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위발 이육사문학관 사무국장
나의 약점을 드러내면 상대는 위안이 될 수도 있다. 인간관계에서 가장 소모적인 방식이 결점을 감추는 것이다. 사람은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완벽의 보충을 위해 힘을 쏟기도 한다. 타인에게 나의 결점을 숨기려다 들키면 스스로 상처를 입기도 한다.
며칠 전이다. 그동안 알게 모르게 섭섭했던 친구가 있었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예측하지 못한 말을 한 것이다. 조심스럽게 꺼낸 말이 췌장암에 걸렸다는 것이다. 그 앞에서 어떤 위로도 하지 못한 채 듣기만 했다. 친구는 섭섭했던 부분을 끄집어내어 털고 싶다고 했다. 얼결에 내뱉은 말은 '고맙다'였다. 친구는 미소 지으며 '이제 됐다'고 했다.
두 사람은 어떤 일로 인해 말다툼하고 다시는 안 만날 것처럼 서로에게 상처를 줬다. 마지막 헤어질 때 들었던 말이 귀에 쟁쟁하다. "너 같은 친구 있다는 게 쪽팔린다! 길에서 만나도 아는 체하지 말자!"
둘 사이의 찜찜하고 불쾌했던 그 순간의 말이 통째로 사라져 버렸다. 그 뒤의 이야기는 항암에서부터 민간요법까지 '어떡하든 용기 잃지 말라'는 말 외엔 할 수가 없었다. 친구는 내일 죽더라도 묵은 감정을 풀어서 다행이라고 했다. 악수하고 떠나는 친구의 어깨가 무척 가벼워 보였다.
타인의 불평이나 불행이 때론 위안이 될 수 있다. 함께 사는 사람의 잔소리나, 주변의 실패한 이야기, 동료들의 불평을 들으면 편안해질 때가 있다. 동지애 같은 자기 위로거나 저 사람들보다 내가 좀 더 낫다는 생각, 나만 실패한 게 아니었다는 안도는 순간적인 위안이나 임시 처방 같은 것이다.
우리는 타인의 불행을 고소해하거나, 기다리거나, 즐거워해선 안 된다. 서로 불행이 오지 않길 바라는 묵언의 책무가 있다. 인간의 권리 중에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행복해질 의무도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옳고 다른 사람이 틀렸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잘못됐다. 하지 말라고, 그만두라고, 가지 말라고, 이러면 안 된다고, 다른 사람은 틀리고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은 길을 잃어버린 것과 같다. 그 길은 영혼이 되어 돌아오지 않는다.
자신의 결점은 이유를 파악해 무 자르듯이 과감하게 잘라내야 한다. 원인분석을 통해 결론을 내되 신속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매우 감동적인 행동이 될 것이다.
나의 결점에 대해 위안 삼는 사람을 보면 자존심이 상하거나 기분이 썩 좋지 않다. 적당히 행복한 척, 없어도 있는 척, 용기 없으면서 강한 척, 약하면서 센 척했던 것을 후회해 본 적 있는가. 혹, 스스로 타인에게 나의 결점을 감추어 보진 않았던가. 자신의 불행에서 벗어나고자 타인의 불행을 지팡이 삼아 헤어나와본 적 없는가.
과거는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미래의 삶을 결정짓는 것도 아니다. 일반적인 논리로 불행을 다스릴 수 있다면, 우리는 얼마든지 불행을 행복의 동기로 바꿀 수 있다. 희망이 없다거나 운이 없다는 식으로 치부하지 않아도 된다. 희망은 불행에 대한 반사작용이다. 불행이 있다면 행복도 함께 있다. 타인의 불행에 공감하며 내일을 생각하자.
"아무리 어두운 충동에 던져질지라도 선한 인간은 바른길을 잃지 않는다" 괴테의 말이 가슴을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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