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 반도의 끝자락 섬이자 도시인 싱가포르는 1965년 말레이 연방에서 자의반 타의반 분리되었다. 독립 당시 싱가포르는 분단과 대립을 경험한 한국과 대만처럼 부존자원과 공공서비스 부족에 시달렸다. 사회적 불안요인을 잠재우고 고도성장에 매진한 결과 고립무원의 도시국가는 1인당 GDP 7만 달러를 돌파하는 기적을 창출했다. 개방적 세계도시로 부상하면서 이민과 종교를 포용하는 성숙한 모습도 보였다.
스마트 국가를 표방한 싱가포르는 세제와 규제 및 언어 장벽을 완화해 첨단산업의 메카로 부상하였다. 싱가포르의 상황인식과 발전전략은 지방소멸 위기에 직면해 중앙정부에 의존하고 수도권을 탓하지만 자립기반을 강화하는 메가시티 창설에는 소극적인 우리 지방자치의 대응방식과 구별된다.
물론 양국의 역사제도적 특성 차이에 비추어 대구경북과 부울경이 인구 600만 내외로 싱가포르와 유사하다는 점에 착안해 직접적 비교를 시도하기는 무리가 있다. 다만 한국형 메가시티도 독자생존과 공존협치를 전략적으로 혼합한 싱가포르의 역동적 거버넌스에 주목해야 한다.
도시국가를 건설한 리콴유에서 재도약을 선도한 리센룽으로의 리더십 변화는 <재벌집 막내아들>의 진양철과 진도준 사이를 연상시킨다.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전환하기 위해 아버지가 터부시한 카지노까지 허용하며 복합리조트를 유치한 아들의 정책혁신이 대표적이다. 벅시가 건설한 '도박의 도시'에서 세계적인 '오락과 컨벤션 산업의 허브'로 변신한 라스베가스에 착안한 것이다.
변혁적 리더십은 중앙정치에 휘둘리는 영남권 국회의원이나 자치단체장들이 학습할 과제이다. 권위주의 통치를 계승한 싱가포르지만 일선 공무원들은 적극행정을 실천해 왔다. 실용주의 행정문화와 영미식 성과관리에 익숙한 싱가포르 공공부문은 전문성과 효율성을 중시한다.
역동적 거버넌스의 필요조건인 우수한 인재, 신속한 절차, 실용적 문화를 구비했고 충분조건인 미리 보기, 다시 보기, 두루 보기라는 정책품질관리도 구현했다. 우리 지방자치도 창의행정을 촉진하기 위해 전문가 특채나 엄정한 평가가 절실하다. 싱가포르의 도시재창조 수단은 다양하다. 우선 경제활성화를 위해 신성장동력을 창안했다. 의약바이오나 관광컨벤션은 치밀한 기획으로 다국적 기업과 초일류 인재를 유치한 일이 주효했다.
물 안보를 위해 공공시설원(PUB)을 재편하고 물산업클러스터에 기반해 중수도 역량도 배양했다. 하수터널에서 채집한 물을 저수지에서 자연 정화해 정수하는 방식으로 뉴워터 브랜드를 홍보했다. 대구시가 물산업클러스터가 축적한 기술 역량을 활용하지 못하고 맑은 물 하이웨이와 청라수 홍보에 몰두하는 일은 단선적이다. 페놀 사태를 고도정수처리로 돌파한 승부수를 떠올려야 한다.
외국인 투자유치는 경제사령탑인 경제개발청을 비롯해 주룽타운공사나 도시재개발청(URA)이 참여했다. 미래의 유망산업과 기업을 지목하고 투자유치 단계마다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한다. 투자유치가 성사된 이후에도 기업활동에 대한 애로청취와 정보제공이라는 사후관리 서비스를 소홀히 하지 않는다. 반면에 대구경북은 메가시티 구상의 기원이자 싱크탱크인 대경연구원을 분리했고 도시마케팅 전담조직에도 미온적이다.
싱가포르는 삶의 질과 직결된 사회정책을 혁신했다. 산업화 초기에는 노동이 배제된 조합주의라는 친자본 편향성을 노출했다. 하지만 서민생활의 안정을 위해 임대주택과 의료보장에 몰두했다. 싱가포르에 산재한 사원들은 종교의 경연장을 방불케 한다. 다만 종교별로 거주지가 분리되는 현상을 치유하는 일에는 역부족이다. 대구시도 북구 대현동 이슬람 사원을 둘러싼 갈등을 좀처럼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교육정책도 혁신했다. 산업사회의 교육정책은 수월성을 중시했지만 지식정보화 추세에서 창의성 발현에 주목했다. 교육의 목표를 학업성취도에서 문제해결능력으로 전환하면서 초·중학교 수업을 줄이는 대신에 예체능, 탐사 등 방과후 활동을 강화했다. 대구시가 교육청과 협업해 직업계고 실습이나 일·학습 병행을 확대한 일도 유사한 사례이다.
글로컬 시대를 맞이해 싱가포르는 도시의 매력도를 증진하기 위해 도시마케팅과 도시재개발을 중시했다. 홍콩을 제치고 뉴욕과 런던에 이어 세계 3위의 금융허브로 부상한 일이 대표적 성과이다. 경관의 명소 마리나 베이 일대에 수십만이 몰리는 F1 그랑프리를 비롯해 매년 600여 개의 국제행사를 개최한다. 2030 엑스포 유치에 몰두하는 부산과 달리 대구는 아시안게임을 비롯한 메가이벤트 청사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싱가포르나 아일랜드가 다국적 기업을 대거 유치한 배경에는 영어가 통용되는 도시여건이 작용했다. 싱가포르 도시재개발청은 도시정비 초기부터 체계적 발전을 유도하기 위해 용도지구제를 확립하고 항구 인근의 불량주택도 대대적으로 정비했다. 대구나 부산은 재건축과 재개발을 앞세운 공동주택의 도심지 침투에 고전해 왔다. 따라서 인공 건축물에 집착하는 우리 메가시티도 녹색 가치를 재발견해야 한다.
싱가포르 국가공원청은 녹지공간을 확대하기 위해 프랑스의 정원관리를 토착화한 캄보디아의 사례에 주목했다. 벤치마킹은 선진국에서 한다는 고정관념을 탈피한 것이다. 프놈펜을 차용한 정원도시에서 정원속의 도시로 개념을 확장하는 한편 정원속에 도시가 있는 것처럼 상상하도록 공원커넥터 구상을 추진했다.
부산이 낙동강 하구에 에코스마트시티를 건설하자 대구도 금호강 르네상스 사업을 표방하였다. 대구를 관통하는 금호강에 문화관광 보행교, 명품 레저시설, 생태탐방로 연계 등을 추진한다는 개발구상은 배후단지와 단절되고 지속가능성도 의문시된다는 점에서 양과 질 모두에서 보완이 필요하다.
김정렬(대구대 교무처장, 자치경찰학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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