소소한 웃음을 줬다. 다음 도형이 사각형이 아닌 이유를 적으라는 말에 '원래 사각형인데 찢어져서'라고 용감하게 적는 아이들의 모습에 대다수의 어른은 '아직 못 배워서'라는 생각보다 그들의 '순수한 마음'을 더 바라봤으리라.

그도 그럴 것이 기자 역시 초등학생 저학년 시절, '나뭇가지에 모자가 걸렸을 때 어떻게 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라는 학원 문제집에 '울면 엄마가 와서 빼준다'라는 답을 적어 몇 십 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엄마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기자의 남동생 역시 8살 시절, 운동장에서 실컷 놀다 그를 데리러 온 부모님의 차에 올라타면서 신발을 고스란히 벗어 두고 와 집에 도착한 엄마는 한참 신발을 찾아야 했다.

어린 시절 경험했던 황당한 에피소드는 아마 대다수는 가지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만큼 어린아이였던 우리는 '순수'했다.

가장 빛나는 순수의 시절, 동심이 빚어내는 감동의 순간들을 23년차 초등학교 교사인 임미현 작가가 글과 만화로 담았다. 그가 그려낸 이들은 바로 초일이. 8년째 1학년 담임선생님을 해오면서 본 초등학교 1학년 학생들이다.

빵 터지다가 찡하다가 뭉클하다가 끄덕인다. 한 가지 일을 20년 넘게 집중하면 누구나 전문가가 되기 마련이다. 저자는 초등교육 전문가이자 아이들 전문가며 사제관계 전문가다. 그렇기에 이 책의 이야기들은 소소하지만 시시하지 않고 명랑하지만 가볍지 않으며 짤막하지만 여운이 있다.

이야기는 80%의 그림, 20%의 글로 구성된다. 색깔도 거의 없이 선 몇 개로 쓱쓱 거린 듯한 비전문적인 그림인데도 아이들의 표정, 몸짓, 심지어 말투까지도 생생하게 느껴진다. 오랜 경험과 애정 어린 관찰들을 고스란히 전해 주고 싶어 하는 저자의 간절함이 고스란히 녹아내려 있달까. 그렇기에 책 한 장 한 장마다 펼쳐지는 선생님과 아이들의 좌충우돌을 바라보면 마치 초등학생 1학년 교실에 들어온듯한 느낌마저 든다.

"초등 1학년은 사람의 일생에서 순수함이 가장 빛나는 시기"

책의 말미에서 저자가 이렇게 뱉는다. 임 작가가 바라본 아이들은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등교하지 못한 친구 소식에 "그래서 오늘 하늘도 슬픈가 봐요"라며 함께 안타까워해주고 흡연 예방 교육에 "아빠가 담배를 피운다"며 펑펑 울며 가족끼리 간 캠핑장에서 주워온 민들레 씨앗을 휴지에 가득 담아 선생님께 건네준다.

책의 매력은 하나 더. 단순 귀여운 즐거움을 넘어 묵직한 메시지가 전달되는데, 사람과 사람이 서로를 위하는 일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으며 그렇기에 '우리가 살면서 끝내 지켜야할 것은 무엇인가'하는 것. 동심이 순수하다 해도 이를 진심으로 대하면서 마음껏 펼치게 해주는 '어른'이 없다면 동심은 아이들의 마음 속에서 차츰 사라져 버리고 말테다.

몇 년 전 들린 한 어린이 도서관에서 덕지덕지 붙은 포스트잇이 떠오른다. '우리들의 잊고 싶은 기억들'이라는 큰 메모판이었는데 아이들은 동생이랑 싸우고 엄마에게 혼난 일, 동생을 아무 이유 없이 때린 기억, 바늘에 손가락을 찔린 기억, 화장실에 문이 잠긴 기억들을 잊고 싶은 기억으로 삐뚤빼뚤 글씨로 적어냈다.

저 어린이들에게 10년, 20년, 30년이라는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잊고 싶은 기억이 피가 나는 손가락, 잠긴 화장실 문뿐이었으면.

적어도 우린 그 순수한 기억을 지켜주고자 했던 어른이었나. 340쪽, 1만7천5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