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화의 온고지신] 이끼와 함께, 이주배경인과 함께

입력 2023-03-09 11:12:49 수정 2023-03-09 18:07:53

이인화 전 이화여대 교수,소설가
이인화 전 이화여대 교수,소설가

이끼는 초목의 양서류이다. 바다에서도 살고 육지에서도 산다. 원래 바다에서 출현해서 육지로 진출한 최초의 식물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사람에 비유하면 다른 곳에서 태어나서 선주민 사이에 터를 잡은 이주배경인과 같다.

행인들은 이끼를 잘 밟는다. 작아서 눈에 잘 띄지 않기 때문이다. 이끼는 높이 자라지도 않고 꽃을 피우지도 않는다. 이끼에겐 꽃시절이 없다. 그러나 끝내 척박한 환경을 견디고 살아낸다. 살아서 다른 생명들이 살 터전이 된다.

이끼들은 겸손하게 극히 적은 태양 에너지를 쓴다. 어떤 이끼는 호수 표면에 비치는 빛만으로 산다. 어떤 이끼는 어두운 동굴에 서식하면서 새벽에 잠깐 스쳐가는 불과 몇 분의 빛만으로 산다. 로빈 월 키머러의 예찬처럼 이끼는 그 자체가 '인내하는 빛'이다. 인내하면서 축축한 토양 위에 반짝인다. 섬세한 깃털처럼 생긴 새싹을 키운다.

이끼가 존재하지 않는 숲과 산은 드물다. 이끼는 육지에 필수불가결한 구성원이다. 육지에 있지만 바다의 속성을 간직하기에 더욱 소중한 구성원이다.

이주배경인은 작지만 우아한 식물, 이끼와 같다. 이들은 과거 이방인, 주변인, 혹은 2등 국민 같은 대접을 받았다. 그러나 이제는 한국의 필수불가결한 구성원으로 재인식되고 있다.

첫째 인구 소멸 때문이다. 한국의 선주민들은 한강의 기적을 위해 너무 치열하게 살아온 결과 몸과 마음이 번아웃되었다. 그리하여 한국은 세계 252개국 중 가장 낮은 합계출산율을 기록하며 영유아가 줄어들고 있다.

이것은 산업 활력 저하 수준이 아니라 경제 괴멸 수준의 인구 감소이다. 한국의 청년 세대는 더 이상 노년 세대가 품었던 꿈을, 장년 세대가 경험한 번영과 복지과 안정을 누릴 수 없다는 암울한 전망이 대두된다.

둘째는 디지털 혁신 때문이다. 초거대 규모 인공지능 챗지피티는 기술 독점성의 쓰나미를 일으키고 있다. 세계적으로는 몇몇 거대 IT 기업에 의한 승자 독식이 진행되고 국내적으로 AI를 쓰는 사람에 의한 AI를 쓰지 않는 사람의 대체가 진행된다.

먼저 기업들이 홈페이지를 AI 챗봇 기반의 고객 센터 중심으로 바꾸고 있다. 기업 업무의 핵심인 고객과의 접점부터 지능화된다. 이제는 6시에 퇴근하지도 않고 '죄송하지만 모든 상담원이 통화중이라'며 고객을 기다리게 하지도 않는 직원이 나타났다.

대학에 챗지피티로 작성된 2023년 1학기 레포트가 나오기 시작했다. 대학 교육의 핵심인 레포트, 학생이 지적 결과물을 생산하는 실습부터가 지능화된다. 인공지능을 활용해 2배, 3배의 결과물을 내는 신세대가 노동시장에 쏟아진다.

인구 소멸과 디지털 혁신은 이주배경인 문제를 새롭게 보게 만든다. 그 새로운 시각은 고통받는 지방의 시각이다. 우리는 지방의 힘으로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 수 있는 기로에 섰다. 만약 지방의 결연한 행동이 없다면 오늘날의 변화는 한국의 빈부 격차를 더 악화시키고 수도권 일극화 인구 소멸을 더 악화시킬 것이다.

지방은 이주배경인의 지속적인 증가에서 어두운 밤의 등불과 같은 희망을 본다. 한국의 이주배경인은 지난 15년간 연평균 4.7%씩 증가해왔다. 경북에도 현재 6만 명의 이주배경인이 살고 있다. 한류의 확산과 함께 세계적으로 한국문화의 매력도가 높아지고 한국에 대한 이민 수요가 늘었다.

4차 산업혁명의 디지털 혁신은 수학과 물리학에 뛰어난 혁신 인재들이 주도한다. 그러나 이과의 우수 두뇌가 의과대학으로 흡수되는 한국은 혁신 인재의 구조적 결핍을 안고 있다. 수능의 미적분 응용문제도 못 풀었던 사람들이 시각인지 인공지능을 개발한답시고 판교에 앉아 세월을 흘려보내고 있는 것이 한국 IT 산업의 적나라한 실상이다.

지금 취약한 모습으로 일자리를 구하고 있는 이주배경인은 한국이 가진 문제의 해답일 수 있다. 러시아, 베트남, 인도, 파키스탄, 독립국가연합(CIS:구소련연방국가), 중국 등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우수 인재가 공대에 진학한다. 한국은 개도국 혁신인재들이 정착하고 생활하는 인종의 용광로, '작은 미국'이 되어야 한다.

이주배경인은 굳이 한국인으로 동화될 필요가 없다. 세계는 이 나라 아니면 저 나라를 선택하던 인터내셔널 시대에서 이 나라에도 살고 저 나라에도 관계하는 트랜스내셔널(Trans-national) 시대로 변했다.

커뮤니케이션 환경이 발달한 오늘날 이주배경인들은 매일 카카오톡 영상통화, 스카이프, 줌으로 고국의 부모 형제, 지인과 소통한다. 그들의 소통은 모국과의 연결을 구축함으로써 한국의 발전에 기여한다. 이주배경인들이 모국을 걱정하고 돈을 송금하며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한국 사회의 다양성과 문제해결 능력을 증진시킨다.

우리는 이주배경인의 낯섦을 받아들이고 불편하지 않게 배려해주어야 한다. 그들의 종교, 문화, 습속을 존중해야 한다. 한국에 있으니 한국에 맞춰서 살라고 하는 태도는 개방성과 신뢰, 선택의 자유를 해치고 나라의 미래를 암울하게 만든다. 이주배경인들을 이끼처럼 우리와 다르지만 필수불가결한 일부로 사랑해야 한다.

사랑한다는 것은 침묵하는 것이다. 경북의 다문화센터에서 근무하는 캄보디아 출신의 이주배경인 여성을 만난 적이 있다. 그녀는 한국에 온 뒤 20여 년 동안 택시만 타면 "어디서 왔어요? 남편은 몇 살?"로 시작되는 호구조사를 겪는다고 했다. 필자는 사람을 이방인으로 고착시키는 무례함이 한국에서 곧 없어질 것이라 말씀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