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
북한 통치자 김정은의 딸 김주애가 북한 방송에 자주 등장한다. 선대인 김일성, 김정일 정권에서는 볼 수 없었던 일이다. 소위 '최고 존엄'의 신비성 보장을 위해 가족 노출은 극히 제한되었기 때문이다. 김정은은 선대와 달리 부인 리설주뿐 아니라 11세의 딸까지 대동하고 있다. 김정은은 세계적 이목이 집중된 미사일 발사장뿐 아니라 건설 현장까지 7차례나 딸을 동반하였다. 북한 방송에서는 딸을 '사랑하는 자제분'이라고 소개하였다. 그것이 세습을 위한 사전 포석이라고 속단하긴 어렵다. 여하튼 북한의 3대 세습 체제는 공산국가에선 찾아볼 수 없다. 우리의 반쪽인 북한이 어쩌다 세습 왕조국가가 되었을까. 그것은 북한 김일성 정권 수립 후 자유민주주의를 체험치 못한 봉건적 역사 전통, 공산국 중국과 소련에 인접했던 지정학적 위치, 북한의 경제 등 내외의 위기가 초래한 비극이며 그 합작품이다.
북한은 해방 후 불행하게도 민주주의의 다원적 정치 문화를 경험치 못했다. 조선조 왕조 질서, 그 후 일제의 폭압적 식민지 통치만을 겪다 급조된 공산 정권을 수립한 것이다. 남한은 그래도 4월 혁명에서부터 87 민중 항쟁에 이르기까지 민주화의 과정을 체험하였다. 학생, 시민들은 반독재 민주화 과정을 통해 피를 흘리면서 자유민주주의의 고귀한 가치를 체득한 것이다. 그러나 소련의 지원으로 탄생한 김일성 정권은 인민을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대상으로만 삼았다. 김일성은 자신의 항일 빨치산 경력을 정권 쟁취의 수단으로 활용한 것이다. 공산 정권 수립 초반부터 김일성은 반외세 자주화의 기치로 주체사상을 통치 이데올로기화하였다. 김일성의 항일운동 경력은 백두 혈통으로 미화돼 세습 기제로 활용되었다. 북한에 중국의 마오쩌둥이나 베트남의 호찌민 정권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세습 체제가 정착된 배경이다.
북한식 세습 체제가 착근되는 데는 중소 국경의 지정학적 위치도 한몫하였다. 소련군 장교 출신 김일성은 북한 공산 정권 수립 과정에서 스탈린의 도움을 받았다. 소련이 초기 김일성 정권 탄생의 아버지 역할을 했다면 중국은 6·25전쟁 시 어머니 역할을 하였다. 6·25전쟁 시 중국의 '항미원조'는 북한을 지켜준 최후의 토대가 되었다. 강 하나가 경계인 중국과 러시아는 현재도 북한의 후견인 역할을 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는 유엔의 핵이나 인권 문제에 관한 대북 제재에서 안보리 거부권을 통해 북한을 옹호하고 있다. 역사에서 가정법이 성립되지 않지만 장제스가 집권했더라면 북한 공산 정권은 탄생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중국이 아직도 '순망치한'(脣亡齒寒)을 내세워 북한을 혈맹으로 옹호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 후 동북아의 냉전 구도는 북한 왕조 정권 유지 존속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북한 정권 수립 후 경제적·외교적 위기가 역설적으로 북한식 세습 통치를 가능케 하였다. 북한은 정권 수립 초반 공업적 토대와 사회주의식 동원 체제의 장점을 살려 상당한 경제발전을 이룩했다. 사실 19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북한 경제가 남한을 앞질렀던 것이다. 그러나 현재 남북 간 1인당 국민총생산(GNP) 규모는 30대 1의 격차로 벌어져 있다. 북한의 경제적 위기는 '고난의 행군'에서 보듯이 수많은 주민을 아사시켰고, 주민들의 내부적 불만은 탈북 사태로 이어졌다. 이러한 내외적 위기 앞에 북한은 핵 개발을 통한 군사 강국 노선을 채택하였다. 결국 북한은 왕조적 일인 통치를 바탕으로 핵을 앞세운 병영 국가 노선을 강화한 것이다. 북한 당국은 이러한 내외의 위기를 미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핵 개발로 맞서 모면하려는 것이다.
북한 당국은 이러한 세습 국가의 유지를 위해 독특한 이데올로기를 개발하여 주민 설득용으로 활용하고 있다. 수령 승계론, 백두 혈통론을 통해 세습 체제의 정당성을 설득하고 이를 주민 '생활 총화' 시간에도 활용한다. 북한 주민들이 10만 명의 집단 체조에 열광하고, 김정은 수령을 신격화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결국 북한식 세습 왕조 체제는 당분간 붕괴될 가능성이 희박하다. 강력한 주민 통제라는 병영식 국가 운영이 당분간 내부 위기를 잠재울 것이다. 결국 핵과 미사일은 북한 내외 위기의 극복 수단이 되고 있다. 그러나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만고의 진리가 북한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중국의 일부 학자들까지 북한식 왕조 세습 체제를 비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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