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이인화의 온고지신]고향의 겨울나무들

입력 2023-02-09 14:30:00 수정 2023-02-09 17:33:28

영양군 수비면 죽파리 검마산 자작나무숲
영양군 수비면 죽파리 검마산 자작나무숲

영국의 시인 캐서린 메이는 코로나19와 경제난, 탈세계화 분쟁으로 신음하는 세계를 글로벌 윈터링(wintering)이라 표현했다. 사람들 사이의 따뜻한 교류가 얼어붙고 모두가 겨울을 나는 나무들처럼 고통을 인내하는 시간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겨울나무들은 봄 여름 가을에는 몰랐던, 자기 내면에 존재하는 불변의 힘을 발견한다. 겨울나무들은 미래의 싹을 품고 있고 두꺼운 껍질 안쪽에 동면하는 곤충들을 보호하고 있다.

앙상한 가지만 남은 겨울나무는 혼자 바람에 흔들리며 괴로워하는 것 같다. 그러나 겨울나무들은 사실 보이지 않는 땅속의 뿌리 끝에서 나오는 균사의 네트워크로 멀리 떨어져 있어도 서로의 고통을 함께 느끼며 소통하고 있다.

움직일 수 있고 이동할 수 있는 사람은 나무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존재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람도 환경으로부터 독립된 주체가 아니라 그가 나고 자란 환경의 연장체이다. 땅의 미네랄과 영양분, 강의 물, 허공의 산소가 분자 형태로 끝없이 사람의 몸에 들고나기 때문이다.

인간의 뼈를 이루는 세포는 1년이면 완전히 다 교체된다. 간세포는 300일에서 500일, 위장의 위벽세포는 5일, 소장의 점막세포는 20일이면 모두 교체된다. 사람도 나무처럼 고향의 땅이 낳아 기르는 존재다. 지금 내가 아무리 힘들고 아무리 위태로워도 우리 존재의 깊은 곳에는 고향의 웅숭깊은 힘이 도사리고 있다.

실의에 빠져 있던 어느 겨울 나는 어느 고마운 은인과 함께 영양군 수비면 죽파리 검마산에 있는 자작나무숲에 가보았다. 영양은 내 부계 조상들이 16대 살았던 안동의 이웃이고 내 할머니가 나고 자라신 땅이다. 수목이 자라지 않는 산꼭대기의 모습이 뾰족한 칼끝을 벼린 것 같다고 해서 검마산이라고 한다 했다.

휴대폰 신호가 잡히지 않는 청장한 산골. 그 산에 국내에서 가장 넓은 자작나무숲이 있었다. 하얀 줄기와 곧게 뻗은 자태. 나무줄기 속에서 신령스러운 누군가가 눈을 뜨고 있는 것 같은 옹이의 모습이 아름다웠다.

자작나무는 한대 시베리아 수종이다. 나무들은 마치 먼 시베리아에서 바이칼, 스탭과 고비 사막과 요동과 간도와 연해주를 거쳐 이 땅에 이른, 그리하여 지금은 흙 속에 누워 있는 조상들의 길고 하얀 뼈 같았다.

내 고향 경북은 대대로 의연하고 명민한 강골의 인재들을 배출해왔다. 그리고 그 강골들은 신기하게도 나라와 지역이 쇠락하여 내리막길을 걷고 있으며 빈사 상태의 위기에 있다고 할 때마다 나타났다.

경북인들은 신라 시대 최초로 민족 통합을 이루었다. 그러나 그 14년 전인 654년만 해도 신라는 고구려, 백제, 말갈의 포위공격으로 33개 성이 함락되고 수도마저 위태로운 나라였다.

경북인들은 퇴계의 서원 운동으로 지방화 시대를 성공시키고 그 신장된 국력으로 16만 소총 보병이 침략한 임진왜란을 물리쳤다. 퇴계가 귀향했을 때 영남은 문정왕후의 독재에 짓밟힌 무력한 시골이었다.

경북인들은 칠곡의 다부동에서 국토의 8퍼센트 밖에 남지 않았던 대한민국을 지켜냈다. 소비에트와 중공의 거대한 대륙이 모두 새빨갛게 공산화되고 한반도의 92퍼센트가 적화된 시점이었다.

경북인들은 근대화 혁명, 새마을 운동을 일으켜 5천 년 대물림하던 절대빈곤을 끊어냈다. 피죽도 못 먹는 나라가 '땡빚'을 내어 고속도로를 깔고 제철소를 짓는 것은 미친 짓이라고 들끓던 시절이었다.

이 불가사의한 반전들을 생각하면 경북의 땅에 어떤 신령한 힘이 숨어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조선 인재의 반은 영남에서 난다." "우리가 이 나라의 중심이다." 같은 말이 그럴듯하게 여겨진다.

내 고향 경북의 인재들은 옳고 그름의 문제를 끝까지 따지고 공과 사의 구분에 엄격했으며 시류에 흔들리지 않고 높은 이상을 추구했다. 경북 인재들의 멘탈리티에는 마치 하얀 자작나무 같은, 문화로서의 귀족 같은 요소가 있다.

대한민국에는 계급으로서의 귀족이 없다. 그러나 문화로서의 귀족은 있을 수 있다. 문화로서의 귀족이 없는 사회는 비속화되어 선동과 모략에 흔들리며 결국에는 민주주의가 무너지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문화로서의 귀족이야말로 민주주의의 기둥이라고 말할 수 있다.

지금이야말로 다시 한번 경북에 강골의 인재들이 나타나고 반전의 역사가 시작되는 시간인지도 모른다. 정보화 혁명 30년 동안 한국에는 수도권 일극화의 산업 구조가 고착화되었다. 지방은 수도권에 축척된 기술, 자본, 장치, 인재, 인프라를 뛰어넘을 수 없었다.

그런데 이제 챗지피티의 지능화 혁명이 수도권과 지방의 그 하늘과 땅 같았던 차이를 종잇장처럼 얇은 차이로 만들었다. 인간의 모든 지적 노동이 인공지능을 이용한 신속 모형화(Fast-Prototyping)와 명령어 공학(Prompt Engineering)으로 재정의되는 새 출발점에 섰다.

늦게 된 자가 빨리 된다. 일본은 산업화에 앞서갔기 때문에 정보화에서 한국에 뒤졌다. 한국은 정보화에 앞서갔기 때문에 모바일 혁명에서 중국에 뒤졌다. 수도권은 정보화가 만들어낸 비대한 조직 때문에 날렵하고 신속하게 움직이는 지방에 의해 지능화 혁명에서 추월당할 것이다. 나는 그 지방이 당연히 경북이라고 믿는다.

경북의 지방 소멸을 걱정하는 동료들에게 나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 한 구절을 들려주고 싶다. "겨울 중에는 끝없이 계속되는 겨울도 있나니. 그 겨울을 이기고 그대 자신의 마음을 이길지라."

이인화 전 이화여대 교수,소설가
이인화 전 이화여대 교수,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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